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무소유 - 백무산

석전碩田,제임스 2018. 12. 11. 08:58

무소유

                                                - 백무산

 

굶주리는 사람이 건강단식을 어떻게 이해하나

없는 사람이 무소유를 어떻게 이해하나

글자 조합이 잘못된 낱말을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잃을 것은 사슬뿐인 사람들은 자유를 위해 떨쳐 일어날 거라지만

그들도 잃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가진 것 아무것도 없는 거지는 동냥 구역을 잃을 게 있지

없을수록 집착할 수밖에

 

거액의 자산가가 방송에 나와 무소유의 자유로움에 대해

진지한 표정으로 말할 때 그건 진심이었을 거다

무소유의 청빈함을 제대로 글로 쓰는 작가는 좀 살 만한 작가다

어디 가나 밥과 집이 넉넉한 스님이라야 무소유를 제대로 설법할 수 있다

 

무소유는 가진 뒤의 자유다

무소유는 소유가 있은 뒤 조합된 낱말이다

다 내려놓은 사람의 무소유는 이미 그 낱말이 아니다

 

가진 것이 있어야 무소유를 맘껏 가질 수 있다.

 

- 시집초심(실천문학, 2003)

 

* 감상 :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읽고 '무소유를 실천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일찌감치 시골로 내려가서 자연을 벗 삼아 농사나 지으면서 살겠다'고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것 같으신가요? 철이 든 조숙한 학생으로 보이시나요 아니면 아직 인생의 달고 쓴 맛을 겪어보지도 않아서 포시라운 소리를 한다고 생각이 드시나요?

 

<무소유>라는 말이 참 매력적인 말이지만, 하루 하루 먹을 걸 걱정하는 사람에게는 무소유 운운하는 사람들이 사치스럽게 보일 것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줄반장이라도 해 보지 못한 사람은 반장되는 데 목숨을 걸 수도 있지만 반장을 해 본 사람은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도 가져봤기에 가능한 여유입니다. 오늘 읽은 시는, 처음 어느 고등학생의 경우를 예를 들면서 했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좋은 힌트를 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무소유'는 가진 것이 있어야 맘껏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지난 늦 가을 어느 날, 아침에 출근을 하였더니 책상 위에 책 한 권이 포장지에 싸여 소담스럽게 놓여 있었습니다. 매달 한번씩 업무차 들리는 지인이 보내 온 것이었습니다. 법정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 수류 산방에 기거하던 시절, 사유 노트와 미발표 원고들을 묶어서 낸, 말하자면 유고집이었습니다. <간다, 봐라>라는 제목이 말해 주듯이, 평소 무소유를 가르쳤던 본인의 생각대로, 갈 때에도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뜻이 담긴 책 제목입니다. 이 시를 쓴 시인이 은근히 공격의 화살을 들이 댄 스님의 퇴장이 이 정도라면 그래도 봐 줄만 하지 않나 속삭이는 것 같은 제목입니다. 자연을 벗하며 소소하게 살아가는 그의 마지막 삶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책을 읽으면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삐딱한 시인의 시선도 결국 가진 게 있다는 최소한의, 겸손한 자기고백의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진 것들을 세어보며 감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