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隨筆 · 斷想

미지근하게 사는 사람은 지옥에도 못간다

석전碩田,제임스 2018. 5. 9. 17:38

지난 밤에는 바람이 불고 갑자기 떨어진 기온 탓인지 첫 잠에서 깬 후 좀처럼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해 뒤척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읽은 어느 분과의 인터뷰 신문 기사(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를 인터뷰 한 기사)를 읽고 또 그 분의 강연을 찾아서 듣느라 하얗게 밤을 새고 말았습니다. 아니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피곤한 줄도 몰랐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것 입니다.  

 

'미지근하게 사는 사람은 지옥에도 못간다'는 단테의 신곡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가 허겁지겁 학문의 세계에서 종횡무진했고, 또 지금도 진행 중인 그의 삶의 이야기는 흥미진진했습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가슴 뛰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매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진정 그런 결단을 해 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온갖 잔대가리 다 굴려가며 앞뒤 좌우 위아래 다 따져가며 미지근하게 사는 자신이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까워, 지금 이 나이지만 한번 뜨겁게 승부를 걸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이내 주저 앉아버린 못난이가 이렇게 넋두리를 늘어 놓고 있습니다.  

 

갑자기,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는 시가 생각이 납니다. 벌겋게 달아 올라 자기 한몸 불살랐던 연탄이, 이제는 연탄재가 되어 골목 어딘가에 방치되어 있는데, 그 것을 무심코 차버리는 나에게 묻는 그의 시가 준엄하게 귓가에 들려옵니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반쯤 깨진 연탄  

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나를 끝 닿는데 까지 한번 밀어붙여 보고 싶은 것이다  

타고 왔던 트럭에 실려 다시 돌아가면  

연탄, 처음으로 붙여진 나의 이름도  

으깨어져 나의 존재도 까마득히 뭉개질 터이니  

죽어도 여기서 찬란한 끝장을 한번 보고 싶은 것이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뜨거운 밑불위에  

지금은 인정머리없는 차가운, 갈라진 내 몸을 얹고  

아랫쪽부터 불이 건너와 옮겨 붙기를  

시간의 바통을 내가 넘겨 받는 순간이 오기를  

그리하여 서서히 온몸이 벌겋게 달아 오르기를  

나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나도 보고 싶은 것이다  

모두들 잠든 깊은 밤에 눈에 빨갛게 불을 켜고  

구들장 속이 얼마나 침침하니 손을 뻗어 보고 싶은 것이다  

나로 하여 푸근한 잠 자는 처녀의 등허리를  

밤새도록 슬금슬금 만져도 보고 싶은 것이다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全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