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隨筆 · 斷想

땅에서 뭐 하다 왔냐?

석전碩田,제임스 2016. 5. 25. 10:25

어제는 뉴질랜드에서 온 친구와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 오십 중반을 넘어 육십을 바라보는 우리 나이가 되었는데도, 삶에 대한 회의를 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건지, 그리고 내가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의문이 생기고 또 회의가 들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린 우리들의 결론은, 아무리 주위가 소란하고 분요하게 돌아가더라도 본질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친구나 나나 기독교인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그렇다면 삶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다가, '사랑''생명'이야말로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본질이라는 것, 그리고 이 본질을 벗어나, 온갖 잡다한 원칙과 교리, 율법과 도덕, 그리고 세상의 허황된 것들 때문에 속거나 유혹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이런 대화를 알아차렸는지, 마침 오늘 아침 <풍경 소리>의 이 아무개 목사님이 보내 주신 근사한 글이 마음에 와 닿네요.

 

<땅에서 뭐하다 왔냐?>

 

지금도 하늘에서는 그 일이 진행되고 있다.

땅에 다녀온 영혼들을 맞아 그들이 있을 곳으로 보내는 일이다.

 

모든 영혼이 한 가지 물음에 답해야 한다.

“땅에서 뭐하다 왔냐?”

이 물음에 뭐라고 답하느냐에 따라서 그가 있을 곳이 정해진다.

 

방금, 한 영혼이 왔다.

질문이 떨어진다.

“땅에서 뭐하다 왔냐?”

그가 대답한다.

“농사짓다 왔습니다.”

“무슨 농사?”

“쌀이요.”

“그래, 재미 좀 봤냐?”

“재미는 무슨? 실컷 고생만 했소.”

“왜?”

“쌀값이 똥값인데 어쩌겠소?”

“음, 네 자리는 저기구나? 가거라.”

그가 간 곳을 따라가 본다.

팻말이 붙어 있다.

<재미는 무슨? 고생만 실컷>

 

또 한 영혼이 온다.

“땅에서 뭐하다 왔냐?”

“회사를 차려서 돈 벌다 왔습니다.”

“그래, 많이 벌었냐?”

“많이 벌기는커녕 빚만 잔뜩 졌지요.”

“그랬을 거다. 회사가 크다는 건 그만큼 빚이 많다는 거니까.”

“돈이라는 게, 그게 참 희한합디다.”

“왜?”

“많으면 많을수록 모자라더군요.”

“그게 본디 그런 것인 줄을 몰랐더냐?”

“알았으면 내가 그 짓을 했겠소?”

“좋다, 네 자리로 가거라.”

그가 간 곳을 따라가 본다.

팻말이 붙어 있다.

<가까이 갈수록 멀어지다>

 

또 한 영혼이 온다.

“땅에서 뭐하다 왔냐?”

“노래하다 왔습니다.”

“행복했냐?”

“별로…”

“왜?”

“나를 그렇게도 좋아하던 자들이 하루아침에 등지고 돌아섰거든요!”

“인기란 본디 그런 것이다.”

“예, 그랬습니다.”

“그러니 넌 노래하다가 온 게 아니다.”

“노래, 했는데요?”

“아니, 넌 노래를 한 게 아니라 인기를 좇다가 왔어.”

“허, 참.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네요.”

“네 자리는 저기다. 가거라.”

그가 간 곳에 이런 팻말이 걸려 있다.

<마시면 목마르다>

 

또 한 영혼이 온다.

“땅에서 뭐하다 왔냐?”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다가 왔습니다.”

“누구하고 싸웠어?”

“그야, 자유민주주의를 거역하는 자들과 싸웠지요.”

“그래서 이겼냐?”

“솔직히 말해서, 졌습니다.”

“왜?”

“적들의 수가 끝도 없이 늘어나는 바람에…”

“어째서?”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라는 말, 들어보지 못했소?”

“음, 네가 그런 동네에서 살았구나.”

“그러니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지요.”

“저기가 네 자리다.”

그가 간 그의 자리에 팻말이 붙어 있다.

<여기도 적, 저기도 적>

 

또 한 영혼이 온다.

“땅에서 뭐하다 왔냐?”

“천지사방을 관광하다가 왔지요.”

“어디어디를 다녔느냐?”

“알려진 관광지는 안 가본 데가 없소이다.”

“어디에서 뭘 보았는데?”

“나이아가라에선 나이아가라, 만리장성에선 만리장성, 나폴리에선 나폴리…”

“그 많은 곳을 다녔는데 어디 머물고 싶은 데가 있더냐?”

“없습디다.”

“하긴, 그런 데가 있으면 관광객이 아니지.”

“인간들이 날마다 새 관광지를 개발하는 통에…”

“관광객이 없는데도 그랬겠냐?”

“그야, 그렇지요.”

“네 자리로 가거라.”

그가 간 곳에 걸린 팻말.

<보이는 건 많고, 보는 건 없고>

 

또 한 영혼이 온다.

“땅에서 뭐하다 왔냐?”

“놀다가 왔습니다.”

“뭐하고 어떻게 놀았어?”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놀았지요.”

“재미있었겠다.”

“예, 한 마디로 아름다운 소풍이었습니다.”

“네 자리는 저기구나. 가거라. 네가 만든 곳이다.”

그가 간 곳에 걸려있는 팻말이 보인다.

<눈뜨면 새것, 먹으면 꿀맛>

 

잠깐! 여기에서 노파심으로 한 마디 해야겠다.

그 많은 영혼들을 일일이 만나 묻고 대답하려면 하늘이 참 바쁘겠다고, 어느 세월에 그 모든 일을 하겠느냐고, 이런 생각이 들겠지만 염려 놓아라.

하늘에는 지금만 있고 시간이라는 게 따로 없다.

그러니까 뭐가 왔으면 온 거지, 빨리 왔거나 더디 왔거나 그런 게 없다.

또 하늘에는 여기만 있고 공간이라는 게 따로 없다.

그러니까 뭐가 있으면 여기 있는 거고 뭐가 없으면 여기 없는 거다.

따라서 그 많은 영혼들을 언제 어떻게 일일이 상대할 것인가,

그런 걱정은 할 이유도 없고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된다고?

괜찮다, 이해가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두고 넘어가자.

때가 되면 당신도, “아하!” 하게 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지금도 하늘에서는 그 일이 진행되고 있다.

땅에 다녀온 영혼들을 맞아서 그들이 있을 곳으로 보내는 일이다.

 

모든 영혼이 한 가지 물음에 답해야 한다.

“땅에서 뭐하다 왔냐?”

 

이 물음에 뭐라고 답하느냐에 따라서 그가 있을 곳이 정해진다.

실은, 제가 땅에서 만들어놓은 제 자리로 가는 것이다.

“땅에서 뭐하다 왔냐?”

 

이 물음에 제대로 답하려면 당신은 먼저 이 물음에 답해야 한다.

“지금 땅에서 뭐하고 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