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隨筆 · 斷想

'그냥'이라는 말

석전碩田,제임스 2015. 1. 3. 09:58

30년 전, 스물 여섯이 다 된 나이에 입대했던 나는 군 내무 생활에서 영락없는 '고문관'이었습니다. 나보다 두 세살은 나이가 어린 고참들이 보기엔, 나이 많은 졸병이 위협적(?)이었는지 시시콜콜한 것 가지고도 얼차려나 집합을 당해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의 약삭 빠른 동기는 ', 친구야 제발 좀 잘 하자'면서 애원하듯이 나를 챙겨주곤했지요. 이런 고문관 역할도 상병이 되고, 병장이 되면서는 완전히 적응을 하여 군대 생활 말년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재미있고 즐겁게 생활을 하면서 좋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작년 이맘 때 쯤, 그동안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던 군 생활을 다시 기억나게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내부반 후임이면서, 같은 고향 사람이어서 친하게 지냈던 후배가 우연히 SNS를 통해서 극적으로 연결되면서 부터였습니다. 이 후배는 기억력이 얼마나 비상한지, 그 당시에 같이 근무했던 사람들의 이름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생년, 출신지, 출신학교 등을 모두 다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지금 현재 어디에서 무얼하고 살고 있는지도 다 꿰고 있었습니다. 죽었던 사람이 마치 다시 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할 정도로, 이 후배가 기억해 내는 이름들은 내 기억의 가장 밑 바닥으로부터 올라와 다시 살아났습니다. 우리가 근무했던 사단 사령부와 그 직할대에 근무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다 이렇게 기억해내는 후배 때문에 한번 통화를 하고 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옛 추억을 들춰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한 해 동안은, 이 후배와 카톡을 주고 받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그 후배가 마치 지금 다시금 SNS를 통해서 소통하게 된 우리 둘 사이를 규정하는 것 같다면서, 2015년 새해 아침에, 멋진 글 하나를 보내왔습니다. 100% 공감이 되는 좋은 글이어서 이곳에 소개해 봅니다.  

 

■'그냥' 이라는 말

 

사람이 좋아지는

백만 가지 이유 중에서

가장 멋진 이유를 꼽으라면

'그냥'을 꼽겠습니다  

 

논리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헐렁한 이유,

그냥을 꼽겠습니다.  

 

논리와 과학이 개입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멋진 이유,

그냥을 꼽겠습니다.  

 

왠지 그냥 좋다라는 말이 나는 그냥 좋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딱 부러진 이유가

꼭 있어야 할까요?  

 

그냥 좋으면 안 되는 걸까요  

 

그냥은

'아무 이유 없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이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만든 언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냥'은 여유입니다.  

 

긴 인생을 살면서

자잘한 이유들은

일일이 상대하지 않겠다는 너털웃음 같은 것 말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 앞에

그냥이라는 말 하나만 얹어도

우리 인생은 더 헐렁하고

넉넉하고 가벼워질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그냥'이라는 말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