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저녁, 퇴근 후에 얼마전 대학 후배가 추천해 준 영화, <Prayers for Bobby>라는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이 영화는 동성애를 주제로 다룬 영화입니다. 평소 이런 주제와 관련하여 별로 생각하지 못했지만, 감상 후에 먹먹해 진 가슴을 한참동안이나 추스려야 할 정도로 어떤 영화보다도 진한 여운이 남는 수작의 영화였습니다.
보비 그리피츠(Bobby Griffith)는 기독교 신앙이 독실한 미국의 평벙한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형, 여동생 등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난 청년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보비에게는 어릴적부터 동성애적인 경향이 자신에 있음을 감지하고 혼자서 갈등을 하다가, 어느 날 가족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서 가족들과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영화는 여기서부터 빠른 속도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가족들이 보비를 돕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기준과 시각으로 사랑하면서 기도하겠다는 태도를 내비칠 때, 오히려 보비에게는 그런 가족들의 태도가 너무도 힘든 장벽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가족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앙의 경전인 성경의 구절을 구체적으로 들이대면서 동성애는 하나님이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는 죄악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킬 뿐, 보비를 이해하려거나 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부칩니다. 물론 그들은 보비를 위해서 사랑으로 기도한다는 마음이었지만, 보비에게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 꽉막힌 담일 뿐입니다.
아들 보비가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간다고 느낀 어머니, 메리는 결국 보비에게 '게이 아들은 내게 없다'고 선언하면서 보비가 진정으로 원하는, 한 인간으로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달라는 절규를 외면해버립니다. 가장 잘 이해해야 할 존재인 어머니마져 자신의 성 정체감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포기해 버렸을 때, 아들 보비는 더 이상 갈 곳을 찾지 못합니다. 결국 그는 자신을 이해하는 사촌과 그녀가 소개해 준 같은 처지의 남자 친구가 있는 곳으로 거처를 옮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비극적인 보비의 죽음이 있은 후, 엄청난 충격으로 휘청거리는 어머니 메리는 평소 소설가가 되려고 했던 아들 보비가 메모해 둔 일기장을 발견하고 그것을 읽으면서, 그가 얼마나 순수한 열정으로 인생을 사랑하면서 가족들의 편견없는 사랑을 갈망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서서히 알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뼈 속까지 기독교적인 규범과 율법, 성경에 심취되어 있는 그녀는 아들의 자살이, 자신이 믿는 교리에서는 가장 증오하는 죄라는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방황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게이와 레즈비언들을 위한 교회 공동체를 이끄는 목사를 스스로 찾아가서 만나게 되고, 또 동성애자 가족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의 모임에도 참석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보비가 죽은 지 12년이 지난 후, 그녀는 시의회 청문회 앞에서 게이와 레즈비언의 인권을 위해서 이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 그들의 인간적인 권리를 위해서 '휴식 제정일'을 정하는 것이 왜 필요한 지에 대한 감동적인 연설을 하기에 이릅니다.
이 영화는 Leroy Aarons가 쓴 책에 근거해서 Russell Mulcahy 감독이 연출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 진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경건하고 행복한 가정인 듯 하지만 결국 성 소수자인 보비에게는 결코 행복하고 포근한 수용과 받아들임이 없었던 가정의 모습을 보면서, 지금 내가 꾸려 가고 있는 가정이 저런 모습은 아닐까 하는 자책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상식과 나의 규범, 나의 기준과 생각에 맞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오늘 우리 가정에 들이닥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모습도 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실제로 그런 일이 들이닥쳐 있는 현재, 나의 모습은 보비의 가족과 똑같다기 보다는 오히려 더 하다는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보다는,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내 생각으로 평가한 후에 그가 원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 변화되도록 기도하겠다고, 일방적인 사랑의 선포를 한 게 얼마나 많았는지. 그리고 그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하면서 일방적으로 '아멘'해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그렇게 하는 행위가 마치 그를 위한 '최선의 경건한 모습인 것'처럼 가장하면서 말입니다.
보비의 가족들이 자살로 삶을 마감한 보비를 받아들여 가는 과정이 곧 영화의 전개 과정입니다. 결국 온 가족이 이 사회의 '또 다른 보비들'을 위해서 조건없는 사랑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마지막 모습이 얼마나 감동적으로 다가오는지요. 마치 이 영화는 잔잔하지만 큰 목소리로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무조건적인 사랑(Unconditional love)으로 받아주고 수용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평생을 두고 연습하고 행해야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외치는 듯 했습니다.
Mary Griffith가 시의회 청문회에서 했던 감동적인 연설을 한번 전재해 봅니다.
['동성애는 죄악입니다. 동성애는 지옥에서 영원히 있어야 할 운명입니다. 그들이 만약 변하길 원한다면 사악한 삶으로부터 치료될 수 있습니다. 만약 유혹으로부터 고개를 돌리면 그들은 다시 정상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더 열심히 노력한다면요. 효과가 없더라도 말이죠'... 이런 말들은 아들 바비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았을때 바비에게 해 준 말이었습니다.
아들이 동성애자라고 했을 때 저의 인생은 무너졌습니다. 저는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8개월 전, 제 아들은 다리를 뛰어내려 자살했습니다. 저는 게이와 레즈비언에 관한 지식이 없던 걸 후회합니다. 제가 듣고 배웠던 모든 것들이 편협된 생각과 비인간적인 모함입니다. 만약 제가 들은 것 외에 더 조사를 했다면 아들이 저에게 마음을 열었을 때 아들의 말을 들었더라면 후회하면서 여러분과 여기 서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는 바비의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영혼만으로 기뻐하실거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온화함과 사랑이 전부니까요. 제가 동성애자들을 향한 저주를 되풀이 할 때마다 아들 바비를 병들고 변태스럽고 아이들에게 위험한 존재라고 부를 때마다 저는 아들의 자존심, 가치 판단력이 파괴되어 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의 영혼은 회복될 수 없게 망가졌습니다. 바비가 고속도로 육교 위에 올라가서 18개 바퀴가 달린 트럭이 오는 길 위로 뛰어내려 즉사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바비의 죽음은 그 부모가 갖고 있던 게이라는 말에 대한 무지함과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의 희망과 꿈은 빼앗기지 말아야 했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바비와 같은 아이들이 여러분의 모임에 앉아서 여러분도 모르게 '아멘'이 울려퍼질 때 듣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곧 그들의 기도를 멈추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이해와, 수용과 당신의 사랑을 위한 기도를 하지만 여러분이 게이라는 말에 갖는 증오, 공포, 무지함은 그들의 기도를 멈추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집이나 교회에서 '아멘'이라는 말을 하기전에 생각하세요, 생각하고 기억하세요, 아이들이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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