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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버

석전碩田,제임스 2012. 4. 16. 14:50

지난 412일에 개봉한 영화 <비버>를 일요일 저녁 아내와 함께 감상했습니다.  생명의 전화 소그룹 해오름 4월 모임을 앞두고, 함께 공부할 내용을 정리하는 중에 최근에 개봉된 영화 중에서 '심리치료, 상담과 연관이 있는 영화'라는  어느 신문의 소개글을 읽고는 곧바고 달려가 감상했던 것이지요.

잘 나가던 중년의 한 남자가 심한 우울증으로 시달리는 모습을 소개하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월터 블랙(멜 깁슨). 그는 심각한 우울증에 빠진 남자입니다. 그를 통째로 삼켜 버린 블랙홀 같은우울은 이제 머리통까지 빨아들이기 직전입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장난감 회사의 사장이라는 직업, 두 아들과 아름다운 아내(조디 포스터)가 있는 가정의 가장. 외형적으로 그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월터의 삶은 집 수리 정도가 아니라 건물 한 채를 모조리 날려버리는 것 같은극단적 변화 없이는 당장 유지조차 불가능한 상태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그의 아내와 가족들은 따로 살기로 합니다. 가장 가까운지지 그룹이 되어야 할 가족들 마저도 이해하지 못하는 심각한 우울증상...결국 잔뜩 취한 상태에서 목을 매려하지만 욕실 봉은 떨어지고, 10층 높이에서 투신하려고 하지만 뒤로 넘어져 정신을 잃고 맙니다. 눈을 떠보니 쓰레기통에서 구제해 준 낡은 손인형이 말을 겁니다. “내 이름은 비버, 가망 없는 네 인생을 구제하러 왔다.”

그 날 이후 인형처방만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굳게 믿은 월터는 오로지 손에 낀 인형 비버의 입을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을 합니다. 그리고 그의 삶은 마법처럼 안정을 찾게 됩니다. 하지만 비버와 함께 우울에서 벗어난 월터는 이제 비버를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팽팽 돌아가는 현실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면 누구라도 우울증에 빠져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는 이 세상은 참으로 가혹합니다. 있는 그대로를 그저 이해해달라고 하기에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 한심하기 그지 없습니다. 우울증이 만연한 세상입니다.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보이고, 모든 게 모순 투성이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땅에 있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월터 블랙과 같은 증상에 놓여 있는 처지가 아니라고 말하기 쉽지 않습니다. 가장 믿을 만한 지지 그룹, 아니 아내나 사랑하는 자녀들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합니다. 절망입니다. 더 이상 살아갈 소망이 없으니 죽는 것만이 유일한 탈출구 같아 보입니다.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자(아내나 남편, 친구나 자녀 등)마저 없다고 느낄 때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월트 블랙에게는 비버가 구세주가 되어 줍니다. 일종의 기적입니다. 그를 통해서 세상과 소통하게 됨으로써 성공적인 CEO의 역할도 잘 해내고 아내와 작은 아들과도 소통이 가능해집니다. 그렇지만 결국 그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가 구세주라고 믿는 <비버>는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실체가 아닌 가짜를 진짜라고 믿으면서 그를 통해서만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현상은 또 다른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현대인에게 있어 구세주는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돈이 그 구세주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출세와 사회적인 성공이 자신을 구원해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육체적인 사랑이나 마약이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달려가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적인 경험이 자신을 구원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올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수십년 동안 열심히 종교적인 생활을 했지만 손에 잡히는 실체도 없고 변화된 자신을 경험하지 못하자 답답한 마음에 눈에 보이는 실체를 경험하려는 시도를 하다가 이단 종교에 빠지는 현상은 대표적으로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집단 우울증상의 한 예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가짜이며 진짜가 아니라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결국 월트 블랙이 인형 비버를 끼고 있는 왼 손이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하는 엄청난 댓가 지불을 한 후, 본인이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또 그동안 아빠를 지지해주지 못했던 큰 아들이 아빠를 찾아와서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하는 시간부터 치유가 일어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치유는 바로 진정한 사랑과 수용, 그리고 무조건적인 이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힐링을 말합니다. 책으로, 방송으로, 상담으로 당신을 치유할 수 있다고. 몇 백 페이지의 글이, 몇 시간의 수다가, 몇 세션의 위로가 진짜 치유가 될 수 있을까요. <비버>괜찮아 잘 될 거야라는 막연하고 대책 없는 긍정의 힘을 믿지 않는 영화입니다. 대신 나는 불행하다’ ‘전혀 괜찮지 않다고 솔직하게 외치라고 말합니다. 치료는 거기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고. 그리고 어쩌면 썩어버린 부위를 도려내는 고통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비버>는 가짜 치유 속에 더 깊은 병을 얻은 사람들에게 진심의 처방전을 써내려갑니. 심리치료와 상담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감상해 볼 만한 영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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