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히 떨어진 기온 때문에 도저히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어 텐트 밖을 나선 시간이 새벽 3시 30분. 남동쪽 하늘에 떠 있는 초승달과 까만 하늘에 총총 빛나고 있는 수많은 새벽 별들이 섬뜩하기까지 했습니다. 이슬로 촉촉하게 젖은 하늘을 온통 수 놓고 있는 고향 하늘의 별들을 새벽에 올려다 보기는 거의 40년 만인 듯 했습니다.
맞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온 이래 고향의 밤 하늘을 볼 기회는 없었지요. 그런데, 지난 주말 정말 아주 특별한 추억 만들기를 하면서 어릴적 추억이 있는 새벽 밤 하늘을 다시 볼 수 있어 얼마나 신기하고 또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하기야 유년 시절 새벽 하늘을 볼 수 있었던 것은, 경상도 말로 '통시'라고 부르는 화장실이 집 바깥 멀리 있어 무섭고 싫어도 갈 수 밖에 없던, 가난했던 시절의 보잘것 없는 추억이지만 말입니다.
지난 주말, 선산에 벌초 할 때 사용하는 예초기나 각종 장비를 보관하기 위해 산소 근처에 놔 둔 컨테이너 박스에 녹이 나서 그것을 벗겨 내고 새로 페인트 칠을 하는 작업을 하느라 조카들과 추억 만들기 여행을 하고 왔습니다. 명분이야 컨테이너 박스에 페인트 칠을 한다는 것이었지만, 이번에 함께 동행한 조카들과 저의 마음 속에는 아마도, 유년 시절을 보냈던 고향에서의 아련한 추억을 그리워했던 마음이 더 앞섰을 것입니다.
함께 텐트를 치고, 밥을 손수 끓여 먹으면서 또 먼지 나고 페인트를 칠하는 쉽지 않은 작업을 하면서 오랜만에 나누었던 시간들이 얼마나 정겹고 좋던지요. 삭막한 도회지에서 한 사람의 가장으로서, 각자 가족들을 부양하며 살아가느라 진솔한 살아가는 얘기들을 나눌 시간이 전혀 없었는데 이번 추억 만들기 야영을 하면서, 조금만 서로 시간을 내고 또 조금만 서로 여유를 가지려고 결단만 한다면, 언제든지 충분히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는 점에서 저는 참으로 마음이 기쁘고 흐뭇했습니다.
작업을 끝내고, 고향 마을 뒷 산 <할미산성>에 올랐을 때에는, 우리들과 같은 목적으로 멀리 살다 고향을 찾은 다른 마을 사람들이 산을 올랐습니다. 산을 오른 서로의 목적을 확인하고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확인한 우리들은 금새 이웃이 되어 준비해 간 조촐한 음식을 함께 나누면서 정을 나눌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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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가서 취사병으로 발탁되어 한창 적응을 하느라 고생하고 있는 둘째 아들이 전화 올 때마다, 새벽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다고 하소연한다는 이야기를 아내로부터 전해들을 때마다, 지난 주말 내가 새벽녘에 일어나서 올려다 본 그 고향 마을의 새벽 하늘이 자꾸 생각이 납니다. 어려웠던 시절의 그 밤 하늘의 추억이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처럼, 언젠가 아들도 자기가 쫄병 취사병으로 근무할 때, 올려다 본 새벽 하늘의 별들에 대한 추억을 떠 올리면서 아름답게 이야기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삼계탕을 준비해 온 한일..산에서 먹는 삼계탕 맛은 대낄이었어요^&^
삼겹살도 구워먹고....^&^
녹이 나서 붉게 변한 표면을 글라인더로 갈아내고..녹방지제를 바른 후, 그 위에 다시 페인트를 칠하는 작업
마무리되어 가는 작업..다시 깨끗해 진 컨테이너
벌초가 끝난 후 지난 늦여름 내린 엄청난 강수량 때문에 웃자란 풀을 베는 일..벌초를 다시한 기분 ^&^
내 고향 마을(자리섬) 뒷 산인 할미산성에 올라 성주읍을 찍은 사진
같은 마음으로 산을 오른 다른 마을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며....
아무도 줍지 않는 밤 나무 아래서...불과 몇분 만에 줏어 담은 밤...풍성함, 그 자체
해인사 대장경 축제를 다녀오는 길에 잠시 들른 수도암의 전경
중학교 동기가 주방을 지키고 있는 성주댐 근처의 유명한 묵집..정겨운 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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