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목일과 청명을 맞아 하루 연가를 내서 멀리 시골 뒷산에 있는 선산에 들러 성묘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매월 첫째 주 화요일에는 교무위원회와 학과장회의, 행정부서장회의 등 각종 회의가 계획되어 있는 날이어서 피하고 싶은 날이었지만 만사를 제쳐두고 매년 해 오던 일을 거르지 않기 위해서 다녀왔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아버지 세대에서 유일하게 살아계신 고모님을 모시고 다녀 와서 더욱 의미있고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몇 년 전부터 매년 4월 5일과 8월 15일, 1년에 두 번은 어떤 일이 있어도 고향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성묘라고 해야 부모님의 산소 앞에서 그저 간단하게 마련해 간 간식거리를 나눠먹고 한창 새싹이 돋아나는 쑥을 캐면서 한 나절을 산에서 시간을 보내는, 말하자면 우리 살아 남은 후손들의 조촐한 나들이 행사에 불과하지만, 이런 핑계로라도 내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찾을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 지 모릅니다.
성묘 후에 늘 하던대로 마을 뒷 산에 있는 할미산성을 올랐습니다. 40년 전, 여름 철이면 동네 아이들과 같이 소를 먹이 던 이 뒷 산은, 당시만해도 어린 내가 훌쩍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작은 소나무들이 온 산을 뒤 덮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 키가 수십미터가 넘게 자라고 둘레가 아름드리로 성장한 소나무 군락지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산을 오르면서 바라 볼 수 있는 산 아래 풍광들과 산세 들은 그 때 그 모습 그대로였지요.
멀리 남쪽으로는 가야산이 정면으로 우뚝 서 있고 그 앞으로는 첩첩이 첩첩이 크고 작은 산들이 마치 한폭의 동양화 같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내는 장관은 그 때나 지금이나 늘 그대로였습니다. 물론 내가 태어 난 옛 집의 뜨락에 앉아 바라 보는 가야산의 웅장한 모습도 역시 그대로였습니다.
다만 그 마을 골목 골목을 누비면서 성장했던 젊은 친구들은 다 도회지로 떠나고, 이제 마을에는 몇몇 나이드신 어르신 몇 분만이 쓸쓸하게 옛 집을 지키고 있다는 현실이 서글픔을 더할 뿐입니다. 오늘 그 어르신 들의 말에 의하면, 작년 청명 때 우리가 다녀간 후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마을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어르신이 무려 다섯 분이었다니 참으로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예년 같으면 화사한 봄 꽃들이 향연을 벌이고 있어야 할 날이지만, 아직까지 어디에도 봄을 알리는 봄꽃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지난 겨울 혹독했던 추위가 너무 길어서일까요. 그래서인지 이 봄에는 그 어느 해 보다도 봄 꽃들이 더욱 기다려지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할미산성 위에서..멀리 뒤로 보이는 곳이 성주군청 소재지
아버지 세대에서 처음 마을에 자리를 잡을 때, 일본에서 건너와서 생활했던 집
내가 태어난 집의 모습..개조에 개조를 거듭해서 기와 지붕 등을 빼면 옛 모습은 거의 없고..
소죽 끓이던 솥과 부엌...예전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태어난 집의 뜨락에 앉아 담소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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