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날 기독교가 큰 역풍을 맞고 있습니다. 안으로는 교회 내의 크고 작은 문제들로 분열과 분쟁이 끊이질 않고, 바깥으로는 기독교를 반대하는 안티 세력들이 조직적으로 활동을 하는 가 하면, 또 교묘하게 성경을 해석하면서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전하고 있는 이단들이 판을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와 같은 내외적인 문제들 속에서 교회는 점점 그 말씀의 능력과 순수성을 잃어가는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 안에서도 오직 말씀, 오직 성령으로 인내하면서 소망으로 믿음을 지켜내는 것이 부질없는 것 같이 보이고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못한 도덕적인 기준과 삶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날까요? 어떤 이단들은 바로 이런 현상들이 말세에 일어나는 현상이며, 지금까지의 기독교가 가짜였기 때문이라면서 자신들이 가르치는 교리가 진짜라고, 완전히 뒤집어서 주장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이 그 생명력을 다한 것일까요? 세상 끝날까지 승리하신 주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들은 아무 능력이 없는 약속이 되어버린 것일까요?
아닙니다. 2 천년 전에 우리에게 선포되고 또 우리에게 밝히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여전히 놀라운 비밀로 우리에게 주어져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그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여전히 우리의 유일한 승리의 구원의 핵심 메시지가 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비밀을 너무나 값싸게, 또 너무나 쉽게 받아 들임으로써, 삶 따로, 믿음 따로인 삶을 살아가기 때문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의 많은 부분은 교회를 지도하는 목회자들의 잘못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양들을 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욕심에 끌려 사욕을 채우고 또 그리스도를 높이는 대신 자신의 명예와 부, 업적을 자랑하다보니 교회가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교회를, 자신들의 성공의 잣대로 평가하는 도구로만 생각하고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면서 대형 교회 목회를 지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교회를 자기 자녀에게 세습해서 넘겨줌으로써, 마치 교회가 가문의 영광을 드러내는 성공과 부의 상징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통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다보니 교회를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미혹의 교리를 전파하는 이단들은 교회를 비판하고 교회를 조롱하면서 그 세력을 확장하며 창궐해가고 있고, 구원의 확신이 없는 교인들을 다른 복음으로 미혹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 다른 예수
그러나 이런 현상은 지금만 있었던 게 아니라, 이미 성경이 쓰여지는 때인 AD50년 경에서 60년 경 사이에도 있었던 현상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보내는 편지 고린도 후서 11장 3절과 4절에서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악한 자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고후11:3~4)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언급한 것 이외에도 다른 복음에 대한 언급은 더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6절~8절을 읽어 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서 사도바울은 탄식에 가까운 절규를 하면서, 다른 복음 좇아가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것이 엊그제인데, 그 복음을 변형하여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도 베드로도 그의 서신 베드로전서 1장 23절과 25절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3~25)
즉, 베드로 사도는, 복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이 곧 복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나 수고,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또는 우리의 육체적인 잘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이 복음, 즉 좋은 소식(Good News)입니다. 그런데 몰래 들어온 거짓 교사와 선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 진 복음의 비밀을 왜곡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과 다른 길을 제시하고 있는데 바로 그것이 “다른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이 어떤 것인지 한번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날 설교 말씀을 듣다가 자신의 죄가 깨달아 지면서 눈물 콧물 흘리면서 회개를 했다고 간증하면서 그 때 구원의 확신이 왔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이 말이 맞을까요?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대답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우리가 회개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구원을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다른 복음을 믿고 있는 것이지요. 아마도 이와같은 사람은 예수 믿은 후에 조그마한 죄라도 짓게 되면 회개해야하고 그 회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면 자기 스스로 마음에 자유함이 없어 전전긍긍하게 될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한번 들어볼까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을 때 방언이 터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에 확실히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신령한 방언의 은사를 자기에게 베푸시면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맞을까요? 틀린 말입니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여러 가지 은사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방언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주셨다고 믿는 것, 이것도 바로 다른 복음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암이 걸렸는데, 주님께 간절히 치유를 위해서 기도했더니 불같은 성령이 임해서 자신을 치유해주셨다고 간증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얘기합니다. 이 말이 맞을까요? 하나님이 나의 병을 고쳐주셨기 때문에 내가 구원받은 것일까요? 명백하게 틀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2천년 전 이 땅에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 많은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고쳐주셨지만 그들 중에 예수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그저 육체적인 질병만 고침을 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질병의 고침과 나의 영혼의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물론 내가 말씀으로 구원받은 확신이 생기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할 때 함께 따라 오는 은혜의 역사로 인하여 육체의 질병이 고쳐졌을 때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께서 베푸신 치유의 능력이라고 믿음으로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에베소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런 표현을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엡1:13)
“먼저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믿어 약속의 인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부분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회개했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극적인 어떤 종교적인 체험을 했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방언이나 신령한 은사를 할 줄 안다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 즉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으로 구원을 받지 않고 다른 것으로 구원을 얻는다든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내가 믿고 있는 복음은 다른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구원은 결국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 말씀은 구원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다시 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은 무엇일까요?
죄를 간과하심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복음의 내용은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는 죽어야 할 죄인인데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대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으로써 우리 죄를 대속해주셨고, 그 사실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요지입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 양과 비둘기 등 동물의 피를 흘려 화목제물로 드려 제사를 드림으로써 죄 사함을 얻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그림자 예표였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몸을 사람들을 위해서 드림으로써 인류의 죄의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시는 구속사역을 성취하셨습니다. 이 구원 사역의 성취는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 안에서 완벽하게 완성된 사역입니다. 이를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9:12)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3:25)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원수되었던 담을 허시고 단번에 드려진 화목제물이 되셨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가 우리에게 나타나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함으로써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모든 죄를 “간과하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믿음으로 이 말씀에 의지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해결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순간, 그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의 모든 죄가 하나님께서 간과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구속의 방법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감추어졌다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하나님의 구속의 방법은 마귀와 사탄도 알고 있는 천하에 공개된 계획인데, 이 엄청난 비밀을 내가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고 믿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내게 믿어지는 것이 은혜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사실을 진정으로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그리스도의 말씀의 언약에 따라 새로운 언약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죄를 다시 기억지 아니하심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가는 것이니라(히8:12~13)”
무슨 말 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간과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말씀으로 새언약을 주시는데, 우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6절에서부터 18절의 말씀은 이것을 더욱 구체적으로, 새 언약을 우리 마음과 생각에 새겨 영원히 우리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히10:16~18)”
복음의 비밀과 신분의 변화
말하자면,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간과하시고 우리 죄를 기억지도 않으시겠다는 새 언약을 우리 마음과 생각에 새겨 주신 놀라운 은혜의 사건입니다. 이것은 내가 무슨 선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비밀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여러 군데서 우리에게 복음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게 하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도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말을 듣고 사람들이 복음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듣고 이해하고 믿음에 이르게 되도록 기도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엡6:19)”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골2:2)
로마서 1장 16절과17절 말씀을 읽어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6~17)
그러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이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나의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바로 신분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행위의 법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으려고 하던 곳에서 옮겨 이제는 믿음의 법으로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는 곳으로 옮겨진 법적 신분의 변화가 생긴 것입니다. 감정적으로 황홀하지도 않고 또 기적과 같은 체험, 또 방언과 같은 은사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법적인 놀라운 신분의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 근거가 무엇입니까? 바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의
지금까지는 자기 의로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이었다면 이제는 지혜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의 의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2~3)”
로마서 3장에 기록된 놀라운 법적 신분의 변화에 대한 선언을 한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롬3:24~28)”
우리는 이 말씀에 근거하여 “나는 의인이다”라고 담대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확신입니다. 히브리서 8장과 10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새언약의 말씀에 근거하여 나는 확실하게 구원받았다는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교묘하게 속이는 이단의 가르침에 넘어가서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서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구원의 확신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교회와 증거 장막에 와야만 구원이 있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언약의 말씀에 근거한 구원이 아닌 다른 형태의 구원을 이야기하는데도 의심없이 믿어버리는,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신앙하는 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지금은 “계시의 때”이기 때문에 특별한 무엇이 필요한 시대라고 주장하는 주장도 거짓말일 뿐 아니라, 계시의 때에는 구원을 얻는 방법이 예수가 아닌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터무니없는 거짓말일 뿐입니다.
요한일서 5장 9절과 10절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찐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요일5:9~10)”
우리가 구원받은 증거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의 안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증거가 증거장막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단들은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경 66권의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계시의 말씀을 증거한다고 주장하는 구원자, 이긴 자라고 주장하는 이단의 교주의 설교(계시)가 참 진리라면서, 자신들의 집단인 증거장막에 가야 구원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속이고 또 속고 있습니다. 예수 이외에 다른 복음, 다른 예수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긴 내용을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는다”는 말을 할 때 그 속에는 첫째,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의로 우리를 의롭다 하셨다는 사실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를 간과하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악한 마귀 사탄은 계속해서 우리 마음 속에서 이렇게 참소합니다. “죄 많은 네가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없다고 말할수있나? 너는 네가 지은 죄 때문에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신데, 어떻게 네가 지은 그 많은 죄를 기억할 수 없겠어.”라고....
그러나 이런 사탄의 속삭임이 계속될 때, 우리는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의 죄를 간과하시겠다는 말씀에 근거하고 또 우리의 죄를 기억도 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에 근거해서 사탄에게 선포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시고, 사흘만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때 함께 부활하여 의로운 자가 되었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확신을 가지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죄를 완전히 도말하심
이사야서 44장 22절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내가 네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네 죄를 안개의 사라짐 같이 도말하였으니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니라”(사44:22)
우리 죄를 간과하시겠다는 말씀, 그리고 기억치 않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과 함께 이곳의 말씀은 우리의 죄를 도말(완전히 없애버리심)하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죄에 대한 간과하심과 기억치 않으심, 그리고 도말하심의 약속은 앞으로 우리가 지을 미래의 죄까지도 포함된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로마서 8장 1절~2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로마서를 기록한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써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 로마서를 기록하는 15년 후에도 여전히 정죄함이 없다는 확신에 찬 선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에 이르지 아니함
예수 믿고 구원을 얻은 사람은 심판을 받을까요? 라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심판을 받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9장 27절에 있는 말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는 성경 구절에 근거해서 그리스도인들도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분명히 약속하고 계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 그리고 예수를 믿는 자는 영생을 앞으로 죽으면 얻을 것이 아니라 이미 얻었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이미 옮겼다고 선언하고있습니다. 할렐루야.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입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10:10)
교묘한 속이는 교리를 가르치는 이단은 마태복음 7장 21절~23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이 땅에서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믿어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들이 주장하는 이단의 교리가 참 진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마태복음의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1~23)”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을 하기 위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6장 39절과 40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6:39~40)
하나님의 뜻은 예수를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떠나라고 합니다. 불법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요한일서 3장 4절에서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3:4)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가 곧 불법입니다. 불법이 죄요 죄가 불법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죄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을까요?
요한복음 16장 8절과 9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요16:8~9)”
바로 예수를 부인하고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여 주여하는 자 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 성경구절이 엉뚱하게 인용되어 자기들이 주장하는 계시의 종교, 계시의 말씀을 가진 이긴 자를 믿지 않고 받아 들이지 않는 자는 다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교묘하게 속이는 자들이 바로 이단의 가르침입니다. 다른 예수, 다른 복음을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예수를 믿되, 말세에는 예수의 영이 임한 “사람”을 믿어야 한다든지, “계시의 말씀”을 가졌다면서 엉뚱한 “사람”을 믿게 만드는 자들인 것입니다. 말씀을 교묘히 속이는 이단들은 자신들의 교주인 이긴 자에게 예수의 영이 영으로 임했다는 엉뚱한 주장을 하고 그 증거로 요한 계시록의 약속이 실상으로 이루어진 증거를, 터무니없는 자신들끼리의 싸움과 분열이 증거라고 들이대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수의 영이 영으로 임했다고 주장하는 주장도 거짓 주장이며, 또 그것을 증거하는 실상의 증거로, 계시록을 풀이하는 해석들이 하나같이 거짓말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하여 속이는 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모든 주장들이 거짓으로 일관되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요한일서 3장 8절~10절의 말씀을 읽고 긴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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