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분 묵상

눅 18:35~43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석전碩田,제임스 2010. 4. 29. 17:06

2년 전, 제가 교회의 2부 성가대 대장을 맡으면서 지금까지 해 오고 있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성가 연습을 시작하기 전 짧은 시간을 할애해서 말씀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 한 주간 동안 성경 말씀을 읽다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말씀을 펴서 함께 은혜를 나누는 것이지요. 주일 아침 시간에는 대원들이 다 모이는 시간이 예정된 시간보다 항상 늦어지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이 급하지만, 연습을 시작하기 전 아주 간단하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것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하나님은 이 시간에 우리에게 참 많은 것들을 얘기해 주셨습니다  

 

히 최근에 함께 나누었던 누가복음 1835절부터 43까지의 말씀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우리 마음 속에 구체적인 소원(기도 제목)을 주시는 과정을 통해서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묵상할 수 있었던 본문 말씀이었습니다. 이 일 후에 우리 성가대에서는 서로 구체적인 기도제목을 나누게 되었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아름다운 분위기가 만들어졌지요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무리의 지남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저희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 하니, 소경이 외쳐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앞서 가는 자들이 저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저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저가 가까이 오매 물어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좇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본문을 읽다 보면 한 가지 의아한 것이 있습니다. 소경이 소리 질러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할 때 그 소경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마도 상식적인 사람이라도 당연히 알 수 있을 터인데, 예수께서 굳이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 정도라면, 묻지 않고서도 소경이 원하는 바가 뭔지를 당연히 알 수 있었을텐데 왜 굳이 이렇게 물어보셨을까 하는 것입니다  

 

는 이 본문을 묵상하다가, 소경이 예수님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대화가 아마도 지금 성경에 기록된 것보다도 훨씬 더 상세하고 많이 있었겠지만, 성경을 기록한 누가가 긴 이야기 중에서 일부는 생략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핵심만을 간추려서 기록하다 보니 이렇게 의아스럽지 않았나 상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누가가 생략했던 대화 내용이 무엇인지를 유추해보면 더 쉽게 이 장면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본문의 마지막 말씀인 43절을 보면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 소경은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이 간절히 바라는 바대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시 보는 기적 때문에 소경이었던 사람이 '예수님이 대단한 분'이라든지, 아니면 기적 그 자체 때문에 열광하면서 기뻐만 했다고 기록하지 않고,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표현으로 미루어 보아, 아마도 이런 기적이 있기 전에 예수님은 그 소경에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질문을 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봅니다.  

 

"너는 내가 너를 다시 볼 수있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느냐? 이런 일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너는 아느냐? 나는 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에 순종할 뿐임을 아느냐? 그 하나님이 바로 지금 이 땅, 바로 네 앞에 있으면서 살아계신 사실을 아느냐?" 

 

, 예수님은 소경을 다시 보도록 고치는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소경 뿐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 자신이 누구이며, 또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분명하고도 단호한 일깨움을 주는 질문을 하셨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 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소경이 눈을 뜨는 기적을 행했는데 소경이었던 '그 사람'뿐 아니라, 주위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성경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반드시 지금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그 사실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1:6) 아마도 예수님은 이런 질문을 통해서, 그 소경으로 하여금 하나님 한 분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그로 하여금 알게하셨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소경은 이런 대화를 통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로 자기 앞에 서 계신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저 평소에 막연하게 보기를 원하는 그런 열망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구체적으로 원하는 바를 표현하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렇습니다. 저는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표현할 수 있었다는것이지요.  

 

도 바울은 빌립보서 213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 마음 속에 그 분의 뜻에 맞는 마음(소원)을 일으켜 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이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속에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응답하시는 과정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그 응답은 나의 욕심을 이루는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응답이기 때문에 결국 살아계신 하나님 자신이 찬송을 받으시는 결과를 낳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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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여러분은 어떤 기도제목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혼자만 갖고 있지말고 그 기도 제목을 함께 나누시기 바랍니다. 내가 갖고 있는 기도 제목을 나누면서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기도하기로 결단하는 것, 바로 그것이 <믿음의 행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기도하면 들으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믿기때문에 공개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 제목을 함께 공유하는 것은, 그 기도가 응답을 받은 후에, 살아계셔서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을 미리 바라보는 믿음이 있는 삶의 자세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계시면서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그 기도를 응답하시고 영광 받으실 하나님도 믿음으로 바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동역자들과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누면서 그 제목들을 중보하고 도고하는, 이런 믿음의 기도가 날마다 순간마다 드려짐으로써,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응답하셨노라고 간증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는 은혜가 충만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