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1분 묵상

[마태 20:1~16]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온 자

석전碩田,제임스 2008. 12. 2. 19:07

“하늘 나라는 자신의 포도밭에서 일할 일꾼을 찾으려고 아침 일찍 나간 주인과 같다. 그는 일꾼들에게 하루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 을 주기로 하고, 그 일꾼들을 포도밭으로 보냈다.

주인이 오전 9시쯤에 다시 시장에 나갔다가 거기서 빈둥거리며 서 있는 몇몇의 사람들을 보았다. 주인이 그 사람들에게 말했다.  ‘당신들도 포도밭에 가서 일하시오. 적당한 품삯을 주겠소.’  그러자 그들은 포도밭으로 갔다.

이 사람이 다시 낮 12시와 오후 3시쯤에 나갔다. 그리고 똑같이 말했다.  또 오후 5시쯤에도 시장에 나가 또 다른 사람들이 거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왜 당신들은 하루 종일 빈둥거리며 서 있습니까? 그들이 대답했다. ‘아무도 우리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도 나의 포도밭에 가시오.’

 

저녁이 되자, 포도밭 주인이 관리인에게 말했다. ‘일꾼들을 불러 마지막에 온 사람부터 맨 처음에 왔던 사람까지 품삯을 주어라.’  오후 5시에 고용된 일꾼들이 와서, 각각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이제 맨 처음에 고용되었던 일꾼들이 왔다. 그들은 더 많은 품삯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그러자 그들은 포도밭 주인에게 불평을 하였다. ‘저 사람들은 겨우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는데, 하루 종일 뙤약볕 아래서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취급하는군요.’  그러자 포도밭 주인이 말했다. ‘친구여, 나는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없소. 당신들은 한 데나리온을 받기로 나와 약속하지 않았소?  당신 것이나 가지고 돌아가시오. 나는 나중 사람에게도 당신과 똑같이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오?  내가 자비로운 사람이라서 당신의 눈에 거슬리오?’   그러므로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

 

성경에는 비유가 참 많이 등장합니다.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비유를 드는 것은, 하고자 하는 내용이 어렵거나 듣는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할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에 비유가 많이 등장하는 것은 그런 면에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이 땅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땅에 속하지 않은 '하늘 나라의 이야기'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과정이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된 요한복 18장의 내용을 읽어가다 보면 재미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당시 교권을 잡은 대제사장과 유대인의 지도자들에 의해 끌려 온 예수를 로마의 총독 빌라도가 심문을 하는 중에 하는 대화의 내용입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이것은 네가 스스로 한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네게 한 말이냐?"

"나는 유대인이 아니오. 당신의 민족과 대제사장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겼소. 당신은 무슨 짓을 행했소?"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나라였다면, 내 종들이 싸워서 내가 유대인들에게 잡히지 않게 했을 것이다. 이제 내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네가 왕이란 말이냐?"

"너는 나에게 왕이라고 바르게 말하는구나. 사실, 나는 이것을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것을 위해 세상에 왔다.

나는 진리에 대해 증언하려고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내 말을 듣는다."

"진리가 무엇이오?"

 

이 대화 내용 중에서 가장 의미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있는 내용이, '진리에 속한 사람은 내 말을 듣는다'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속한 곳, 즉 '진리'에 서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절대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러지 않고서야, 진리(the truth)이신 예수를 앞에 세워두고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물어보는 아이러니한 질문은 하지 않았을테니까요.

 

이렇듯 성경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비유를 들어 진리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 이곳 저곳에 든 비유들이 더 어렵고 해석하기 힘들 때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이는 우리 인간이 하늘 나라의 원리를 깨닫기엔 너무도 멀리 유리(遊離)되어 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겠지만 말입니다.  이 세상의 가치관과 풍조, 원리 등에 찌들려 있는 존재, 아니 태생적으로 도저히 가망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마태복음 20장의 비유도 이런 비유 중의 하나입니다.  대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되는 건 뭘 의미하는 걸까?  어릴적부터 저는 이 본문을 읽을 때마다  제 나름대로 이 비유를 이렇게 해석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 첫째가 되는 것 보다 꼴찌가 되려는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돼.' 

말하자면 이 구절을 도덕적, 규범적으로 해석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고 이해하기에는 늘 마음 한 가운데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도덕적이거나 규범적인 수준에 머물 수 밖에 없는것인가 하는 아쉬움 말입니다.

 

*

 

 퇴근 시간 한 시간 전인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온 사람이 일꾼들의 하루 받을 온전한 삯을 받았을 때, 다른 먼저 온 일꾼들은 더 많은 품삯을 받을 것을 기대했다가, 결국 오후 5시에 들어온 일꾼과 자신들도 똑같은 금액의 삯을 받게 되자 불평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비유를 읽으면서 먼저 온 일꾼과 제일 나중에 온 일꾼이 왜 똑같이 받아야 하는가, 주인이 잘못되었는가 잘 되었는 가 등을 따지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포도원 주인은 너무도 명백하게 말합니다.

 

먼저 온 일꾼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이 세상의 원리로 볼 때, 마지막에 들어 온 일꾼은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불과 한 시간 밖에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며 포도원에서 내 세울 게 하나도 없는 존재입니다.  또 규범적이고 도덕적인 잣대로 판단해 보더라도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땀을 흘리며 수고한 다른 사람에 비한다면 받을 만한 아무 자격이 없는게 맞지요.  그런데도 포도원 주인은 받을 자격이 아무것도 없는 그에게, 삯을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비유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이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 온 일꾼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도록 하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지만, 전적으로 포도원 주인이 베풀어 준 은혜로 삯을 받을 수 있었던 일꾼이 바로 '우리'라는 사실을 자각하도록 하고 싶은 게 이 비유의 목적이지 않을까요?

 

정작 우리는 살아가면서 너무도 흔히 9시에 포도원에 들어간 자처럼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늦게 온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 스스로는 단지 일찍 들어온 사실을 자랑하고, 또 자기 자신이 몸소 이뤄놓은 그 때까지의 행위와 수고, 노력에 뿌듯해 하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면서 살아가는 태도 말입니다.   어떤 때에는 자기가 하나님인양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판단하면서 정죄하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이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온 자, 즉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는 자이며 단지 은혜를 받은 자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온, 은혜받은 자임을 깨닫는 것은  비록 그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자보다 포도원에는 늦게 들어왔지만,  깨달음의 세계,  진리의 세계에는 먼저 들어 온 사람이라는 뜻이니까요.

 

"그러므로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스스로는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에베소서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