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먹어도 개와는 안 먹는다

도둑과 경찰과 이웃

석전碩田,제임스 2008. 8. 9. 18:22

도둑을 맞아 보지 않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나 도둑을 맞아본 경험이 있으면 도둑 맞은 사람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잃어버린 물건들의 시장 가격에 관계없이 주인에게 귀한 것들이어서 그 심정의 참담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신혼 초에 도둑을 맞았다. 결혼을 기념해서 장만한 정장 한 벌씩과 신부의 겨울 외투가 우리의 전 재산이었다. 둘이 다 직장엘 다녔는데 그 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그래 둘이 다 막 입는 헌옷을 걸치고 출근을 했다. 그리고 퇴근 후 돌아와 보니 방문도 장문도 활짝 열리고 텅 비어 있었다. 그 순간 정말 가슴이 텅 비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때는 밖에 널어둔 빨래나 밖에 둔 미역이나 채소 등을 훔쳐가던 때였다. 우리는 전 재산을 잃은 것이었다.

 

한 해쯤 전인가 선배 한 분이 도둑을 맞았다. 옷장과 서랍란 서랍은 다 열려 흩으려져 있더란다. 그리고 없어진 것은 도둑이 처분하기 쉬운 귀금속류더란다. 너무나 황당하고 또 겁이나더란다. 차차 정신을 차리고 자연 이웃에 알려지게 되어 사람들이 모여 걱정도 위로도 하였던 모양이다. 할 수 없지 싶은데 경찰도 왔더란다. 이 경찰관 질문이 잊혀지지 않는다.  “신고 할 것이냐?” 고 묻더란다. ‘경찰이 왔음 그것이 곧 신고지’ 하는 생각으로 한심해 하는데 또 "도둑이 앞문으로 들어왔느냐 뒷문으로 들어왔느냐?" 고 묻더라나. 어이가 없어 신고 안 할 테니 가라고 했단다.

 

얼마 전 도둑을 맞았다. 남이 생각하기엔 별 것 아니었다. 세 아이들 어릴 적의 돌 반지 하나씩하고 무슨 무슨 기념으로 받은 금반지 몇 개와 아껴 모아둔 딸 아이의 세배 돈이었다. 그 하나씩 남겨 둔 돌 반지는 어려운 시절 다 팔아버리고 그래도 장성한 아이들에게 주려고 남겨둔 반지들이어서 도둑이 가져오면 돈으로 바꾸어 주고 싶을 만큼 아까웠다. 딸 아이도 새 지전(紙錢)으로 바꾸어 잘 간직해 둔 돈이 없어져 몹시 서운한 내색이었다. 그 도둑은 우리의 물질만을 훔쳐간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간직하고픈 마음’을 훔쳐갔다. 들은 바도 있고 경험한 바도 있어 경찰에 신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안타까워 여기저기 도둑맞은 사실을 얘기해도 “경찰엔 신고하지 말라. 공연히 오라가라 귀찮게만 군다.”는 것이 형편을 아는 모두의 충고였다. 그래도 얼마 지나 파출소에 가서 “파출소에 우리의 도둑맞은 사실을 신고하려는 것이 아니고 이 동네에 도둑이 든다는 사실을 알려야겠기에 와서 알린다.”고 하였다. 경찰관 말 “그러기에 늘 조심하세요.” 였다. 물건을 찾아 주리라는 생각은 꿈에는 없었으나 그래도 걱정과 위로는 못할망정. . . 여기서 사회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우리 집은 연립주택인데 계단을 오르면 두 집 문이 마주하는 이층이다. 앞 집 주인 여자의 말이 그 날 (도둑 들던 날) 누군가가 우리 집 문을 계속 두드리더란다. 집이 비었구나 싶어 가만히 있었는데 아마 그 때 집이 빈 걸 확인하고 이웃도 기척이 없으니 들어가 뒤져갔나 보다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기척이라도 하지’ 하며 서운해 했으나 이미 ‘이웃의 의리’ 조차 잃어버린 후였다.

 

도둑에게 마음을 도둑맞고 경찰에게 신뢰를 도둑맞고 이웃에게 의리를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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