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먹어도 개와는 안 먹는다

분별

석전碩田,제임스 2008. 8. 9. 18:21

때와 장소 또 형편에 따라서 할 일과 안 할 일을 분별해서 바르게 하는 것이 지혜의 한 부분이다.  분별 못하는 자들을 가리켜 '똥 오줌도 못 가린다'고 한다.  그런 어리석은 자를 가리켜 평안도에서는 '띠(똥의 평안도 방언)도 모르고 똥 장사 한다'고도 한다.

 

사람이 어려서는 재롱둥이여야 한다면 젊은 시절에는 혈기 왕성해서 씩씩해야 한다. 노인이 되어서는 노인 행세를 해야 하는 것이다. 노인이 재롱을 떨거나 젊은이 흉내를 내어선 안 된다. 요샌 모두 젋어 보인다면 좋아들 한다.  노인들도 젊어 보인다면 좋아한다.  스케이팅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한 번은 스케이트장엘 갔는데 80은 넘었음직한 노인이 빨간 타이츠를 입고 스케이트를 타더란다. 젊어서 좋아하던 운동인지는 몰라도 보기가 싫더란다.  교수 여럿이 함께 결혼 식장엘 간 적이 있었다. 은퇴를 앞둔 한 교수를 젊은 교수가 참 젊어 보인다고 하자 무척 기쁜 표정이었다.  그래 내가 "이젠 외모로 칭찬들을 때는 지나지 않았느냐?"고 했더니 섭섭해했다.  노인에게 젊어 보인다는 것은 '아이 같다'는 말이 아닌가.  공자의 <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를 다시 생각해 봄직하다.

 

장소를 분별하는 것 또한 지혜다. 목욕탕에서는 벌거벗어야 하고 수영장에서는 수영복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결혼식에서는 함께 즐거워해야 하고 상가에서는 조용하게 숙연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옳다.  한 번은 계모 밑에서 자란 신부의 결혼식 주례를 한 적이 있다. 한참 예식이 진행되는 중에 신부가 울고 계모라는 이도 울고 다른 가족인 듯 보이는 여인들도 모두 따라 울었다.  참으로 난감했었다.  상가집에도 가 보면 어떤 집에서는 호상(好喪)이라고 하여 지나치게 웃고 떠들어 민망하기도 한다.  어떤 상가에선 고인의 며느리가 너무도 행복한 표정이어서 민망해 한 적도 있다.

 

처지에 따라 처신을 분별하는 것도 중요하다.  '추워도 곁불 안 쬔다'는 옛날 양반의 자세는 지나친 면이 있다해도 처신을 바로 가지려는 자세임엔 틀림없다.  사람에겐 해야 할 일이 있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는 법이다.  각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해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들도 있는 것이다. "목사는 명예와 돈과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면서 평생 이를 지키고 존경받는 목사님이 계시기도 했다. 가령, 성직자나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 땅 투기를 하고 퇴폐영업을 한다면 어떨까? 

 

나는 유학하고 돌아와선 "나는 한국에선 영어 안 쓰고, 운전 안 하고, 골프 안친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고 아직 지키고 있다. 되지 못하게 영어 섞어 쓰는 꼴들 보기 싫어서다.  내 성품으로는 서울 거리의 불법 운전자들과 단 오분을 함께 달릴 수 없을 것 같아서이다.  또 땅 좁은 우리 나라에서의 골프는 죄악에 가깝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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