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먹어도 개와는 안 먹는다

나의 아버지

석전碩田,제임스 2008. 8. 9. 18:20

나의아버지는 사범대학교를 나와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다.  어릴 적 생각에도 그림을 참 잘 그리셨다. 교과서는 친 필로 쓰시고 삽화도 직접 그려서 쓰시고 하셨다. 식구들 밥 먹는 모습을 연필로 그리면 어찌나 모습들이 똑같은지 모두들 즐거워하곤 하였다. 크레용으로 그린 사람이나 말은 살아있어 곧 말을 하고 뛰어 나갈듯 하였다. 책을 많이 읽고 글도 많이 쓰셨다고 하는데 전쟁통에 다 잃고 1.4후퇴때 피난지에서 쓰신 시조(時調) 몇 수가 남았을 뿐이다. 아버지는 모태 신앙을 이어 받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 이어서 기도, 신앙고백의 분위기가 가득한 시조들을 남기신 것 같다. 생전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시조들을 여기 싣는다. 맞춤법은 원문대로 두었다.

 

오늘도 소리없이 가는비가 나립니다

남의집 영창앞에 소리없이 내다보면

봄비도 반갑기보다 먼저 설업습니다

 

독주(毒酒)를 박아지로 퍼마시고 대취하여

실컷 울다가 잠이들어 죽었으면

이세상 괴로움에 놓여놀까 하노라

 

배는 깨어지고 무인도에 기어올라

사방을 살펴보니 망망한 대해외다

어디서 구원선와서 나를구해 주리까

 

연약한 내어깨에 다섯식구 매어달려

요단을 건너려니 저도나도 힘이드네

임이여 그옛날처럼 길을 내어 줍소서

 

백주에 이불쓰고 꿈을 청해 보았더니

꿈초차 괴로웁고 설어워서 울다깼네

세월이 하요란하니 꿈이나마 즐기랴

 

집떠나 두달을 죽지않고 살었노라

밥먹고 소금먹고 명이길어 살었노라

하늘이 먹여살리시니 죽지않고 살리라

 

날씨가 따뜻하니 옛생각이 절로난다

생각은 하염없고 하품 끝에 눈물흘러

흐를는 눈물뜨꺼워도 닦을줄을 몰라라

 

옛날의 터전으로 돌아가 보았더니

내어려 놀던때와 달라진것 없더이다

반가워 울다가꺠인 자난밤 꿈이외다

 

그누가 장수(長壽)함을 복중(福中)에다 꼽았던고

내나이 설흔넷에 가진고초(苦楚) 겪었으니

고생이 부족한이는 칠십까지 사시소

 

겨울이 이르르면 봄도또한 가까운법

말없이 떨며떨며 참고참고 참노라면

숨어서 오는내봄을 밤가히도 만나리

 

내일은 순풍으로 꽃이피는 항구까지

인도해 주심으로 지금고생 잊으려니

기대와 간절한기구(祈求) 임은굽어 봅소서

 

 

이러니 어찌하며 저러니 어찌하랴

세상사 인력으로 되는일이 없는줄을

깨닫고 사는날까지 임만믿고 살리라

 

알았노라 알았노라 나이제야 알았노라

사람의 한평생이 하로하로 속아가다

스러히 죽는것임을 인제서야 알았네

 

겨을날 피난길에 굶어서도 죽지않게

얼어서 죽지않게 유탄(流彈)에도 죽지않게

품속에 보호해주신 임을어이 잊으랴

 

믿자와 삼십년에 날속인적 없으시고

범사(凡事)에 합동(合同)하여 유익(有益)케만 하셨으니

미쁘신 임의사랑을 못내감사 하노라

 

간밤에 소리없이 나린비가 봄비런가

시내에 물소리가 반가히도 들리느니

겨울이 악을 쓸사록 봄올것을 믿노라

 

곰곰이 생각하니 진퇴양난 내신세라

전란에 직업잃고 집도 잃고 돈도없네

남은것 내임뿐이니 울며 놓지 않으리

 

소고기 두근 사다 국을한솥 끊여놓고

고기는 먹으라고 서로서로 권하면서

임꼐서 나리신은혜 못내감사 하노라

 

 

섣달밤 춥고긴데 쫓게나온 설은몸이

볏짚을 파고들어 별과같이 새우렬제

가까이 포성요란해 어쩔줄을 몰라라

 

눈내린 고갯길이 험하고도 무서웁다

여기도 국토연만 마음이리 조이는고

언제나 이세월다가서 정든산전(山田) 가꾸랴

 

여위고 지친식구 다섯을 끌고오니

바람은 간데 없고 양지짝에 조름온다

피난처 틀림없다 문경군(聞慶郡)안 가은면(加恩面)

 

경사(慶事)를 듣게되려니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서

은혜(恩惠)를 더하시려니 문경군내(聞慶郡內) 가은면(加恩面)서

믿는맘 어여삐여기사 기구(祈求)들어 줍소서

 

즐겁던 정이월도 밤이길어 한이로다

이근심 저걱정에 뜬눈으로 새웠노라

춘삼우러 밤짧은적이면 이대도록 애타랴

 

먹어도 배안부르고 누어도 잠안오네

날마다 할 일없고 갈데없고 올이없네

전대도 가벼워만가니 한숨겨워 하노라

 

가노란 말도없이 떠나온지 다섯해라

아마도 노여워서 꿈길에도 못뵈는님

언제나 돌아가 뵙고 백배사죄(白拜謝罪) 하리까

 

 

솔밭에 버섯따던 즐거웁든 옛날이여

시내에 고기잡든 하그리운 옛날이여

오늘은 옛날그리워 온종일 설어워

 

백설은 흩날리고 마음은 어두웁다

가마귀 까욱까욱 슬피도 우는고녀

시절이 하수상하니 금수(禽獸)인들 안울랴

 

여기가 어데메뇨 고향에서 이천리라

첩첩산중이라 돈닙만한 하늘아래

밤마다 맺는꿈에도 고향그려 우노라

 

산첩도 웁니다 금수도 웁니다.

귀인도웁니다 필부(匹夫)도 웁니다

이땅에 곡성(哭聲)이 진동하오니 주여굽어 봅소서

 

급빨만 뛰워보내고 어데메로 갖는고

날마다 네글보고 서름더욱 새로워

또다시 널보게되면 고대죽다 한하랴

 

입춘도 지나것다 우수도 가까운데

여한(余寒)은 맵고차고 눈보라는 웬일이랴

가노라 악쓰는 겨울이니 하는대로 두어라

 

고향이 폭격으로 다탓다는 소문듣고

밥맛도 없어지니 소망도 끊어지려네

하나님 살아계시니 믿고의지 하리라

 

 

궂은 잦었이니 좋은 일도 잦으리라

오늘은 설어우니 내일에는 웃으리라

사철이 겨울아니매 봄은그예 오리라

 

솥에는 밥이 끊고 남비에는 장이끊네

나무를 짚이면서 주님은혜 생각하니

석앵에 머리숙이고 못내감사 하노라

 

고향은 폭격으로 다탓다 하옵는데

어데로 가오릿가 어데가야 살으릿가

새벽별 되시는주여 선(善)히인도 합소서

 

가노라 정든집아 다시보자 신성원(信成園)아

눈물로 작별짓고 떠난온지 다섯해라

세사(世事)는 돌고도나니 돌아갈날 있으리

 

북방이 소란키에 허둥지둥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오고 들에는 나화(裸花)로다

오늘은 많이 왔으니 편히쉴까 하노라

 

족한줄 몰으고서 쓰다다다 말많더니

천견(天譴)을 받고서야 옛살림을 그리노라

이후로 족한줄 알면 마음항상 편하리

 

병들고 가난한날 고향마저 잃었노라

그래도 내일날세 화창(和暢)키를 빌고믿네

어느곳 아늑한포구(浦口)에 주여인도 합소서

 

남방 두메까지 서러히도 흘러와서

날마다 북향하여 가삼치며 통곡함은

허물로 잃은 고원(故園)을 못내그려 함이라

 

바벨론 하수(河水)가에 거믄고를 걸어놓고

고토(故土)가 그리워서 슬피울던 옛사람들

날마다 울던 그뜻을 아는오늘 슬퍼라

 

정월 대보름날 날씨도 좋을씨고

마뤠 앉어시니 햇볕에 다정하다

기둥에 입춘방(立春榜)붙어 춘광선도(春光先到) 길인가(吉人家)

 

반갑다 동남풍아 봄의선구(先驅) 네아니냐

꽃들은 어데지 제비는 또 어데까지

와서들 지체하드냐 곧좀 오라 일러라

 

불같이 타다가도 된서리 단한번에

가엽시 슬어지던 옛동산의 따리아꽃

가슴에 못박히우던 스믈다섯의 가을

 

분홍빛 비단옷에 고히 감춘 젖가슴을

살며시 들어내어 아기에게 젖먹이던

랑두선(浪頭線) 차안에서본 젊은 중국 어머니

 

비맞은 따리아처럼 눈물에 젖던처녀

지금은 제복벗고 몇아기의 어머닐꼬

십년전의 옛일이건만 안잊히는 꽃송이

 

옥야(沃野)에 비가나려 길이전혀 니녕(泥濘)인데

오십리 길을걸어 만보교(萬寶校)를 찾어가서

뜨거운 저육(猪肉)을 먹든 만주서의 옛 기억

 

소월의 슬픈노래 생각나는 저녁이여

이마음 소녀처럼 그저설고 외로운데

비마저 뿌리는고나 내일맑어 지이다

 

남으로 가자하니 돈이없어 한숨이요

북으로 가자하니 전혀재밭 되었다니

아마다 진퇴양난 빠졌는가 하노라

 

진달래 어느골에 봉오리가 부푸르며

꾀꼴새 어느술페 새노래를 익히는고

이몸도 쥐죽은드시 봄오기만 바라리

 

경상도 산꼴에도 찝(jeep)차많이 달려온다

키적고 얼굴검은 타이군이 나리노나

아희야 잘보았다가 옛이야가 하여라

 

왕릉리(旺陵理) 외줄거리 생겨난후 처음으로

날마다 장날인듯 사람사태(沙汰) 나건마는

웃는이 하나도 없어 그를스러 하노라

 

노래를 잊어버린 우리겨레 가여워라

천만리 타국와서 태국군인 비도(比島)군인

흥겹게 노래불으며 차를달려 가누나

 

강원도 두메산꼴 마차리(磨嗟里)는 참설은곳

아기를 산에묻고 이몸마저 병이들고

 

두번씩 쫓겨났어도 못내그려 하노라

가은면(加恩面) 왕릉리(旺凌里)는 잊지못할 설어운곳

살려고 피난왔다 애영(愛瑛)이를 지어묻은

산높고 바람쌀쌀한 아주적은 탄광촌(炭鑛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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