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먹어도 개와는 안 먹는다

허튼 생각 허튼 소리

석전碩田,제임스 2008. 8. 9. 18:19

나는 갈보(창녀)를 존경한다.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의 본분을 알고 나름대로의 삶의 목표도 분명히 알고 있다. 또 어떤 면에서는 사회전체를 돕는 일도 감당하고 있다. 가령 전쟁중에 그들이 없었다면 많은 다른 여인들이 희생 됐을 터이다. 또 그들로 말미암아 ‘육신이 너무 강한’ 많은 남성들이 위로를 받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나는 유학시절 미국의 한 도시 작은 한인 교회에서 소위 전쟁신부(war birde)들을 많이 만나 봤다. 그들은 한국 전쟁중에 ‘양부인’으로 미군을 만나 결혼해서 미국에 정착한 이들이다.  그들의 전직은 ‘양갈보’지만 참으로 성실한 가정의 주부로 한 남자의 충실한 아내요, 아이들의 성실한 어머니였다. 또 그 교회에서 충성되게 일하는 여신도들이었다. 누구도 그들이 과거에 ‘양갈보’ 였다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부끄럼 많은 조신한 한국 부인네들 이었다. 그들은 겸손히 과거를 회개하며 감사함으로 교회와 이웃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회개할게 뭔가 생각하곤 하였다. “오히려 주님께 항의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함께 예배드리곤 했다.  누가 그들을 비난 할 수 있으며, 누가 감히 그들 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권력과 재력을 누리는 정치인들  보라. 그들이 과연 자신들의 본분을 알고 있는가. 물론 보통시민이 생각하는 그들의 본분과 그들 자신이 생각하는 그들의 본분이 다를 수 있다. 그런 뜻에서 그들은 그들의 본분을 다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을 위한다고 보통시민이 바라는 본분을 내세우고 사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본분으로 자신들만 위하기 때문에 사기일 뿐이다. 이러한 정객들은 창녀만 못한 자들이다.

 

종교인들 중에는 창녀보다 나은 이들이 얼마나 될까. 전직 ‘양갈보’인 여성 교인들 보다 나은 목사가 얼마나 될까? 그들처럼 겸손하게 회개하며 봉사하는 목사들이 있기는 있는가. 보통 사람들이 알고 기대하고 또 자신들도 공공연히 서약하는 자신들의 본분은 옆에 두고, 돈이나 명예를 위해 난장판을 부리는 모습을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또 이들은 이성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물의를 빚기도 한다. 별 부러운걸 못 느끼고 사는 나도 은근히 이 사람들은 부럽다. ‘주의 종’이란 이름으로 무엇이나 요구해서 얻을 수 있고 신도들은 참으로 어리석어 보이기 때문이다.

 

지식인 사회도 별 차이 없다. 건전한 상식인도 못되는 주제에 자신이 대학자인 양 칸트나 아인슈타인이나 할 기행을 하러 드는 자들이 있다. 감투욕이 강해서 학장이니 총장이니 해 보려고 기를 쓰는 자들이 있다. 돈벌이에 혈안이 된 자들도 많다.  이들이라고 창녀 보다 나을게 없다. 창녀는 자기 몸만이 재산임을 알고 있다. 지식인이라는 이들은 머리에 잘해야 단백질, 아님 똥이나 들어 있는 데도 지혜나 큰 지식, 철학이 있는 듯 날뛴다.  자신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더한 부류가 있다. 사이비 창녀들이다. 요즈음 일부 미혼여성들이나 주부들 조차 그 계에 뛰어드는 모양이다. 기사를 보니 어떤 젊은 새댁은 결혼하여 빚을 져서 빚을 갚으려고 잠깐씩 그 세계에서 돈을 번다고 했다. 아이들 자라고 나니 할 일 없어 나선 여자들도 있다고 한다.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한데 이들은 자신들이 갈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춘향이가 살아온 듯 조신한 체하며 남의 밥그릇을 빼앗는 사이비족들일 뿐이다. 자신의 생활은 하나도 나을게 없으면서 창녀를 천시하는 이들이야말로 창녀만도 못한 사기꾼들이다. 이 세태에서 나는 갈보를 존경한다 천국에 갈 이는 갈보와 전장에서 죽은 군인뿐이라고 한 누군가의 풍자(parody)가 새삼스럽다

 

우리 속담엔 ‘한 다리가 천리’ 란 말이 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는 속담도 있고 ‘어 해 다르고 아 해 다르다’ 는 말도 있다. 같아 보여도 다르고, 조금 달라도 크게 달라진다는 뜻이다.  가령, 수영복과 반바지는 길이에 상관없이 다르다.  거의 같아 보이지만 그 차이는 엄청나서 마치 각도기의 시작과 끝 같은 경우가 많다.

 

같은 가난이라도 청렴(淸廉)에서 온 가난함이 있고 무능해서 혹은 게을러서 얻은 가난함도 있다. 부(富)도 마찬가지로, 근면에서 얻은 보상이 있고 도둑질해서 얻은 장물(臟物)같은 부도있다. 같은 말이라도 학교에서 학생들에 하는 말은 교훈 일수 있지만 집에 와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하면 잔소리로 변할 뿐이다. 사람들에게는 선함과 악함이 섞여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비중에 따라 바탕이 선한 사람이 있고 바탕이 이 악한 사람이 있다. 특정 종교가 없더라도 종교심이 있는 사람은 겸손하고 그렇지 못한 이는 교만한 법이다. 친부모와 양부모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친부모는 자녀들이 잘 되길 바라고 양부모는 마음가짐이 다르다.

 

요령이 있는 자는 출세하고 지혜로운 자는 성공한다. 숙달과 미숙의 차이는 숙달된 기술은 쉬워 보이고 미숙한 기술은 힘들어 보인다는 점이다. 비판은 창조적이지만 불평은 파괴적이다. 여자가 남편이 좋아서 남편 친구에게 친절을 베풀면 예의이지만 남편이 싫어서 남편 친구에게 친절을 베풀면 화냥기이다. 성행위도 사랑하는 두 남녀가 행하면 사랑이요, 돈을 위해서 하면 매매춘(賣買春)이요, 남에게 보이려고 하면 외설(猥褻)이 된다. 전쟁은 힘센 자들의 욕심에서 비롯된다. 자유인은 자신의 자유만 누리고 자유주의자는 남의 자유까지 추구한다 . 교육은 사는 법을 가르치고 세뇌는 죽는 법을 가르친다. 주장이 없으면 잡인이고 주장만 있으면 독선자다. 아무리 주장이 좋아도 그 주장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못하면 사기에 불과하다.

 

이와 같이 같아 보이지만 다른 것이 있다. 반면 달라 보이나 같은 것도 있다. 아무리 화장해도 그 얼굴이 그 얼굴이지 다른 얼굴이 아니다. 사람은 변하지 못한다. 다른 면을 발견하고 사람 변했다고 하는 것은 착각일 뿐이다. 예전에 몰랐던 면을 발견했을 뿐인 것이다. 그래 어느 목사님은 “예수도 사람된 자가 믿어야 된다”고 했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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