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먹어도 개와는 안 먹는다

같기 때문에

석전碩田,제임스 2008. 8. 5. 14:47

화장실 문에 '교수 전용'이라고 써 붙인 적이 있다. 그 층에 연구실을 둔 교수들만으로도 부족한 시설에 학생들이 드나드니 혼잡하고 또 불편하기도 해서였다. 그런데도 이 부탁을 무시하고 드나드는 학생들이 많아서 한번은 청소 맡은 아주머니가 "여긴 교수님들 전용이에요."라고 넌지시 말했더란다. 그러니까 그 학생이 당장 "우리하고 교수님들하고 다른 게 뭐예요?"라고 대드는 바람에 할 말을 잊었다는 것이다. 그 학생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교수도 학생도 같은 구조의 신체 조직을 가진 같은 인간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그런데 실은 같기 때문에 피차 분별있는 예절이 필요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람과 닭은 아예 다르기 때문에 그 사이에는 질서가 간단히 유지되고 호랑이와 토끼 사이는 외형적 구별은 말할 것도 없고 잡아먹고 잡아 먹히는 관계로서 그 질서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구차스런 분별이나 예절이 필요없다.  

 

인간 사회란 똑같은 인간들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에 올바른 질서유지를 위해서 상호간에 분별있는 예의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위의 경우도 교수와 학생이 서로 엄청나게 다르다면 애초부터 하는 행위도 요구하는 시설도 달라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불편하게도(?) 교수와 학생은 생긴 모양도 하는 행위도 같기 때문에, 혹은 오히려 교수가 못하기 때문에 교수는 가령 배설의 모습을 학생들에게 보이기 거북해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너와 다를 것이 뭐냐, 너보다 못한 것이 뭐냐."는 생각이 있을 수 있다면, "너는 나와 같은 인간, 너도 나보다 못한 것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분별 있는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비로소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아는 예의바른 태도가 표출되는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의 혼잡하고 짜증스런 현실을 극복하고 질서있고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길도 우리가 모두 같지만 피차 분별있게 사고하고 예의있게 행동하는 데 있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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