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먹어도 개와는 안 먹는다

부모 노릇이나 해라

석전碩田,제임스 2008. 8. 5. 14:46

부모노릇은 그저 살아서 자녀들과 함께 있어주는 것으로 족하다. 원래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함께 있으면 자녀들을 사랑하면서 적어도 능력 안에서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스런 존재 외의 역할은 모두 욕심에서 비롯되며 모두 헛된 것뿐이라는 것을 목격하고 또 경험하였다.  

 

첫 아이의 출산을 앞둔 부모의 심정을 되돌아보면 분명하다. 그저 건강하게 지체가 다 성해서 태어나 주기만 바라는 것이 첫 아이의 출산을 앞 둔 부모의 마음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건강하게 정상으로 태어난 아이를 얼마나 귀여워했던가. 아이가 자라면서 보여준 재롱에 세상의 어떤 것도 부럽지 않는 것이 첫 아이의 부모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차차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앞서 주기를 바라기 시작한다. 완벽하게 모범적인 생활을 해주길 바라고 공부는 남보다 잘하고 그래서 남들보다 더 이름 있는 학교에 입학해 주기를 바란다. 그런데 그런 욕심이 이루어 놓을 수 있는 현실은 없다.  

 

우선 자녀는 감독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만 해도 어른이 잠깐 눈 돌린 사이에 사고를 낸다. 그래 옛 어머니들이 그저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했지.” 라고 하곤 하지 않았는가. 커 가면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오래 전 학생들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3학년 여학생의 얘기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생활이 자유스러우니까 무엇이나 뜻대로 한단다. 한데 중 고교시절에는 부모 물래 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엄격하시고 어머니는 대학와서까지 따라 다니는 극성형이고 보니 그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 집을 나설 때는 얌전한 여고생으로 나와서는 필요하면 사물보관소에 가서 옷 갈아입고 구두 바꿔 신고 가발쓰고 화장하고. . . 하여 숙녀(?)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집에 돌아갈 때에는 다시 옷이랑 바꾸어 입고 화장 지우고 얌전한 여학생으로 학교 다녀왔습니다.” 하고 방에 들어선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학생들이 그런 식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부모는 그 이상의 행동도 감독 할 수 없으며 자녀의 생각은 더더군다나 감독은커녕 짐작도 못하는 것이다  

 

또 부모의 극성도 아무 역할을 못하는 것을 보아왔다. 옛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입학시험이 있던 시절이었다. 대략 살펴보면 부모의 극성으로 소위 일류 중학엔 갔다. 혹 일류 고등학교에도 가는 걸 보았다. 더 극성부리고 아이도 어느 정도 따라 주면 좋다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는 거의 끝이다. 부모의 극성효과는 거기서 끝이다. 내가 아는 한 학생은 그렇게 해서 세칭 일류대학엘 갔다. 한데 거기서 친구를 못 사귀는 거였다. 억지로 가긴 갔는데 뭔가가 맞질 않는 모양이었다. 이성교제에서도 여학생들을 기피하고 딴따라날나리들하고 어울렸다. 결국 그 뒤론 완전 실패였다. 좀 더 강력한(?)부모가 있었다. 그는 그렇게 해서 아들이 졸업 후 가업을 잇게 했다. 아버지를 보좌하며 큰 회사를 운영하게 됐다. 한참 잘 나갔다. 불행하게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가 회사를 맡아 운영하다 얼마 못 버티고 초반에 회사 말아먹고 도망갔다. 이 정도가 부모극성의 한계이다.  

 

요새는 어린아이들은 외국에 내보내는 것이 유행이다. 부모밑에서 제나라에서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이 외국에서 무엇을 어떻게 배운다는 것인가. 영어 영어 하는데 잘돼서 유창하게 한다한들 무슨 득이 있는가. 제나라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남의 말 배워서는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서 사람구실 못하게 된다. 사람은 먼저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영어가 사슴의 뿔이 되어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부모의 욕심은 한이 없는가 보다. 꽤나 재산을 모은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학교시절에 공부하고는 담쌓은 친구였다. 아이가 초등학교 중급학년이 되었을 때다. 아이 성적이 안 좋다고 걱정을 하면서 속상해 했다. 나는 공부 잘하면 네 자식 아니지.”라고 해주었다. 학문해서 꽤 성공한 교수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는 자기 아이가 자기 분야를 전공해 주길 바랐는데 딴 길로 간다고 불만 이었다. 나는 이렇게 말해 주었다. “그 애가 네 뒤나 따라가면 네 아류(亞流)밖에 더 되겠냐. 또 네 말이 나 따르면 무슨 발전이 있겠냐. 제 생각이 있어야지." 이 말을 듣고 그 아이 어머니가 몹시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아이는 계속 잘 성장하고 있단다.  

 

모든 생물은 처한 환경 속에서 차근차근 성장해 가는 법이다. 사람이라고 다를 것 없다. 능력 내에서 차근차근 커가야 완성되고 성공할 수 있다. 공부는 어느 순간 잘 하는 것보다는 오래 하는 것만이 성공에 이르게 한다.  

 

나는 욕심부리는 친구들에게 부모는 부모노릇만 해야 한다고 말해준다. 하나님 노릇까지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부모의 할 일은 자녀를 끝까지 믿고 기다려 주는 것 뿐이다. 부모의 할 일 은 자녀의 선택을 믿어 주어야 한다. 자녀들을 못 믿는 것은 곧 자신을 못 믿는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를 닮는다. 보이는 겉을 닮는 게 아니고 부모의 속을 닮아 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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