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먹어도 개와는 안 먹는다

유학

석전碩田,제임스 2008. 8. 5. 14:45

내가 유학을 가던 때까지도(1970년대 초) 유학은 당연히 대학 마치고 자신의 재정적 능력으로 가는 것으로 알았다. 나는 지금도 이 원칙대로 유학을 가야된다고 생각한다. ,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이 돈 벌어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유는 있다. 이상하게도 유학을 떠나는 때의 사회문화적 연령을 그대로 유지하고 귀국하는 것이 모든 유학생들의 공통점이다. 혹 음악이나 미술 등 분야에서 일찍 유학을 간 경우 돌아오면 떠나던 때의 사회문화적 연령수준은 그대로 이다. 그러니까 이 나리에서 배울 것을 다 배우고 성인이 되어서 늙은 부모에게 부담 드려서는 안 된다는 뜻이고 또 공부하는데 드는 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학문 연구 못지 않은 공부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배우는 것은 책에서 뿐만이 아니고 생활을 통해서인데 내가 벌어 내가 공부하는 것보다 더 큰 공부가 어디 있겠는가.  

 

어떤 이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한국에서 알아주는 소위 명문대에만 가려고 든다. 나는 그들에게 바다에 가도 제 바가지로 물 떠온다고 말해 준다. 누구나 제 능력만큼 배워오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미국의 경우 웬만한 주립대학이면 족하다. 학교이름 빌어 살지 말고 자신이 나온 학교에 빛을 더해 주는것이 옳다.  

 

사실 미국 유학의 경우 공부는 힘들다. 그러나 성실히 최선을 다하면 길이 있는 곳이 미국이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때도 지나고 보면 유익했던 것을 알게 된다. 사실 갈수록 어려워진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이것이 미국교육이다. 아무리 어려운 때도 돌이켜 보면 아름다운 추억으로 그리워 할 날이 있다. 나는 학생들에게 오늘을 돌이켜 볼 수 있는 미래의 눈을 가져라.” 고 말하곤 한다. 그건 지혜의 눈이다.  

 

유학 중 유진오 박사가 내가 다니는 학교를 방문하였다. 유학생들과 만나 식사하며 서로 얘기를 나누었다. 그 때만 해도 이공 계통의 유학생들은 수요가 있어서 졸업 전에 국내 직장이 예약되는 지경이었다. 갈데 없는 인문 사회계 학생들의 푸념은 공부해도 갈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때 유진오 박사의 말씀, “우리 때엔 직장은 커녕 나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공부하고 나니 너무도 할 일이 많았습니다.” 였다. 지금도 그 말씀을 잊지 않고 나의 후배들에게 전하고 있다. 또 나는 존경하는 내 스승(송승찬 선생님)에게 귀국 후 직장 걱정을 했다. 그 분 말씀, “일터가 없어요? 사람이 없어요!” 였다. 그는 옳았다.  

 

유학 마친 이들이 기억할 말이 하나 더 있다. 법대 나와 변호사가 된 미국인 친구가 있다. 한 번은 그에게 물었다. “너희와 한국 학생과 같이 공부해서 같이 졸업하면 다 같냐?” 그의 말, “They can graduate, but they cannot compete." 새겨두고 싶다.  

 

유학생활 중에 일기를 시조 형식으로 써 두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며 일부를 수록한다.  

 

기다림

 

오늘은 소식있나 편지 분류 기다리며  

배달부 느린 솜씨 원망하며 애태우다  

Tha'ts it. 그의 선언에 낙담하는 내 마음  

 

시 험

 

모르면 절벽이요 안다 해도 불안한 것  

반평생을 이를 겪어 이력남직 하건 만은   

아직도 극복 못한 것 시험이란 모를것   

처음엔 가슴철렁 좀 있으면 두통 증세   

가슴엔 불안이요 머릿속엔 걱정이라   

평생엔 면역없는 병 그 병균은 시험균(試驗菌)  

 

가 을

 

저녁을 끊이면서 글을 읽고 있는 중에   

눈 들어 밖을 보니 낙엽지는 계절이라  

두고 온 온갖 인연에 초점 잃고 앉았다  

 

가는 세월

 

구르는 통나무 위 발을 재게 놀리듯이   

살 같은 세월 속에 마음 바빠 초조한데  

흐르는 시간 소리가 내 귓가를 때린다  

 

빠른 세월

 

날짜를 세다 보면 두려움이 앞서난다  

빠르다 저속 촬영 화면같이 지나가니  

노력이 흐르는 세월 못 따를까 두렵다  

 

오는 세월

 

세월이 살 같대도 지난 세월 뿐이더라  

오는 세월 더딘 것이 하루라도 천년 같다  

언제나 오는 세월도 지난 세월 되려나  

 

빨 래

 

벗은 옷 빨래 비누 동전 준비 되었는가  

잠시 기다리면 다시 입게 되는 옷들  

내 속의 근심 걱정도 기다리면 씻길까  

 

고 적

 

가을비 오는 아침 방 어두워 불 켜 놓고   

근심을 잊으려고 책 펴 들고 앉았으니  

냉장고 도는 소리만 이명(耳鳴)처럼 들린다

 

 

새와 나

 

노래를 못 익혔나 숨어우는 가여운 새  

잎새에 홀로 앉아 애처로이 연습하니   

나처럼 못난 것 알고 애태우고 있느냐  

 

 

바깥의 빗줄기가 나를 젖겐 못하면서  

마음껏 흩날려선 내마음을 적시려네   

아서라 내 마음에도 비 내리고 있단다  

 

빗속을 나 혼자서 하염없이 걷고 싶네  

어디론가 정처 없이 비 맞으며 걸어가다  

누군가 만나게 되면 반가웁지 않으리  

 

옛 날

 

돋보기 끼고 앉아 글을 읽어 보렸더니  

옛 일 만 도보기로 확대되어 보이누나  

할머니 돋보기끼고 읽는 시늉하던 때가  

 

성 탄

 

밖에는 비바람이 폭풍인양 몰아치나  

라디오에서 나는 성탄 성가 듣고 있다  

평화의 아기 예수여 평생 임재 하소서  

 

독 서

 

의자를 마주 놓고 다리 뻗고 앉아서는   

두 발엔 수건 덮고 솜 잠바로 등을 싸고  

무릎엔 책 펴놓고서 미리 속을 채운다  

 

첫 눈

 

첫 눈이 오는 아침 눈송이를 세고 앉아  

함박눈 내리는 곳 내 고장을 생각한다  

언젠가 함박눈 맞고 쌓인 눈을 밟으리  

 

싸락눈

 

싸락눈 내리더니 흰 색깔이 선명하다  

그래도 푸른 나무 푸른 숲이 남아있어  

아이가 잘못 칠해 논 그림같이 되었다  

 

눈오는 풍경

 

어둠이 내려앉은 눈 내리는 바깥 풍경  

멀리는 희미하고 가까이는 하얗구나  

두고 온 고향 산천만 선명하게 보인다  

 

겨울새

 

가을에 와서 울던 아름다운 작은 새는  

눈 내린 겨울 아침 다시 와서 노래하네  

저 새도 내 형편 같아 계절 없이 우는가  

 

변 화

 

기차의 경적 소리 옛날 같지 아니하다  

목쉬어 애써 내던 기적 소리 그립구나  

선로는 옜 그대론데 디젤차가 달린다  

 

시 작

 

새 책을 펼쳐들고 첫 면에다 눈을 주면  

언제나 다 읽을까 막막하게 여겨져도  

한 장씩 넘기다 보면 다 읽는 날 있더라  

 

시작이 있다는 건 마지막도 있음인데  

언제나 시작할 땐 마지막이 안보여서  

지난 일 돌이켜보고 다시 교훈 얻는다  

 

할머니

 

초점을 잃은 채로 혼자 말을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던 할머니의 옛모습에  

이제는 할 만하건만 위로할 길 없구나  

 

밤의창

 

창 밖의 나무 가지 구슬 달고 흔들리며  

불켜진 전구들이 열매 인양 비춰보니  

새벽에 내리는 비는 안 팎 구별 없애네  

 

정도

 

톱니가 물려 돌듯 하나하나 물려 도는  

인생의 톱니바퀴 급하대서 건너뛰랴  

인내와 꾼준함만이 비결인 것 같더라  

 

남국의 꽃

 

진달래 철쭉인가 예쁜 꽃이 피었기에  

반가와 감싸안고 향내 맡아 보렸더니  

고국의 야산에 피는 참꽃 개꽃 아니더라  

 

하 루

 

아침은 슬픈 시간 온갖 것이 슬퍼 뵈고  

낮이면 회복기라 이책 저책 뒤적이다  

밤에는 모든 것 잊고 에라 만사 제친다  

 

연 상

 

수돗물 소리 듣고 심산 계곡 연상하고  

찻소리 들으면서 바람 소리 생각한다  

들리는 온갖 소리를 그대로야 들을까  

 

폭풍우

 

한 차례 폭풍우가 휘몰아쳐 지나가니  

또다시 뭉게구름 폭풍 안고 피어나네  

평온은 잊어버리고 폭풍우를 즐기리  

 

성 장

 

편하면 무너지고 괴로울 땐 가다듬고  

고통이 성장 돕고 평안함이 방해하네  

이 진리 깨닫고서도 평안함만 찾는다

  

빈 머리

 

머리는 젖은 빨래 한번에는 안짜 지고  

흔들어 다시 짜면 물방울이 떨어진다  

물에다 담가 두었다 쥐어짜면 나올까  

 

짜내기

 

머리에 변비인가 짜도 짜도 안 나오니  

바늘로 구멍내면 왈칵 쏟아지려는지  

아서라 먹은 것 없이 쌀 것 인듯 있으랴  

 

바벨탑

 

인간은 너나 없이 바벨탑을 쌓고 있다  

하늘에 닿기 전에 무너지게 되 있는 탑  

되간다 생각 되거든 무너질 줄 알아라   

 

성재 생각

  

못 보는 눈 가지고 파리가 보인다던  

성재의 어린 음성 불현듯이 생각나서  

이국 땅 아파트에서 혼자 울고 있단다  

 

시력을 잃어버린 어린아이 마음속에   

어쩌면 불평없는 평화로움 있었던고  

네 갈곳 천국인 줄 알고 우리 위로했더냐  

 

먼저간 이들 생각

 

먼저각 경재 성재 애영이랑 애랑 누나  

아버니 어머니랑 할머니는 천국에서   

슬픔도 눈물도 없이 영생하심 빕니다  

 

주 말

 

주말이 뭔고하니 인적 없고 조용한 때  

남들은 쉰다 싶고 나만 가진 시간 같아  

공연히 여유가 생겨 게으르게 되는 때  

 

기다림

 

아무도 날 찾을 이 있을 턱이 없건 만은  

전화도 만져 보고 창문 밖도 내다본다   

누구라 이 외곳을 생각이 할까 봐   

 

끼 니

 

시장기 떄운다고 한 덩이씩 먹는 밥은  

싸고도 맛있으니 복에 겨운 한 끼니라  

쌩일날 명절날에나 겨우 먹던 흰 쌀밥  

 

위 로

 

지난 날 주신 은혜 감격하긴 하면서도  

또 다시 기도하면 들으실 까 의심할 땐  

주께서 먼저 아시고 나를 위로하시네  

 

하나씩

 

일마다 단계 밟아 차례차례 할 것이지  

급하다 허둥대며 맘 조리지 말 것이라  

하나씩 해 가다 보면 이루는 날 오리라 

 

어머니 생각

 

눕지도 못하시고 앉은 채로 투병하며  

자문 밖 외진 곳에 혼자 계신 어머니께  

찾아가 기분 물으면 미소짓던 어머니  

 

자문 밖 외진 곳서 약속 하고 돌아서면  

슬프디 슬픈 마음 달랠 길이 없었었지  

또 다시 찾아가 뵈면 기뻐하던 어머니

 

혼자서 투병하며 내가 가면 반기시던  

어머니 웃는 얼굴 잔잔하게 떠오르네  

죽음도 혼자 맞으신 어머니는 천국에  

 

그 날은 있는 법

 

오늘이 있을 건가 몇 번이고 뇌었더니  

세월은 흘러가고 이순간을 맞게 되네  

가는게 인생이라니 성실하게 살리다  

 

변보기

 

울던 새 노래하고 다람쥐도 촐랑댄다  

사람도 반가웁고 수목조차 춤을 춘다  

바꿔낀 나의 안경은 돗수 높은 변보기  

 

감 사

 

하나를 간구하면 두배 세배 더 주시고  

믿음을 주시려고 증표까지 주시는 주  

오늘도 다시 깨닫고 가사할 것 뿐일세  

 

 

봄눈은 오르는가 어지러이 흩날리네  

사납게 몰아쳐도 신기할 뿐 무섭잖다  

계절을 알고 있으니 폭설인들 두려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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