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먹어도 개와는 안 먹는다

유학생활

석전碩田,제임스 2008. 8. 5. 14:46

유학생활 삼개월 여, 학기말고사 직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였다. 저녁 먹고 도서관에 가는 12월초의 어둑어둑한 저녁 길,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번쩍하는 자동차 전조등의 빛과 더불어 나는 공중에 떴다가 떨어졌다. 의식은 있어 어떻게 됐나 살펴보니 오른 쪽 다리가 잡히질 않았다. 알고보니 완전히 부서져서 제자리에 없고 등에 깔리다시피 위치해 있었다.  

 

구급차로 응급실 도착, 응급처치 -무릎 위 아래에 쇠꼬챙이를 끼어 푸줏간 소다리처럼 공중에 매달리게 되었다. 붓기가 내리기를 기다려 전신 마취를 하고 수술을 받았다. 뼈 속에 핀(Pin)을 박고, 물리치료, 목발 짚고 퇴원, 수없이 많은 약식 재판, 뼈속의 핀 뽑는 재 수술, 2년 여의 목발생활 끝에 다리가 1.8cm 짧아지고 한 쪽 구두 굽을 높여 신는 것으로 후유증이 없는 것은 아니나 사고처리와 치료가 끝났다.  

 

그 동안은 어려움은 수없이 많았지만, 통증 다음으로 오는 문제는 영어였다. 영어의 부족으로 의사소통의 불편은 말 할것도 없고 그 경황에 아야대신 “ouch” 해야 하고, 10여 시간 수술 후 회복실에서 깨어나 대신 “Water please.” 해야 알아듣는데는 가히 미칠 지경이었다. 회진시간에는 담당의사가 7,8명의 의사들을 거느리고 나타나서는 이것저것 묻고 다른 의사들도 질문을 하고 적고 하였다. 못 알아듣고 건성 “Yes”, "No" 했다간 의약품 반응 따위의 경우 잘못 말하면 죽을 수도 있을 판이니 영한 사전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들이 물을 때 모르는 어휘는 누운채 사전을 찾았다. 인내심 많은 미국인들 잘 참아 주었다. 그래서 회진 시간에 내게 할당 되는 시간은 엄청 길게 되었으나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영어 문제는 의사들과의 대화에서 뿐 아니라 그 후 가해자 보험회사의 재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도 잘못 알아듣고 대답했다간 치료비조차 못 받을 형편이 될 것이었다.  

 

그때 나는 머리 비듬이 많아 하루도 머리를 안 감으면 머리가 가려워 못견디는 때였다. 그러니 사고나고 10여일 지나니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 의사들에게 호소하였다. 의사의 허락으로 그 날 당번 간호원이 침대 채로 목욕실에 데리고 가서 내 머리를 감겨주었다. 그때의 상쾌함이란! 그 간호원은 필리핀 여인이었는데 원래 피아노 전공이었더란다. 한데 화상을 입고 손가락 몇 개가 붙어 버려 피아노를 포기하고 간호원이 됐다는 것이었다. 그의 보살핌과 위로는 잊을 수가 없다.  

 

고통중에 고통은 변 보는 일이었다. 푸줏간 소고기 신세로 매달레 있으니 그 상태로 해서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었다. 늘 배는 시원하질 않고 변을 보아도 마냥 무줄하기만 하였다. 수술후 한 달여만에 또 의사에게 호소하였다. 자기네끼리 의논 하다가 결구 허락이 떨어졌다. 여러 간호원이 나를 안다시피 부축하여 환자용 변기에 앉히고 묶어 놓았다. 손은 위급시에 신호를 하도록 신호종에 매어 놓았다. 어지러움을 견디노라 한참 기다렸다. 드디어 배에 신호가 오고 힘을 주어 변을 보았다. ! 그때의 시원함이란! 너무도 편하고 감사해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울었다. 그리고 이 감사함을 평생 잊지 않으리라 다짐 하였다.  

 

그 뒤 다리에 신경이 돌아오지 않아 혹 다리를 자를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낙담하던 일, 다행이 신경이 살아나고 곧아진 무릎을 굽히는 고통스런 훈련, 짧아진 다리에 굽 높은 구두를 신어야 한다는 판정, 수없이 많은 재판 . . . 이젠 거의 잊었다.  

 

이 사고를 통해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무엇보다 저 혼자 밥 먹고 제 발로 변소에 서서 변 볼 수 있으며 그 이상 감사할 것도 바랄 것도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사고를 통해서 난 영어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듬거리는 영어지만 퇴원 후 나는 한국인 환자들을 위한 병원 통역을 하였고 한국인 피의자들을 위해 법정 통역도 하였다. 외국의 병원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속사람도 자랐다. 다리가 1.8cm 짧아졌지만 내 속사람이 1.8cm 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1.8cm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시련이었다.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않으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 12~13).” 에 의하면 그러하다. 그리고 나는 사람이란 어려운 때에 성장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밤에 별이 보이듯 인생의 밤에 인생의 별이 보인다.”는 말은 옳다  

 

나는 학생들에게 살아가면서 어려운 때엔 자신이 성장하는 때로 삼고, 좋을 때는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봉사하는 때로 삼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나 자신은 다시 이것저것 쓸데없이 불평하게 되고 늘상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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