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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스트 키스..어른들의 방황

석전碩田,제임스 2007. 5. 26. 10:08
2002년 이탈리아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제치고 두 달간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화제작이다. 총 100억원의 흥행수익을 올려 오랫동안 침체에 빠져있던 이탈리아 영화계에 모처럼 활력을 안겼다. 같은 해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

영화의 주제는 '사추기(思秋期)'다. 결혼을 앞뒀거나 결혼 초기 책임감에서 도망치고 싶어하는 남자들, 오랜 연인을 두고도 유혹에 빠지는 남자들, 중년의 권태와 싸우는 부부가 주인공이다. 어찌 보면 뻔한 얘기다. 익숙한 사랑에 심드렁해져 방황하다가 제자리를 찾는 이야기. 그러나 그 익숙한 이야기 속에 공감 가는 일상성이 있다. 통속멜로의 진실 같은 거다.

미국 평론가 로저 에버트의 평이 적절한 가이드다. "화성 남자와 금성 여자, 철이 안 든 어른들, 저무는 젊음에 대한 마지막 발악, 해야 하는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라 등 다양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다.

광고회사의 유능한 직원 카를로(스테파노 아코르시)는 동거 중인 줄리아(지오반나 메초지오르노)의 임신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아직은 결혼도, 부모 되기도 부담스러운 탓이다. 마침 우연히 만난 여고생 프란체스카에게 걷잡을 수 없이 끌린다. 서른을 앞둔 카를로의 친구들도 고민이 많다. 가업 잇기를 거부하는 파올로, 가장 역할에 부적응증을 보이는 아드리아노. 프리섹스주의자인 알베르토는 이참에 자유를 찾아 여행을 떠나자고 부추긴다. 여기에 줄리아의 엄마가 황혼이혼을 선언하고 나선다.

영화는 사추기를 심각하게 겪는 이들이 각자 자신의 길을 택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누군가는 방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누군가는 기약없는 여정을 계속한다. 영화는 어느 쪽의 선택만을 일방적으로 옹호하지는 않지만, 익숙함과 싸우며 가정을 지키는 것이 결코 작은 가치가 아님도 웅변한다.

카를로와 줄리아로 나온 배우는 실제로도 연인 관계다. 영화의 성공으로 이탈리아의 간판스타로 등극했다. 줄리아의 엄마 역을 맡은 스테파니아 산드렐리는 1960~70년대 베르톨루치의 '순응자' 등에 나왔던 왕년의 명배우다. 가브리엘레 무치노 감독은 이 영화의 성공으로 할리우드에 입성, 올 연말 첫 작품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