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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풍경 - 김형경 지음

석전碩田,제임스 2007. 3. 15. 09:00

사람의 마음은 늘 밀가루 반죽처럼 부풀어오른다. 고요하던 마음에 불안과 평화,무의식과 의식,분노와 우울,사랑과 질투,에로스와 분리 등의 이스트가 첨가되면 인간의 내면은 부글부글 끓게 마련이다  

 

수년 전 정신분석을 받은 뒤끝,마흔 고개에 집까지 팔아서 세계를 향해 길을 떠나 곳곳을 여행하면서 닫혔던 마음을 활짝 열어 삶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던 소설가 김형경(44)씨가 여행 에세이 사람 풍경’(아침바다)을 펴냈다.

 

마음속에서 수런거리는 것들을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이십대 중반부터 정신분석과 심리학 책을 읽어온 마음,생의 한 시기에 정신분석을 받았던 마음,그 뒤끝에 여행을 떠났던 마음들이 이 책을 계기로 일단락지어진 듯하다.”   

 

로마 교외 카타콤을 구경하고 어두컴컴한 지하통로에서 지상으로 올라온 순간,그의 뇌리를 스쳐가던 것은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였다. “관람을 끝내고 입구와는 다른 쪽 출구로 나와 지상의 푸른 초원을 보는 순간,뜻밖에도 ,이것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타콤을 보기 전에 상상했던 삶과 죽음,박해와 저항,불안과 평화의 이미지에 대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의식과 무의식의 차이가 바로 그만한 것이겠구나 하는 게 확연히 느껴졌다.” 그것은 전 날 구릉과 과수원을 양쪽에 두고 하염없이 걸을 때는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발밑에 그토록 이질적이고 거대하고 복잡하고 위험한 세계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그는 참으로 인간이란 무의식을 산다는 말을 실감하기에 이른다  

 

무엇보다도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 자신의 심리를 투영하고 있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정신분석을 받을 때 꾸었던 꿈 중에 아기에게 양말을 신겨주는 꿈이 있었다. 한 가족이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외출 준비를 하는 가운데 한 아기가 가족들과 등을 돌린 채 혼자 양말을 신으려 애쓰고 있었고 꿈속에서 내가 그 아이에게 다가가 양말을 신겨주었다. 그 꿈을 꾸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내면의 상처입은 아이를 알아보고 보살피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 아기가 바로 지금의 내 모습이었다.”   

 

작가의 발길은 로마 피렌체 밀라노 파리 니스 베이징,그리고 적도 아해 뉴칼레도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도시와 항구를 성큼성큼 돌아다닌다. 그 모습들은 고스란히 작가 자신의 심리가 투영된 대상이 되어 한 편 한 편의 글로 태어난다. 로마의 뒷골목에서 텐트를 치고 그림을 그리며 도둑고양이와 함께 살아가는 청년의 모습에서 무의식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뉴질랜드 해변에서 바다를 향해 뻗어가다 끊긴 다리에서는 삶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고 싶어하는 회피 방어심리를 읽는다. 로댕 박물관 한쪽에 마련된 카미유 클로델 전시실에서 막닥뜨린 그녀의 삶과 예술에 관한 모든 의문 역시 작가 자신의 삶에 관련된 것이었다.

 

내가 왜 사랑앞에서 속수무책이 되는 지,성애 장면을 묘사할 때 내면에서 느껴지는 자기 검열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내가 가지고 있던 개인적 문제뿐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여성들이 안고 있는 사회적 문제도 있었고 생물학적 인간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안고 나올 수밖에 없는 진화심리한적 문제도 있었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성애는 그런 변화 위에서 쓰인 작품이다.” 무의식 사랑 에로스 우울 분노 공포 의존 회피 등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서 사용되는 27개의 키워드를 심리여행기로 풀고 있는 에세이집은 외상과 신경증을 통과해 도달한 생의 즐거움을 선사한다(김형경·아침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