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입니다.
춘 삼월이 오긴 하네요.
오랜만에, 아무 계획없이 그저 늦잠을
자면서 하룻 날을 맞습니다. 밖을 내다 보니 자동차 위에 거의 5센티미터는 될 성 싶은 눈이 하얗게 쌓였습니다. 없어진 대문이지만, 태극기 내다
걸고 차 위에 쌓인 눈 털어내고 나니 벌써 한 나절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
지난 해, 담장 허물기를 하면서 마당 한켠에 있던 난초 뿌리를 캐서 옮겨 심었는데, 며칠 전 문득 옮겨 심어 놓은 곳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마치 자기를 기억하고 있느냐는 듯이 여러군데 뾰족이 얼굴을 내밀면서 난초 싹이 올라오고 있었으니까요. 얼마나
반갑던지요. 아마도 며칠 있으면 꽃대가 쑥 올라와서 멋진 난초꽃을 피울 것입니다. 그리고 이내 져 버리고, 그 곳에서 난초 잎들이 무성하게 자랄
것입니다.
해마다 봄을 맞을 때면,
봄의 냄새를 가장 먼저 맡는 건 바로 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피부로
느껴지는 건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 듯 한데, 땅은 언제 봄 기운을 맡았는지, 벌써부터 만물을 움트게 하고 있는 걸 느끼곤
하니까요.
*
영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둘째 조카가 지난 가을부터 우리 집에 와 있습니다. 군 입대를 준비하기 위해서지요. 기왕에 군입대를 할려면
장교로 군복무를 하는게 좋겠다고 한 달 전에 통역장교 시험을 봤는데, 어제 발표가 있었습니다. 신체검사에서 혈압이 약간 높게 나와서 그동안 많이
걱정을 했지만, 최종 합격에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자기가 합격 턱을 낸다고 홍대 앞 OutBack Steak에서 거금을
썼습니다. 기분 좋은 저녁 만찬이었지요. 사실 우리 집안에서는 첫 장교인셈이어서 제가 제일 기뻤습니다. (아마도 알만한 분은 아실 것입니다.
장교와 관련해서 아픔이 있는 저의 이야기를...)
조카의 늠름한 모습(왼쪽), 그리고 아웃백에서의
가족들
잠시 후에는 조카뿐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벼룩시장도 구경하고, 청계천도 둘러보고 또 교보문고에도 들리는 [서울 다운타운 배회하기]를 해 보기로 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망중한의 즐거움입니다.
(왼쪽)물이 흐르는 청계천에서..(가운데) 풍물벼룩시장에서 재미난 구경도
하고...(오른쪽)밀리오레 9층 식당가에서 내려다 본 동대문야구장과 축구장(풍물벼룩시장)
*
오늘 아침 일간 신문에는 홍대 초대 건축대학장에 프랑스의 유명 건축가 빌모트(Wilmotte)를 초빙한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사람보다 더 유명한 사람인 리처드 마이어를 모실려고 시도를 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결국
빌모트와 최종 합의가 된것이지요.
어젯 밤 늦게까지, 이런 일을 포함해서 개강 준비를 위해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오늘의 이 여유가 더욱 값지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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