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광야 - 이육사

석전碩田,제임스 2025. 3. 26. 06:00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梅花)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여라.

- 유고 시집 <육사 시집>(범조사, 1954)

* 감상 : 이육사 시인, 독립운동가, 본명은 이원록(李源祿).

1904년 4월 4일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에서 퇴계 이황의 14대 직계 손으로 태어났습니다.

지 않은 40년 일생동안 17번의 옥고를 치렀고, 44편의 시를 남겼으며, 1927년 장진홍 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는데, 이때 부여된 수인번호(囚人番號) 264번을 따서 자신의 호를 ‘이육사’로 짓고 평생을 항일 독립 투쟁에 헌신했습니다. 출옥 후 잠깐 기자 생활을 했지만, 의열단 입단 제의를 받고 의열단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중국 난징에 있었던 조선혁명군사간부학교 제1기생으로 입학해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1933년 <신조선>에 발표했던 그의 시 ‘황혼’이 그의 문단 데뷔작이었으며 그 후 <자오선> 동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국에서 귀국하였으나 그는 의열단 출신이면서 조선혁명군사간부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체포되어 서대문 형무소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았으며, 잠시 석방되어 있던 기간인 1937년, ‘청포도’, ‘교목’, ‘절정’, ‘광야’와 같은 시들을 발표하기도 하였으나, 1943년 다시 동대문 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중국 베이징으로 압송되었고, 그곳 베이징 주재 일본 총영사관 교도소에서 1944년 1월 16일, 광복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옥사(獄死)하였습니다.

이 왔다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정작 주위에는 어디에도 봄꽃이 없는 요즘, 며칠 전 남녘으로부터 매화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매화와 관련된 시들을 읽고 싶어졌습니다. 너무도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그리고 가장 먼저 떠오른 싯구(詩句)가 바로 이육사 시인의 ‘광야’의 마지막 부분이었습니다. ‘지금 눈 나리고 / 매화(梅花) 향기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 이 광야(曠野)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여라.’

슨 연유로 이 싯구가 떠올랐는지는 몰라도 88년 전 이맘때쯤, 시인도 조국의 독립을 간절히 기다리며 추운 겨울 견디고 채 봄이 오기 전 홀로 짙은 향기를 뿜으며 고고한 자태로 피는 매화에 간절한 자신의 온 마음을 쏟으며 노래했음이 분명합니다.

육사의 이 시를 읽으면서 그의 14대 직계 할아버지였던 퇴계 이황의 매화 사랑, 그리고 그와 정치적으로 양대 학파를 이루었던 남명 조식의 매화 사랑이 또 무슨 이유에선지 불현듯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사랑했던 ‘매화’에 관한 시를 이즈음 함께 읽는 것도 큰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계 이황(1501~1570)은 매화를 너무도 사랑하여 생전에 매화를 노래한 시를 많이 썼는데, 그의 <매화 시첩(梅花詩帖)>에는 9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아래 소개하는 이 시는 퇴계가 한성(서울)에서 생활하다가 고향인 안동의 도산으로 돌아가면서 집에 있는 매화 분재에게 작별을 고하자 매화가 퇴계에게 답변하는 형식으로 쓴 연속 시입니다.

漢城寓舍盆梅贈答 한성 집에서 분매와 주고받다

頓荷梅仙伴我凉  매선이 정겹게도 외로운 이 몸 벗해주니
客窓蕭灑夢魂香  객창은 쓸쓸해도 꿈속은 향기로 왔네.

東歸限未攜君去  그대와 함께 못 가는 귀향길이 한이 되나
京洛塵中好艶藏  서울의 먼지 속에서도 고운 자태 지녀주오.

盆梅答  매화가 답을 하다

聞說陶仙我輩凉  듣자하니 도선도 우리마냥 외롭다니
待公歸去發天香  임께서 오시기를 기다려 좋은 향기 피우리니

願公相對相思處  바라오니 임이여 마주 앉아 즐길 때
玉雪淸眞共善藏  옥설과 같이 맑고 참됨을 함께 고이 간직해 주오.

季春至陶山 山梅贈答 늦봄(3월 5일)에 안동 도산에 이르러 매화와 주고받다

寵榮聲利豈君宜  부귀와 명리는 어찌 그대와 어울리랴
白首趨塵隔歲思  풍진 좇은 지난 삶에 백발이 다 되었네

此日幸蒙天許退  지금은 다행히도 낙향 윤허 받았으니
況來當我發春時  하물며 오심이 내가 활짝 꽃 필 때였던가.

主答 주인이 답하다

非緣和鼎得君宜  和鼎(화정)이 탐이 나서 그대 사랑함 아니라
酷愛淸芬自詠思  맑은 향기 좋다 보니 사모하여 절로 읊네

今我已能來赴約  나 이제 기약대로 그대 앞에 왔으니
不應嫌我負明時  꽃 핀 시절 놓칠망정 허물은 말아주오

次韻奇明彦 追和盆梅詩 見寄 기명언이 화답해 온 분매시를 차운하여 보내다

任他饕虐雪兼風  그대를 모진 눈바람 속에 맡겨두고
窓裏淸孤不接鋒  나는 창가에서 淸孤(청고)히 탈 없이 지났다네.

歸臥故山思不歇  고향산천 돌아와도 그대 걱정 그치지 않으니
仙眞可惜在塵中  仙眞(선진)한 그 모습이 티끌 속에 있음이 애처롭네

*동귀(東歸) : 竹嶺(죽령)을 넘는 길
*서귀(西歸) : 조령(鳥嶺)을 넘는 길
*도선(陶仙) : 도산에 있는 신선, 즉 ‘도산에 있는 매화’라고 자신을 지칭함
*화정(和鼎) : 매실을 쪄서 조미료로 사용하던 것
*기명언(奇明彦) : 기대승(奇大升), 호는 고봉(高峯)

계 이황은 죽기 전에 본인의 추한 모습을 매화에게 보이기 싫어 매화 분재를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하면서 ‘매화 분재에 물을 주라’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소설가 최인호는 그의 소설 <유림 제6권>에서 이 대목을 쓰면서, ‘생전에 그토록 상사하던 매분이었으므로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게 물을 주라는 퇴계의 유언은 이 세상 모든 삼라만상이 너와 나의 대립 관계가 아니라 둘이 아닌 하나라는 상생의 철학을 의미하고 있는 심오한 최후의 설’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계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그와는 달리 전혀 관직에는 뜻을 두지 않고 그저 재야에 묻혀 제자들을 길러냈던 영남학파의 또 다른 거목 남명 조식(1501~1572)의 매화 사랑도 지나칠 수 없습니다. 원래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토동 출신이지만 61세가 되던 해 산청군 덕산으로 옮겨와 ‘산천재(山天齋)’를 짓고 평생 처사(處士)를 자처하며 그곳에서 후진을 양성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던 그는 산천재 주변에 매화나무를 심고 추운 겨울에 피는 매화의 자태에 매료되어 여러 편의 매화 시를 썼습니다.

斷俗寺政堂梅 단속사 정당의 매화

寺破僧嬴山不古  절은 부서지고 중은 파리하며 산도 예 같지 않아
前王自是未堪家  전왕은 스스로 집안 단속 잘하지 못했구나.
化工正誤寒梅事  조물주는 진정 추위 속의 매화의 일 그르쳤으니
昨日開花今日花  어제도 꽃 피우고 오늘도 꽃 피우는구나.

雪梅(설매) 눈속의 매화

歲晩見渠難獨立  늙으막한 나이에 그 사람 홀로 서기도 어려운데,
雪侵殘夜到天明  눈 내리는 새벽처럼 천성은 밝게 되었네.
儒家久是孤寒甚  선비 집 가난이야 오래된 일이지만,
更爾歸來更得淸  그대 다시 되돌아오니 도리어 맑음 얻는구나.

명 조식과 퇴계 이황, 같은 해 태어났고 또 이 세상을 떠난 해도 엇비슷한 두 명의 영남학파 영수(領袖)들이 매화를 사랑하고 매화와 짝사랑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추운 겨울 이겨내고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매화의 기풍은 그들이 지향하는 ‘깨어 있는 선비정신’을 고스란히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거짓이 없고 도리에 어긋남이 없는 몸가짐으로 불의와 부정과 전혀 타협하지 않고 행동으로 분연히 일어나는 실천하는 삶을 살았던 선비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 한밤중에도 흩날리는 짙은 매화 향기로부터 그들은 어쩌면 ‘경이로움’과 ‘존경심’마저 가졌던 듯합니다. 그리고 평생을 일제에 항거하며 투옥되어야 했던 시인 이육사가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한 눈 내리는 땅에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야 했던 이유입니다. 그들이 살아내야 했던 시대가 따뜻한 봄날이 아니라, 추운 겨울과 다름없는 암울한 현실이 오늘날과 다를 바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리 산청에서 들려오는 대형 산불 소식에 며칠 동안 마음이 어지러웠습니다. 혹시 막 핀 산청의 삼매(三梅 : 남사마을의 원정매, 산천재의 남명매, 그리고 단속사 절터에 있는 정당매)가 화마(火魔)를 피하지 못하고 다치지 않았는지 못내 염려스럽고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또 온 나라가 두 동강이 나, 갈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현실도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한스러울 뿐입니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나 할까요.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