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바람의 배경 / 내가 원하는 천사 - 허연

석전碩田,제임스 2025. 3. 19. 06:00

바람의 배경

- 허연

마을에 바람이 심하다는 건, 또 한 명이 죽었다는 소식이다. 밀밭의 밀대들이 물결처럼 일렁거렸다는 뜻이기도 하고, 언덕 위 백 년 넘은 나무 하나가 흔들리는 밀밭을 쳐다봤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아이 하나가 태어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김없는 일이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기도 하다. 흙먼지 일으키며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 밀밭 사이를 뛰어다닌다. 아이들도 안다. 바람을 굳이 피하지 않는 법을. 마을은 죽음과 친하고 죽음이 편하다. 죽음의 배경, 그것으로 족한 마을에 오늘도 바람이 분다.

-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문학과지성사, 2012)

* 감상 : 허연 시인.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언론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2009년 추계예술대학교 대학원 문화예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91년<현대 시세계> 신인상에 '권진규의 장례식' 외 7편의 시가 뽑히면서 등단했습니다. 일본 게이오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연구원을 지냈으며, <매일경제신문사>에서 취재기자, 문화부장, 문화 선임기자, 매경출판 대표 등을 역임했습니다.

집으로 <불온한 검은 피>(세계사, 1995), <나쁜 소년이 서 있다>(민음사, 2008), <내가 원하는 천사>(문학과지성사, 2012), <오십 미터>(문학과지성사, 2016),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문학과지성사, 2020)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고전 여행자의 책>(마음산책, 2011), <너에게 시시한 기분은 없다>(민음사, 2022), <그 남자의 비블리오필리>(해냄출판사, 2008) 등이 있습니다. 2006년 한국출판학술상을 받았으며, 2013년 제5회 시작 작품상, 2014년 제59회 현대문학상, 2021년 제3회 김종철 문학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바람’을 시적 은유로 삼아 노래한 시들은 참 많습니다. 아마도 그중에서 폴 발레리의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시어이기도 합니다. 오래전 제 블로그의 제목도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로 정했습니다. 바람은 우리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는 존재일 뿐 아니라 바람이 지나가면서 흔들어 놓은 사물들의 모습을 통해 볼 수도 있는 신비한 존재라고 생각해서, 시적 은유로 활용하기에 적격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늘 감상하는 시에서 시인은 마을에서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왔던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묘사하면서 그 모든 평범한 일상들이 ‘바람이 부는 중에 일어난 배경 사건’이라고 열거하고 있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바람이 분다는 건 한 사람이 태어났다는 뜻임과 동시에 한 명이 또 죽었다는 소식이기도 하다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사람의 태어남과 죽음,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을의 평범한 모든 일들이 있을 때마다 바람은 불었다고 시인은 너무도 대수롭지 않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가 이 시를 다 읽고 나면 ‘그래서 뭘?’하면서 여기에 없는 시인에게 반문(反問)하고 싶어집니다. 물론 그 반문에 시인이 친절하게 답변할 리 만무하지만 말입니다.

리가 살아내야 하는 삶이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서 일어나는, 평범한 일상들의 연속이며 그 일상의 일들이 일어나는 마을에는 어제도 오늘도 여전히 바람이 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면서 시인이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화두(話頭)는 무엇일까. 그가 우리에게 던지고 싶었던 화두가 무엇인지 살짝 엿볼 수 있는 힌트는, 같은 시집에 실려 있는 표제작인 시를 한번 읽어 보면 어렴풋이 단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내가 원하는 천사

- 허연

천사를 본 사람들은
먼저
실망부터 해야 한다.

천사는 바보다.
구름보다 무겁고,
내 집게손가락의 굳은살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천사는 바보이고
천사는 있다.

천사가 있다고 믿는
나는
천사가 비천사적인 순간을
아주 오랫동안 상상해왔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천사를 떠올린다.

본드 같은 걸로 붙여놓았을 날개가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낭패를 당한 천사.
허우적거리다
진흙탕에 처박히는 천사.

진흙에 범벅되는 하얀 인조 깃털
그 난처한 아름다움.

아니면
야간 비행 실수로
낡은 고가도로 교각 끝에
불시착한 천사
가까스로 매달린 채
엉덩이를 내보이며
날개를 추스리는 모습이 그려진다.

아니면
비둘기 똥 가득한
중세의 첨탑 위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측은하게 지상을 내려다보는
그 망연자실.

내가 원하는 천사다.

- 시집 <내가 원하는 천사>(문학과지성사, 2012)

  시에서 완벽한 허상을 추구하는 이 세상을 마음껏 조롱하는 듯한 시인의 목소리를 엿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천사의 모습은 완벽한 하나님이면서 완벽한 인간으로서 전지전능한 능력을 발휘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내가 원하는 천사’는 ‘망연자실 낭패를 당한 천사, 진흙탕에 처박히는 바보 천사’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고 ‘흙먼지 일으키며 아이들이 하루에도 몇 차례 밀밭 사이를 뛰어 다니는’ 일상의 평범한 모습과도 닮아있다고나 할까요.

람들은 오늘도 여전히 불고 있는 바람의 배경이 되어 일어나는 마을의 평범한 일상은 보잘것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시인은 그런 보잘것없는 모습이야말로 자신이 원하는 천사의 모습이라고 노래합니다. ‘야간 비행 실수로 / 낡은 고가도로 교각 끝에 / 불시착한 천사 / 가까스로 매달린 채 / 엉덩이를 내보이며 / 날개를 추스르는’ 안타까운 천사의 모습이, 시인이 원하는 천사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동일한 평범한 모습이 아닌가요? ‘바람을 굳이 피하지 않는 법을’ 터득하여 ‘죽음과 친하고 죽음이 편’한, 그래서 여전히 그 죽음의 배경으로 바람이 부는 마을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말입니다.

래전 제 블로그의 제목이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https://jamesbae50.tistory.com/)’는 표현을 보고, 내가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있어 매일 죽을 생각만 하는 환자쯤으로 생각했는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블로그의 제목을 다른 걸로 바꾸면 안되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 친구는 우리가 살아내야 하는 삶이 항상 씩씩하고 항상 활기차서, 남들에게 번듯한 뭔가를 보여주는 것이 ‘잘 사는 삶’이라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혹 바람이 불지 않으면 살아야겠다는 의지마저 없어질 것을 염려한 탓이었겠지요. 지금도 그 친구가 자신이 그 말을 했는지 기억은 하지 못하겠지만, 저는 오늘 그 친구에게 허연 시인의 마지막 시어로 염려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마을은 죽음과 친하고 죽음이 편하다. 죽음의 배경, 그것으로 족한 마을에 오늘도 바람이 분다’라고.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