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 날, 3.1절 공휴일입니다. 꽃샘 추위가 닥쳐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하루 전날인 어제는 그런대로 무척 포근한 하루였습니다. 어제 오후 늦은 점심 식사 후, 소심이를 데리고 은평한옥마을과 진관사 입구를 어슬렁거리며 산책을 했습니다. 이미 진관사 입구에는 태극기가 '진관사 태극기'와 함께 휘날리며 장식되어 있었지요.
'진관사 태극기'라고 하면 무슨 말인가 의아해 하실 분이 계실 것 같아 잠깐 역사적인 사실을 한번 들춰 볼께요.
2009년 5월 26일, 서울 은평구 진관동에 위치하고 있는 진관사의 부속 건물인 '칠성각'을 해체, 복원하는 공사 중에 내부 안쪽 벽체 안에서 태극기에 보자기처럼 싸인 당시 항일투쟁 소식이 실려 있는 독립신문 등 19점의 귀중한 사료(史料)가 발견되었습니다.
발견된 신문들은 <경고문>,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自由晨鐘報)>, <신대한(新大韓)>, <독립신문> 등 5 종(種)으로 20점이었으며, 1919년 6월 6일부터 12월 25일까지 발행된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귀중한 사료들을 보자기처럼 싸고 있었던 것이 태극기였는데,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를 먹으로 덧칠하여 '항일'의 의지를 극대화한 태극기가 발견된 것입니다. 특히, 왼쪽 윗 부분은 불에 탄 흔적이 있고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3.1만세 운동 당시 실제로 사용되었던 태극기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 후, 이 태극기는 '진관사 태극기'라는 별칭이 붙었고 우리 나라 사찰에서 최초로 발견된 일제 강점기의 태극기로, 불교 사찰도 독립 운동의 배후 근거지나 중요한 거점으로 역할을 했다는 역사적인 증거인 셈입니다.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린 유일하고 가장 오래된 태극기라는 점에서 독립 운동사에서 차지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매우 큽니다.
학계에서는 태극기를 숨긴 인물로 진관사 승려였던 백초월(白初月) 혹은 그와 밀접한 연관이 있던 승려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진관사 태극기와 신문류들은 2010년 2월,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458호 지정되었고, 그중 진관사 태극기는 2021년 10월 '대한민국 국가지정 문화재(보물) 제2142호'로 승격되면서 등록문화재에서는 해제되었습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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