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일침 - 손 세실리아

석전碩田,제임스 2021. 11. 24. 06:32

일침

- 손 세실리아

도시에선 엄두도 내지 못한
마당 있는 집에 살게 됐다 섬이라 가능했다
사철 꽃과 동거를 꿈꾸며
갖은 묘목과 구근을 심고 얼마나 지났을까
사방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풀과 함께 라는 것인데
연둣빛 이마에 차마 손을 댈 수 없어
미루다 정이 들어 그만 동거를 묵인하곤
괭이밥 사랑초 박주가리
쇠별 땅빈대 좀바랭이
차례로 이름 익혀가던 참인데
새벽잠 없는 옆집 할머니
허락 없이 정낭 넘어와
풀무덤 쌓아놓고 끽연 중이시다
축 늘어진 풀 움켜쥐고 못마땅해 하자
같잖다는 듯
고장 정 씨 요물민 우리 밧디 다 날아들 건디 오고생이 보고만 시렌 말이냐 요디서 펜안히 살젠허민 느네 마당 검질은 느가 알앙 매라
시 안에 갇혀 풀과 풀꽃을 노래해온
어쭙잖은 나를
시 밖으로 끌어내 무릎 꿇게 한

- 격월간 <녹색평론>(2022년 1~2월호)

* 감상 : 손세실리아.

1963년 2월13일,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2001년 문예지 <사람의 문학>,<창작과 비평> 등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시집으로 <기차를 놓치다>(애지, 2015), <꿈결에 시를 베다>(실천문학사, 2017)가 있으며, 자서전적인 산문집 <그대라는 문장>(삶이 보이는 창, 2011), <섬에서 부르는 노래>(강, 2021년 12월 발간 예정)가 있습니다.

주 살이 11년 차인 손세실리아 시인은 시나 산문을 쓸 때 제주 고유 방언이 아니면 그 맛을 그대로 표현할 길이 없어 주위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감칠맛 나는 제주 어를 종종 글에 그대로 싣기도 합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 속에도 마치 외국어 같은 제주 방언이 그대로 실려있습니다. 제주에서 아침을 맞는 오늘은 따끈한 따끈한 제주 방언 맛이 나는 시 한 편을 골라봤습니다.

주에서 마당 있는 집에 살면서 시인은 사철 꽃이 피는 마당을 꿈 꾸며 이런저런 각종 꽃씨들을 뿌렸습니다. 그런데 이른 봄에 돋아나는 연초록 풀 새싹을 과감하게 제거하지 못하고 그냥 놔둔 덕에 예상치 않은 무성한 풀과 어쩔 수 없는 동거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옆 집 할머니께서 남의 대문(정낭)을 넘어와 모조리 다 뽑아놓고 담배 한 대 피며 쉬고 있을 때, 두 사람이 만나 나눈 대화를 그대로 시에 담았습니다. 처음 제주에 자리를 잡을 때 소위 먼저 사는 이웃으로서 간섭도 많이 하고 갑질도 했던 분이지만 친해진 후로는 시인을 ‘요망지다 요망지다’ 칭찬하셨던, 그리고 하나를 받으면 서넛을 되돌려 주셨던 인정 많았던 할머니셨다고 합니다. ‘이 풀씨들이 여물면 내 밭으로 날아올텐데 잠자코 지켜만 보겠는가. 너희 마당에 난 풀은 네가 알아서 얼른 매라'는 말인 듯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도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길이 없습니다. 만일 시의 제목으로 붙여 놓은 ‘일침’이라는 말이 없으면 말입니다.

금은 고인이 되었다지만 할머니의 목소리는 이렇듯 시인의 노래에서, 풀과 풀꽃을 알아간답시고 시 속에 갇혀 있는 초보 제주 살이 시인을 '삶'이라는 시 밖의 현장으로 끌어내는 ‘일침’이 되어 되살아났습니다. 그저 평범한 대화를 시가 되게 한 표현은 '같잖다는 듯'이라는 말과 '어쭙잖은'이라는 두 단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침을 당해야 했던 시인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시적 은유가 담긴 시어이기 때문입니다.

머니가 일갈했던 외국어 같은 제주말을 시인이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또 그 뜻이 무엇인지 제주 토박이 문우에게 물어보는 모든 과정이 눈에 선하게 상상이 되어지는 시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이곳 제주에서 뿌리 내려온 삶의 이력이 이 짧은 시 속에서 훤히 다 보이는 것 같아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천읍에 <시인의 집>이라는 공간을 마련하고 정착한 시인의 집에는 그동안 제주를 찾을 때마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곤 했습니다. 다 쓰러져 가는 폐가를 살려 소통의 공간, 바다로 넓은 창문이 열려 있는 카페 겸 책방을 연 후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있는 시인을 그곳에 가면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행사가 마무리 되면 잠시 시간을 내서 들려보려고 합니다. 저자가 직접 사인을 한 책과 시집이 가득한 그곳에서 시인이 직접 추천하는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제는 이곳 제주로 날아 와 오늘부터 시작되는 행사를 위한 사전 회의, 그리고 손님을 맞을 실무 준비를 다 했습니다. 이젠 직접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전국 각지에서 날아 오는 분들을 만나는 일만 남았습니다. 모쪼록 이번 한 주간 제주에서 일어나는 이 모든 일들이 물 흘러가듯 잘 되길 소망합니다. - 석전(碩田)

 

행사가 끝난 후, 하루를 더 머물기 위해서 제주로 날아 온 아내와 함께  조천읍에 있는 시인의 집에 잠시 들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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