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해바라기 / 홍어 - 원무현

석전碩田,제임스 2021. 9. 29. 06:20

해바라기

- 원무현

아버지
뽕밭에 묻어야 했던 날
나와 어린 동생은 장맛비 속에
하염없이 고개를 꺾었지요

바람 앞에 촛불처럼 겨우 붙어 있던 목
추스르신 어머니
아픈 목을 쓸어안으며
팍팍한 세상 잘 떠났지 뭐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고
산사람은 살아야지
팽! 코를 푸실 때
쪼개진 구름 사이에서
색종이 같은 햇살이 쏟아져 내렸지요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얘들아 해바라기 같은 내 새끼들아
고개 빳빳이 세우고 저기
저기 해 좀 보아
아무리 보아도 어머니
어머니 눈엔 아버지 얼굴만 떠있었는데요

- 시집, <洪魚(홍어)>(도서 출판 글나무, 2005)

* 감상 : 원무현 시인.

1963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습니다. 2003년 격월간으로 발행되는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시집으로 <너에게로 가는 여행>(1994), <洪魚(홍어)> (도서 출판 글나무, 2005), <사소한, 아주 사소한>(지혜사랑, 2012), <강철나비>(빛남, 2016) 등이 있습니다. 요산문학관 사무국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빛남 출판사 대표, (사)아름다운 사람들 사무처장 및 이사, 부산시인협회 이사, 부산작가회의 회원. 부산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바야흐르 해바라기의 계절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시인이 먼저 가신 아버지를 뽕 밭에 묻는 장례식 날, 하염없이 장맛비가 내리는 날에 핀 해바라기 꽃을 아비를 잃은 가족들의 극한 슬픔으로 형상화하여 아름답게 승화시킨 시입니다. 고개 숙여 피어 있는 비 맞는 해바라기와 아버지를 먼저 여의고 고개를 떨어뜨려야 했던 아이들의 풀 죽은 모습, 그리고 그들의 기를 살리기 위해서 ‘얘들아 해바라기 같은 내 새끼들아 / 고개 빳빳이 세우고 저기/ 저기 해 좀 보아’라고 극한 슬픔 중이지만 외치는 어머니의 처절한 슬픔을 대비시킨 시적 은유가 절절하게 다가오는 슬픈 노래입니다. ‘왠지 먹먹해지는,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아도 공감이 사무치는 진짜 사람의 말, 몸의 언어, 자연의 소리’입니다.

‘팍팍한 세상 잘 떠났지 뭐 / 죽은 사람은 죽은 것이고 / 산사람은 살아야지 / 팽! 코를 푸실 때 / 쪼개진 구름 사이에서 / 색종이 같은 햇살이 쏟아져 내렸지요’라는 표현에서 지아비를 잃은 아낙의 슬픔을 꾹꾹 눌러, 읽는 이로 하여금 그 아픔에 동참하는 묘미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리도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어느 시인은 그의 시를 평하면서 ‘원 시인의 시는 살아있다. 사람 냄새가 난다. 일상처럼 전개되는 시어들이지만 느낌이 색다르다. 자신만의 경험과 사유가 응축된 그의 시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 때의 그 슬픔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듯 시인은 어머니의 슬픔에 리듬를 살려 노래처럼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아무리 보아도 어머니 / 어머니 눈엔 아버지 얼굴만 떠있었는데요‘ 아마도 그 어머니의 눈에는 그 이후 계속해서 '색종이 같은 햇살이 쏟아지는' 이맘때가 되면 남편의 얼굴이 해바라기가 되어 늘 떠 있는게 보였을 것입니다.

원무현의 시를 읽으면 찢어지는 가난으로 인한 아픔과 부끄러움이 오랜 시간 속에서 마치 홍어가 삭은 것 같은 맛을 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어느 평론가는 그의 시는 ‘잘 익은 고들빼기김치의 쓴맛과 꼬들꼬들 잘 굳은 도토리묵 맛이 난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영등포 전철역과 수원 병점역을 오가는 전철 안에서 보리차, 수세미, 면양말, 고무장갑, 면봉 등을 담은 큰 가방을 둘러매고 승객들에게 생활 용품을 권유하던 아르바이트 야간 공고생이었던 시인이 당시 고학생을 불쌍히 여겨 물건을 팔아 준 사람들 때문에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고 그는 늘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분들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 그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봉사활동에 즐겁게 동참하는 삶을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사)아름다운 사람들이 해외에서 벌이는 자선 사업에 동참하게 된 것도, 또 그가 시를 통해서 언어가 아닌 삶과 몸으로 삶을 노래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그는 그 당시 전철 승객들이 베풀어 준 그 은혜에 ‘한 숟가락의 소금만큼이라도 갚아내는 것’이 자신의 삶이라고 기회있을 때마다 간증하고 있습니다.

같은 동향인 성주 출신 시인의 시를 접하면 마치 내가 어릴 적 뛰놀았던 고향 산천에서 풍기는 향수를 가득 느낄 수 있어 참 좋습니다. 당시 내가 살던 고향에는 시인과 같이 아버지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나 남은 가족들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이웃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가난하게 살았던 가족들의 형제 우애가 그렇지 않은 가족보다 훨씬 더 좋았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어려움을 함께 공유했던 아픈 정 때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열 네 살 나던 그 해 남의 집에 던져졌던 동생’으로부터 온 편지를 읽고 ‘코가 맵다 / 눈이 맵다’ 울먹이는 오라버니의 마음이 짠하게 전해져 오는 시 한 편을 더 읽으며 오늘 글을 마무리 합니다. - 석전(碩田)

홍어

- 원무현

시집간 동생에게서 편지가 왔다

오라버니 이제는 가세가 조금은 일어서서
가끔 산에도 올라간답니다
작년 겨울에는 눈 구경 갔다가 팔이 부러졌어요
걱정 마세요 오라버니
놀다가 부러질 팔도 있다 생각하니
그저 꿈만 같아서
실실 웃음이 다 나옵디다
그건 그렇고 오라버니
팔이 뼛속까지 가려운 걸 보니
이제 깁스를 풀 때가 다 되어 가는 모양이네요
그때면 홍어가 제법 삭혀져서 먹을 만 할거네요
......

이제 밥걱정은 없으니 한번 다녀가라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코가 맵다
눈이 맵다
입 줄인다고
열 네 살 나던 그 해 남의 집에 던져졌던 동생의 편지는

- 시집<홍어>(도서 출판 글나무,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