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 고영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창을 닫았다.
어둠을 뒤집어쓴 채 생애라는 낯선 말을 되새김질하며 살았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집은 조금씩 좁아졌다.
강해지기 위해 뭉쳐져야 했다.
물속에 가라앉은 태양이 다시 떠오를 때까지 있는 힘껏 외로움을 참아야 했다.
간혹 누군가 창을 두드릴 때마다 등이 가려웠지만.
房門을 연다고 다 訪問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가 되지 못하는 머리가 아팠다.
똑바로 누워 다리를 뻗었다.
사방이 열려 있었으나 나갈 마음은 없었다. 조금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나는 아직 더 잠겨 있어야 했다.
- 시집, <딸꾹질의 사이학> (실천문학사, 2015)
* 감상 : 고영 시인. 1966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습니다. 2003년 <현대시> 신인상을 수상
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산복도로에 쪽배가 떴다>(천년의시작, 2005),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문학세계사, 2009), <딸꾹질의 사이학>(실천문학사, 2015), 감성 시 에세이 <분명 내 것이었으나 내 것이 아니었던> 등이 있습니다. <고양행주문학상>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 <천상병시문학상>(2016) 등을 수상했습니다. 현재 월간 <시인동네> 발행인 겸 편집주간을 맡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를 감상하기 위해서 이런 저런 긴 설명을 하기 보다는, 어느 분이 쓴 시 감상 후기 글을 먼저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착함과 강함을 강요하는 세상은 착하지도 강하지도 않다. 착한 존재는 타인에게 착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요구하는 순간 그의 착함은 부정되기 때문이다. 강한 존재도 타인에게 강함을 강요하지 않는다. 강함을 강요하는 행위는 약함의 자백일 뿐이다. 선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세상은 존재에게 착해질 것을 강해질 것을 끊임없이 주문한다. 때론 종교의 목소리로, 때론 권력의 명령으로. 그렇게 지배 질서는 자신의 악함과 나약함을 은폐한다. 동시에 존재들을 유폐한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활개 치지 못하게 구속한다. 각자의 알 속으로 들어가면 밖에서 문을 닫는다. 세계는 한결 조용해지고 세상은 착함과 강함을 회복한다. 누군가 알을 깨고 나오려고 하면 세상은 주술처럼 속삭인다. 너는 아직 덜 착해. 너는 아직 덜 강해. 언제까지? 알이 무덤이 될 때까지.]
이 글을 읽고 나면, 무슨 뜻인 줄 모를 정도로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던 시가 금새 손에 잡히는 듯 다가올 것입니다. 시인이 노래하는 알(달걀)은 아직 깨어나지 않은,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존재’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달걀 안에 있는 ‘나’라는 시적 화자가 되어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적 화자가 느끼는 세상은, 알 속에 자유로운 영혼들과 존재들을 가둬놓고 그들이 깨어나지 않고 그저 조용하게 있기만을 요구하는 실체입니다. 그리고 알 속에 있는 ‘시적 화자’의 또 다른 모습은 그 요구에 순응하여 스스로 가만히 창을 닫고 하염없는 기다림으로 외로움을 참아내야 하는 가련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 외로움이, 그 기다림이 너무 길어서 간혹 누군가 다가와 창문을 두드려줘서 등이 근질근질 가려워지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 ‘진정한 위로가 되는 방문’은 되지 못하고 머리만 아팠다고 슬픈 노래를 합니다. 똑바로 누워 스스로 다리를 쭉 뻗어보니 아무것도 걸림이 없었지만, 아니 걸림이 없을 정도가 아니라 사방이 다 열려 있었지만 날개를 펴서 날아 볼 생각조차도 없었고 ‘더 착한 새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잠겨 있었을 뿐입니다.
심리학 용어로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는 말이 있습니다. 두 가지 이상의 반대되는 믿음, 생각, 가치를 동시에 인지할 때, 또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신념과 반대되는 새로운 정보나 가치를 접했을 때 개인이 받는 정신적 심리적 스트레스나 불편한 경험을 말합니다. 이 이론을 소개한 학자들에 의하면 이런 심리적 불일치를 경험하는 개인은 심리적으로 불편한 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공격적이 되거나, 합리화를 하거나, 퇴행, 고착, 체념과 같은 심리적 방어기제를 사용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인지 부조화이론을 이해가 쉽게 설명을 하기 위해서 이단 종교에 중독된 사람들의 모습을 들어 설명을 하곤 합니다.
이단 종교에 중독된 신자가 자기가 배운 이단종교의 가르침에 부합되지 않은 정보를 직면했을 때 느끼는 상태가 바로 인지부조화 상태입니다. 그런 부조화를 겪는 신도는 자기가 배웠던 신념과 맞지 않는 것과 갈등을 겪으면 제일 먼저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게 되고, 또 다른 사람을 설득하려는 시도를 통해서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UFO가 착륙한다는 예언이 잘못된 예언이었을 때, 그것을 철저하게 믿고 따랐던 신도들의 변화를 예로 듭니다. 신도들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만났고, 그들만이 지구의 파괴로부터 살아남을 것이라고 신봉했습니다. 그러나 예언된 시간이 되었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신도들은 심한 인지부조화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신도들은 반대되는 불편한 현실을 회피하기 위해 그 부조화를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외계인들이 지구에 두 번째 기회를 준다고 믿었고, 외계인들이 지구를 망치는 일을 언젠가는 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전하라고 했다면서 약간 수정된 다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며, 그곳에서 뛰쳐 나오기보다는 새로운 주장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 종교 단체는 예언에 실패했지만 회피와 내부결속을 통해서 오히려 자신들의 잘못된 믿음을 더욱 굳건히 다지는 계기로 이용했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심리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불편함을 겪는 것보다는 그것이 더 편하고 쉽게 무리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뜬금없이 인지부조화 이론을 왜 거론하는가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사실, 저는 오늘 이 시를 읽으면서 바로 이 이론이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알 속에 갇혀 있으면서 강해지기 위해서 '더 뭉쳐지고 있는 모습'이 어쩌면 인지 부조화를 겪고 있는 이단종교 신도들의 불쌍한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종 코로나19와 관련하여, 반사회적인 종교 행태를 보이고 있는 신천지와 만민중앙교회, 그리고 전광훈 목사가 이끄는 ‘이상한 교회’ 등을 집중 조명하며 온 국민이 손가락질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내부 결속을 하는 모습이 너무도 닮아 있어 섬칫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 시에 사용된 동사(動詞)들을 보면 어쩌면 하나같이 모두 다 과거 시제형의 동사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닫았다, 살았다, 좁아졌다, 뭉쳐져야 했다, 참아야 했다, 아니었다, 머리가 아팠다, 뻗었다, 없었다, 있어야 했다… 등등이 그렇습니다. 과거 시제형 동사들은 온통 과거의 부정적인 기억들을 들춰내면서 그저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만드는 마약 같은 마취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달걀이 생명이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이제 그곳을 박차고 깨고 나와야 ‘’새‘가 됩니다. 태양이 수백 번 비추어도 깨고 나와야만 새도 되고 병아리가 되는 것이지, 그 속에 머물러 있으면 그저 ’물 속에 잠긴 알‘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깨지 않은 알은 결국 썩은 상태로 무덤에 던져질 뿐입니다. 그저 체념하면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공중을 맘껏 날며 빛과 자유를 누리는 진정한 ‘새’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는 착한 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빛으로 넘치는 공중을 맘껏 날며 자유를 만끽하는 존재, 그 비상을 위해 박차고 나가야 할 일입니다.
오늘, 이 땅의 지도자를 뽑는 총선거 투표가 있는 날입니다. 강해지기 위해서 우리가 서로 뭉쳐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을 찍을 지, 아니면 스스로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창공을 향해 비상을 하라고 창문을 두드려 주는 사람을 선택할 지 해답은 자명한 듯 하지만 세상이 참 어수선할 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해 봅니다.
‘착한 새’가 되기 위해, 혹은 다른 무엇인가 되기 위해 얼마나 더 오래 ‘어둠을 뒤집어쓴 채’ 기다려야 하는가? 살아 있는 동안 얼마나 많은 대책없는 기다림 속에서 자기를 갉아먹으며 살아야 하는가?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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