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걸림돌 - 공광규 / 사랑한다 - 정호승

석전碩田,제임스 2020. 1. 21. 15:54

걸림돌

 

 - 공광규   

 

잘 아는 스님께 행자 하나를 들이라 했더니

지옥 하나를 더 두는 거라며 마다하신다

석가도 자신의 자식이 수행에 장애가 된다며

아들 이름을 아예 장애라고 짓지 않았던가

우리 어머니는 또 어떻게 말씀하셨나

인생이 안 풀려 술 취한 아버지와 싸울 때마다

자식이 원수여! 원수여!” 소리치지 않으셨던가

밖에 애인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중소기업 하나를 경영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고 한다

누구를 들이고 둔다는 것이 그럴 것 같다

오늘 저녁에 덜 되먹은 후배 놈 하나가

처자식이 걸림돌이라고 푸념하며 돌아갔다

나는 못난 놈! 못난 놈!” 훈계하며 술을 사주었다

걸림돌은 세상에 걸쳐 사는 좋은 핑계거리일 것이다

걸림돌이 없다면 인생의 안주도 추억도 빈약하고

나도 이미 저 아래로 떠내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 계간 <황해문학> 2009년 봄호(통권 63)

 

* 감상 : 공광규 시인. 경자년인 1960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나 충남 홍성과 보령을 거쳐 청양에서 성장했습니다.

 

국대 국문과와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는 <대학일기>,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소주병>, <말똥 한 덩이>, <담장을 허물다>가 있으며 어린이를 위하여 <성철 스님은 내 친구>, <마음 동자>, <윤동주>, <구름>을 쓰기도 했습니다.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연구>,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등도 펴냈습니다. 신라문학대상, 윤동주상문학대상, 동국문학상, 김만중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2013년 자연 친화적이고 호방한 시 '담장을 허물다'가 시인과 평론가들이 뽑은 그 해 가장 좋은 시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늘 감상하는 공광규의 걸림돌이라는 제목의 시를 읽고 난 후, '걸림돌이 없었으면 저만치 떠내려가고 말았을 것'이라는 마지막 표현에서 정호승 시인의 사랑한다는 제목의 시가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사랑한다

 

                                 - 정호승

 

밥그릇을 들고 길을 걷는다

목이 말라 손가락으로 강물 위에

사랑한다라고 쓰고 물을 마신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리고

몇날 며칠 장대비가 때린다

도도히 황톳물이 흐른다

제비꽃이 아파 고개를 숙인다

비가 그친 뒤

강둑 위에서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강물을 내려다본다

젊은 송장 하나가 떠내려오다가

사랑한다

내 글씨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한다

 

-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열림원, 2016)

 

림돌은 말 그대로 사람의 발이 걸려 넘어지게 하는 존재입니다. 잘 걸어가는 사람을 넘어지게 만드는 것이니 나쁜 돌이지요. 삶의 길에서도 성가신 '걸림돌' 같은 존재가 항상 있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가급적 그것을 피하려고, 또 우연이라도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존재로 여깁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내가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진짜 걸림돌일까. 문득 시인은 이 생각을 하면서 오늘 시의 시상(詩想)이 떠올랐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마도 시인이 이 시를 쓴 시간은 늦은 밤 쯤이었을 것입니다. 그 날 저녁 가정 문제로 고민하는 후배와 찐한 술 한 잔을 기울이며 처자식이 걸림돌이라는 후배의 인생 푸념을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그 술자리에서 했을 법한 여러 이야기들과 훈계랍시고 자기가 했던 말들을 소재 삼아 조용한 밤, 시 한 편을 만들어 내고 있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는 시입니다.

 

에 등장하는 무거운 삶의 이야기들을 하나 하나 떼어놓고 보면 무슨 종교나 철학의 가르침이 따라올 듯 하지만, 시인은 슬쩍 빗겨 지나면서 삶의 교훈을 가볍게 툭 던지는 식으로 노래합니다. 마치 오늘 저녁 술 자리에서 후배에게 했던 그런 말투로 말입니다.

 

님 한 분에게 동자승 하나 들이라고 권했더니 마다하면서 '지옥'이라고 했다고 시가 시작이 되는데, 그 표현은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갑니다. 부처님인 석가는 수행에 장애가 된다고 아들 이름을 아예 장애로 지었답니다. 그 뿐인가요. 시인 본인의 이야기도 한 몫을 더합니다. 어릴적 어머니 아버지가 부부 싸움을 하는 날이면 분풀이를 한답시고 어머니는 늘상 자식이 웬수여라는 말을 해서 자기는 그 말들을 들으며 자랐노라고 '자기 고백'도 해 봅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녹록치 않은 일임을 인정하며, 작은 중소기업 하나 운영하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 듯한 후배를 힘써 위로하고 상담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또 그 광경이 정겹기까지 합니다.

 

국 걸림돌은 세상에 걸쳐 사는 우리네 인생들에게는, 나쁜 것만이 아니라 어떤 때는 살아가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기도 하고 또 술 한잔 기울일 때는 풍성한 안주거리가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정호승 시인은 이것을 사랑한다는 걸림돌이 되어 떠내려가는 송장같은 우리네 삶이 걸려 떠내려가지 못하게 한다고 역설적으로 노래했으니 정말로 탁월한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명절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번 설날에는, 혹시 마음속에 그동안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 화해의 손을 먼저 내밀어, ‘사랑한다고 말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 이 순간 그 화해의 사랑한다는 말이, 마법같은 걸림돌이 되어 떠내려가고 있던 우리들이 그 걸림돌에 걸려 구사일생 목숨을 건질 수 있었노라고, 먼 훗날 아름다운 고백을 할 수 있길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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