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애인
- 문모근
81세 된 할머니가
호계장 칼국수 집 아주머니에게
조심조심 낮은 목소리로
넥타이 가게를 묻는다
할매, 영감님 안계시잖소
넥타이 가게는 신천에 가믄 있는데요
할매는 힘들어 못가요
다음 장에 사소
근데 누 줄라꼬예?
말하지 마라
애인 줄끼요?
어허, 말하지 말라카이
붉어진 얼굴을 감추고 할머니가
눈을 흘기며 문을 나선다
가을 하늘이 파랗다
- 시집 <새벽비> (이웃, 2010)
* 감상 : 문모근 시인. 1959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습니다. 1992년 <시와시인> 신인상으로 문단에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는 <자유, 사랑, 삶 그리고 나>, <가슴에 기대고픈 사람이 어찌 없으랴>(모아드림, 2003), <새벽비>(이웃, 2010), <호계장사람들>(시루, 2019) 등이 있습니다. 울산 교육신문 편집국장 겸 발행인으로, 그리고 도서출판 시루 대표로 일하면서 울산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입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는 시인이 강원도에서 태어났지만 울산에서 생활하고 있는 탓인지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시어들이 참 정겨운 시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에 시에 등장한 81세의 노인 분이니 지금 쯤은 저 세상으로 가셨을지, 아니면 그 사랑의 힘으로 아직도 정정하게 살아계실지는 모르겠지만 이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를 멋지게 그려 낸 시입니다.
울산 호계시장 칼국수 집 아주머니에게 조심조심 낮은 목소리로 한 할머니가 ‘넥타이 가게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 장면이 이 시의 시작입니다. 이 질문이 아주머니는 이상하게 들려 되묻습니다. ‘할매, 영감님 안계시잖소?’ 의례히 넥타이란 물건은 남자들이 쓰는 물건인데, 혼자 사는 할매가 넥타이 가게를 찾으니 당연히 이상합니다. 찾는 넥타이 가게야 여기 말고 조금 먼 곳 신천에 가면 지천으로 있지만 그곳에 할매가 가기에는 멀다고 짐짓 쓸데없는 질문으로 슬쩍, 할머니의 일에 끼어듭니다. 칼국수 집 아주머니의 장난스런 질문에 마음이 들킨 것 같은 할매가 앗차 하는 순간, 오지랖 넓은 아주머니의 장난기 섞인 호기심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근데, 누 줄라꼬예?’ ‘애인 줄끼요?’
이 두 문장은 경상도 사람이 아니면 금방 알아들을 수 없는 오리지널 경상도 사투리입니다. 그리고 이 두 질문 사이에 추렴처럼 뒤 따르는 할머니의 ‘아무한테 말하지 마라’ ‘어허, 말하지 말라카이’라는 사투리 추임새가 두 사람의 대화를 더욱 감칠맛 나게 만들어 줍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것은 시라기 보다는 그저 시장 골목에서 두 평범한 이웃이 만나서 이야기하는 대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이 대화를 소재로 삼아, 붉어진 얼굴과 하얀 눈 흘기며 문을 나서는 할매, 그리고 그 머리 위로 파랗게 펼쳐져 있는 가을 하늘을 배치시킴으로써, 멋진 한 편의 시로 둔갑시켜 버립니다.
‘가을 하늘이 파랗다’
따로 이 한 문장이 있다면 그저 평범한 하나의 문장이고, 또 지금 가을 하늘이 어떻다는 것을 표현하는 사실적인 문장일 뿐입니다. 그렇지만, 이 시에서 이 문장은, 앞에 있는 모든 내용이 갑자기 시가 되게 만드는 기적과도 같은 문장입니다.
가을 하늘이 파란 것은 그저 하늘 색깔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마음이 날아갈 듯 부풀어 오른 파란 색이라는 말이니 이것이야 말로 보이지 않는 ‘시적 은유’가 아니고 무엇일까 싶습니다. 너무도 친절하게 ‘늙은 애인‘이라고 제목을 붙이지 않았어도 좋을 만합니다.
1982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팔순이 가까운 두 옛 연인이 무려 51년 만에 사랑을 다시 시작하는 '노년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냈습니다.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도 노년층의 사랑이 관심의 대상이 된지는 이미 오래 전의 일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음성적으로 노년의 사랑 문제가 대두된 것도 사실입니다. 이미 2, 30년 전 제가 젊었을 때, 관악산 등산로 입구에는 박카스 장사가 성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이 든 중년 이후 남자들을 상대로, 박카스를 판다는 명분으로 슬쩍 육체적인 욕구를 해소시켜 주며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박카스 장사가 이제는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종로 탑골 공원 주변에서 성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고, 이제는 시대가 많이 변해서 공개적으로 사랑을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유행가 가사에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고 하는 나이가 몇 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사실, 그 놈의 사랑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며칠 전, 우리 대학 평생교육원인 <미술디자인교육원>에서 강사로 가르치는 분과 잠시 얘기하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들었습니다. 키도 크고 잘 생긴 돈 많은 할아버지 수강생 한 명을 놓고, 같은 반 수강생인 할머니 두 분이 싸움이 벌어져서 결국 세 명이 다 그 이후부터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환갑 진갑 다 넘기고도 그 열병을 여전히 앓고 있고 또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100세 시대에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란 특별히 다르게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모든 년령’인 셈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몇 세이신가요?
저는 이 때 까지 한 번도 스물아홉 이상을 생각해 본 적이 없이 내가 결혼했던 나이, 즉 ‘스물아홉 청년’으로 늘 착각하고 살아오고 있는 철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는 ‘철부지’입니다. 이대로 사는 게 좋은지, 아니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물리적인 나이에 맞는 행동을 근엄하게 할 줄 아는 ‘사회성 있는’ 사람으로 늙어가는 게 좋은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늙어가고 있지만, 마음만은 ‘젊음’을 늘 유지하면서 인생의 의미를 치열하게 찾아갈 수 있다면 그 때 찾아오는 사랑도 충분히 아름답게 맞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석전(碩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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