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隨筆 · 斷想

부설거사(浮雪居士) 이야기

석전碩田,제임스 2018. 7. 10. 16:14

개인적으로 애독하고 있는 어느 신문의 오늘자 컬럼에 인용된 '부설거사'라는 단어를 검색하다가 흥미진진한, 삶이 그대로 수행임을 보여 준 부설거사(浮雪居士)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었습니다.

 

부안 내변산 월명암에 한문 필사본 한권(유형문화재 제140)이 전해 내려 옵니다. 400년 전 쓰여 진 작자 미상의 불교소설 <부설전(浮雪傳)>이 바로 그것입니다. 월명암을 창건한 부설 거사(浮雪居士)의 삶이 구전으로 내려오다 소설체로 정리된 것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부설(浮雪)은 신라 28대 진덕여왕 1(647) 경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은 진(), 이름은 광세(光世)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해 일곱살 때 법문에 통달하였고 영조, 영희 스님과 지리산에서 참선 수행한 후 변산으로 건너와 묘적암을 짓고 정진했습니다. 도반들과 문수도량 오대산으로 구도의 길을 떠났다가 김제 구무원(仇無怨)의 집에 머물었습니다.

 

1400 년 전, 부설 스님과 영희, 영조 스님이 넓은 호남평야를 걷던 때는 봄이었습니다. 그것도 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허허벌판에서 만난 구무원(仇無怨)의 집은 부처님 집만큼이나 반가운 존재였습니다. 하늘이 인연을 맺어주고자 했는지, 몇 날 며칠을 계속해서 내리는 봄비에 발걸음을 멈춰야했습니다. 재가불자였던 구무원은 수시로 스님들에게 법문을 청했고, 딸 묘화도 틈틈이 귀동냥을 했습니다.

 

이렇듯 불교소설 <부설전>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스님과 젊은 여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파격적인 소재, 더구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소설의 줄거리는 세인들의 귀를 더욱 솔깃하게 했습니다.

 

부설 스님의 법문을 듣던 묘화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태어나서 20세가 되기까지 벙어리로 살았던 묘화가 법문을 들으며 업장이 한꺼번에 녹아 내렸던 것입니다. 묘화는 부설 스님 곁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말문이 터진 그녀는 전생과 현생, 그리고 내세에 걸친 3중 인연이므로 부부인연이 아니면 죽음이라는 단호한 결의를 보여 부설 스님은 황망했습니다. 몇 날에 걸쳐 부녀간의 요청은 이어졌고, 결국 부설 스님은 길 떠나는 두 도반에게 부디 도를 이뤄 자신을 가르쳐줄 것을 당부하면서 배웅하고 스스로 스님에서 거사가 됐습니다. 이 때 읊은 부설 거사의 게송을 보면 수행에 있어 새로운 각오를 엿볼 수 있습니다.

 

도부재치소(道不在緇素)

도부재화야(道不在華野)

제불방편(諸佛方便)

지재이생(志在利生)

 

(()는 승려의 검은 옷과 속인의 하얀 옷에 있지 아니하며, ()는 번화로운 거리와 초야에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부처님의 뜻은 중생을 이롭게 제도하는 데에 있도다.)

 

혼례를 마친 부설 거사와 묘화 부인은 묘라리에 이웃한 부서울 마을에 신혼방을 꾸밉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눈이 오면 불어오는 바닷 바람에 흩날리며 땅에 떨어지지 않는 동네라고 해서 그의 이름도 '부설(浮雪)'이라고 불렸고 부설거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등운(登雲)과 월명(月明) 남매를 낳고 한편으론 만경 바닷가에 초막(오늘 날의 망해사)을 지어 수행에도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부설 거사는 아이들과 살림을 묘화 부인에게 맡기고 병을 빙자해 두문불출하며 용맹정진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마침 오대산으로 떠났던 도반 영희, 영조 두 스님이 부설 거사를 찾아옵니다. 못다 나눈 법담을 나누다 물병 깨트리기로 그동안의 공부를 시험하였는데 속가에서 공부한 부설 거사의 공부가 더 뛰어남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임종 게송을 남기고 입적하게 됩니다.

 

目無所見無分別 (목무소견무문별)

눈으로 보는 것이 없으면 분별함도 없고

耳聽無聲絶是非 (이청무성절시비)

귀로 듣는 소리가 없으면 시비도 끊어진다.

分別是非都放下 (분별시비도방하)

분별하고 시비함을 모두 놓아버리고

但看心佛自歸依 (단간심불자귀의)

오직 마음의 부처를 지켜서 스스로 귀의하라

 

인도의 유마거사, 중국의 용거사와 더불어 불교에서 세계 3대 거사로까지 불리는 부설거사(浮雪居士)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묘화 부인과 가정을 이룬 것은 소승적 파계가 아닌 만물을 포용하는 중생 제도의 대승적 실천이라고 해석함이 옳을 것 같습니다. 구원의 도()를 추구하는 자세는 출가, 재가, 그리고 신학을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도의 마음 자세가 더 중요한 것임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부설전(浮雪傳)에 전해 내려오는 재미있는 팔죽시(八竹詩)를 소개합니다. “~대로라는 우리말을 한자음 으로 표현한 것이 일품입니다. 해학적인 시이지만, 우리가 삶 속에서 추구해야 하는 삶의 자세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시가 아닐 수 없습니다.

 

此竹彼竹化去竹 (차죽피죽화거죽)

이런대로 저런대로 되어가는대로

風打之竹浪打竹 (풍타지죽랑타죽)

바람 부는대로 물결 치는대로

粥粥飯飯生此竹 (죽죽반반생차죽)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대로 살고

是是非非看彼竹 (시시비비간피죽)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그런대로 보고

賓客接待家勢竹 (빈객접대가세죽)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市井賣買歲月竹 (시정매매세월죽)

시정 물건 사고 파는 것은 세월대로

萬事不如吾心竹 (만사불여오심죽)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然然然世過然竹 (연연연세과연죽)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보낸다

 

올 해 첫 눈 오는 날, 눈발이 휘날리는 부서울 마을과 그 인근에 있는 부설거사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 망해사(望海寺), 월명암(月明庵), 그리고 동진나루 등을 둘러보고 서해 낙조(落照)를 구경하는 나들이를 한번 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