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 한식일을 맞아 성묘하러 고향에 간 김에 조금더 남녘으로 내려가 멀리 남해를 다녀왔습니다.
결혼하기 전 부산에 사는 아내 친구들과 아내가 여행을 가면서 제게 보디 가드 역할을 요청해 얼떨결에 미녀들과 동행하는 행복한(?) 여행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갔던 곳이 바로 남해 상주해수욕장이었습니다.
해수욕장에서 높이 올려다 보이는 남해 금산, 그리고 그곳의 보리암이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회가 되면 다음에 한 번 올라봐야겠다 마음먹고 있었지만 아들이 당시의 우리 보다 더 나이가 들어 장가갈 때가 된 지금까지 한번도 시도조차 해 보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용기를 내서 다녀왔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봄비가 흡족히 내리는 날이어서 금산 정상에서 상주해수욕장과 그 주변의 그림 같은 다도해 풍경을 내려다 보지는 못했지만 추억을 더듬으며 남해 구석 구석을 둘러볼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금산을 오르는 날 자욱하게 낀 안개 속(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구름 속)에 난 길을 따라 산을 오르니 헤르만 헤세의 <안개 속에서>라는 시가 갑자기 생각나더군요.
올 해 봄은 다른 해와는 달리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이 동시다발적으로 피고 있어 봄꽃 구경은 실컷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남해 어느 마을의 골목길에서 본 동백꽃이 떨어 진 처연한 모습은 올해의 찬란한 봄꽃 세상을 더 풍성하게 하는 듯 했습니다.(아래 사진은 남해 금산의 보리암과 그 주변을 배회하다가 어느 마을 골목길에 흐드러지게 지고 있는 동백꽃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일부러 내려 사진을 찍어본 것입니다.)
안개 속에서
- 헤르만 헤세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모든 나무 덤불과 돌이 외롭다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보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나의 삶이 아직 환했을 때
내게 세상은 친구들로 가득했다
이제, 안개가 내려,
더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을, 떼어 놓을 수 없게 나직하게
모든 것으로부터 그를 갈라놓는
어둠을 모르는 자
정녕 그 누구도 현명치 않다.
기이하여라, 안개 속을 거니는 것은!
삶은 외로이 있는 것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알지 못한다.
누구든 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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