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수요일 오후 잠시 짬을 내서, 멀리 성남에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 (구 정신문화연구원)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8월 15일 고향에 벌초하러 갔을 때, 이번에 경매로 다시 확보하게 된 우리 집안의 귀중한 자료인 <축일쇄록> 사본 한 권을 영현 친구에게 건네받아 갖고 왔습니다. 이유는 이것을 전문가에게 보여, 적어도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번역을 할 만한 사료적인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되어, 마음에 짚이는 한 사람이 있어 사본을 들고 온 것이지요. 대학과 대학원에서 동창으로 함께 공부했던 친구 (임치균 교수)가 졸업 후 교수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생각난 것도, 이 책의 사본을 받아 든 후였을 정도로 사실 처음엔 염두에도 두지 않았습니다.
부랴부랴 수소문을 해서 연락을 했고, 수요일 만나기로 한 날이라 기쁜 마음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친구이긴 하지만, 사실 서로 전공이 달라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지낼 일은 거의 없었는데, 이번 이 일을 계기로 20대 대학원 시절에 만났다가 강산이 3번 바뀐 30년이 지난 50대 중년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 셈입니다.
책을 일별해 본 후, 친구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 대략 읽어보니 일자별로 간단하게 적은 일기인데, 누구 누구가 찾아와서 만났다라든지 어떠 어떠한 일이 있었다는 식으로 기록한 걸 보면 생활잡기 정도의 글 같다는 것.
둘째, 뒷쪽으로 가면 초서가 굉장히 많이 섞여있는데, 초서의 경우 초서를 공부한 전공자의 도움이 있어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셋째, 학교 안에 초서를 전공한 다른 교수도 있고 본인의 제자 중에도 초서 전공하는 사람이 있으니 꼭 필요하면 번역하는데는 문제 없다는 것.
넷째, 일단 이번 주말까지 본인이 4-5폐이지 정도를 번역해서 나에게 보내줄터이니, 이런 내용의 책이라도 문중에서 번역할 의향이 있는지 논의해 보라는 것.
다섯째, 그래서 책을 번역하는 게 좋겠다고 하는 경우 본격적으로 번역 작업을 하되, 그 때는 번역료로 얼마 정도를 생각해야 할 것이라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몇 페이지를 맛배기로 번역을 해서 보내주면 문중의 사람들과 상의할 일이 앞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일 앞 페이지에, 이 일기책을 고물상에서 2만원에 입수한 전라도에 사는 어느 분이 첨언해 둔 한문 문장을 읽는데, 울 친구는 마치 우리 현대어를 읽듯이 술술 읽어내려가더군요. 창피하지만, 이런 집안의 귀중한 문서가 잘 보관, 관리되지 못하고 어느 고물상으로까지 가게 된 연유를 설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 비싸지 않게 적정 선에서 번역이 된다면 좋겠다는 얘기도 했지만, 친구 의견은 신변잡기 정도라면 괜히 돈을 들일 이유가 있느냐는 개인적인 의견도 피력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어떤 내용인지 판단하기 위해서 본인이 한번 읽으면서 몇 페이지를 번역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모쪼록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잘 마무리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친구 연구실에서 친구와 셀카로 찍은 사진인데...엉망이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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