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간, 며칠 휴가를 내서 아내와 함께 단풍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말이야 '단풍 여행'이라고 이름 붙였지만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 대화가 줄어 들어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여행'이라고 하면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아내가 태어나서 유년 시절을 보낸 경북 영주를 시작해서 내친김에 주말에는, 파주 출판 단지 안에서 열리는, 후배가 선대의 회사를 물려 받아 경영하고 있는 현암사 70주년 기념 행사(전시회) 강연에 참석하는 것까지, 짧지 않은 여행 일정을 소화하고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영주 무섬 마을에서 가을 국화를 따고 있는 종부들과 나눈 대화, 유치원 시절 다녔다는 영주 동산교회, 그리고 지금은 영주 중앙초등학교로 개명이 된 아내의 첫 학교를 방문해서 옛날 이야기를 더듬는 시간들은 힐링 여행 그 자체였습니다.
태어났던 옛 집이 있던 자리는 파출소가 들어섰다가, 그 파출소마저 이제는 다른 곳으로 이전해서 썰렁하게 비어 있는 집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 집에서부터 영주 중부 초등학교(중앙초등)가 있는 곳까지 일부러 골목길을 걸어가면서 옛 기억을 더듬어도 보고, 영주 여자고등학교 앞에 근사하게 들어선 동사무소 건물에 들어가 이 지역의 옛 사진이 있는 지를 물어보며 조금이라도 옛 기억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와 사람들을 찾는 일은 다른 어떤 여행 보다도 더 의미있었습니다. 골목길이 시작되는 즈음에 있었던 커다란 정미소는, 비록 많이 현대화 되긴 했지만 아직도 그 자리에서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고, 영주 시내 골목 시장은 옛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아직도 열심히 살아가는 삶의 현장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시장 골목 어귀에서 '30년 전통의 맛'이라고 광고 하고 있는 곱창 전골의 맛과 그 넉넉한 량은 영주의 풍성한 인심을 그대로 전해주었습니다. 약간 흠집이 있는 영주 사과를 상상도 하지 못할 가격에 한 자루 가득 구입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여행의 묘미일 것입니다.
그리고 총총 걸음으로 돌아 온 다음 날인 지난 토요일에는, 내친 김에 파주 출판단지와 헤이리를 다녀왔습니다. 특히, 기념 행사의 일환으로 마련된 '고전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제목의 2시간짜리 강의는 이번 여행에서 기억될 만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살아있는 도서관>의 저자 장동석씨가 했던 강의는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들면서 바른 책 읽기에 대해서 열강을 했는데, 이 가을 렉치오 디비나(거룩한 책 읽기)를 위해서 너무도 필요하고 유익한 강의였지요.
마침, 같은 건물에서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대안학교로 운영하고 있는 교장 안상수 선배를 만나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던 것도 이번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데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아내, 김난희 여사가 직접 쓴 시비
- '別離'는 아내를 친정, 무섬 마을에 남겨두고 서울로 공부하기 위해서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는 아내의 마음을 느끼면서 쓴 조지훈의 詩
지금은 새로 지은 건물 때문에 사라진, 옛날 영주 동산교회의 모습
모퉁이 하얀 집터가 아내가 태어나서 유년 시절을 보낸 집
아직도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는 하망동 어느 정미소 모습
영주시 하망동 어느 골목길..50년 전에 이런 집들이 즐비한 골목길을 걸어 초등학교에 다녔던 기억을 더듬으며
현암사 70년을 되돌아 보게 하는 현판들 앞에서
PaTi 교장 안상수 선배의 작업실에서
헤이리에서 가을 단풍길을 거닐 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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