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오래된 기도 - 이문재

석전碩田,제임스 2015. 1. 29. 11:22

오래된 기도

 

                                                           -  이문재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냉철한 이성과 합리적인 이론,  소위 말하는 말씀(로고스)이라고 하는 텍스트에 정통하는 것도 필요한 지는 몰라도, 이제 지천명(知天命)에서 이순(耳順)의 나이로 달려 가는 나이가 되고 보니, 조금 헐겁게 보이더라도 마음과 마음, 보이지 않는 여백에 더 깊은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닫게 된다. 오늘 하루도 시인이 노래했던 것처럼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기도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하면서 먼 곳에 있는 누군가를 위해서 손을 모으는 겸손한 하루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