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볕> - 박노해
가을볕이 너무 좋아
고추를 따서 말린다
흙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푸른 하늘에 내걸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어 눈 부시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난 내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멀리서 빈다> - 나태주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가을 소원> - 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낙엽> - 구르몽
시몬, 나무 잎새 져 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덧없이 버림을 받고 땅위에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질녘 낙엽 모습은 쓸쓸하다
바람에 불려 흩어질 때
낙엽은 상냥스러이 외친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리라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었다
그리하여 바람이 몸에 스며든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련한 낙엽이리라
가까이 오라 벌써 밤이 되었다
그리하여 바람이 몸에 스며든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밟는 발자국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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