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양복의 안쪽에는 꼬리표가 붙어있다
신미영이라는 아내의 이름이 나를
한나절 넘게 따라다녔다
아내가 세탁소에 맡겼던 양복에 꼬리표가 붙은 줄도 모르고
나는 아름다운 스타킹을 따라서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가슴골이 훤히 보이는, 덜컹거리는 브래지어 옆 좌석에 앉아서
책을 읽기도 했다
아마도 아내는 내 은밀한 심장 박동소리를 들으며
시장을 가고 밥을 짓고 빨래를 했을 것이다
나는 꼬리표를 발견하고 곧 떼어버렸지만
그 후 그 꼬리표는
유성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며 나를 따라다녔다
제 몸을 산화해서 만든 유성의 꼬리표
언젠가는 없어 질 제 몸을 꼬리표로 만들기 위해
온 몸을 허공에 불사르는 별똥별이 보였다
나는 한 때, 별똥별 같은 시인이 되리라 마음 먹었지만
그동안 내 몸을 산화한 불같은 시를 한 편도 쓰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참 다행이다
쉰이 넘은 어둑한 나이까지
별똥별처럼 제 몸을 불사르며 나를 따라와
내 앞 길을 환하게 비춰주는 꼬리표 하나 있으니.
-[시와 표현], 2011 여름호, 박남희(nhpk528@hanmail.net)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드는 문화예술관련 잡지 [Art WIDE]
'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Stay with me till the morning - Dana Winner (0) | 2012.07.21 |
---|---|
나도 그랬듯이 - 조병화 (0) | 2012.05.01 |
봄이 되면 - 김용택 (0) | 2012.03.13 |
12월 - 최선옥 (0) | 2012.01.26 |
사랑의 의미 - 이더스 리더버그 (0) | 2011.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