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꼬리표 - 박남희

석전碩田,제임스 2012. 3. 27. 11:47

내 양복의 안쪽에는 꼬리표가 붙어있다

신미영이라는 아내의 이름이 나를

한나절 넘게 따라다녔다

 

아내가 세탁소에 맡겼던 양복에 꼬리표가 붙은 줄도 모르고

나는 아름다운 스타킹을 따라서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가슴골이 훤히 보이는, 덜컹거리는 브래지어 옆 좌석에 앉아서

책을 읽기도 했다

 

아마도 아내는 내 은밀한 심장 박동소리를 들으며

시장을 가고 밥을 짓고 빨래를 했을 것이다

 

나는 꼬리표를 발견하고 곧 떼어버렸지만

그 후 그 꼬리표는

유성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며 나를 따라다녔다

 

제 몸을 산화해서 만든 유성의 꼬리표

언젠가는 없어 질 제 몸을 꼬리표로 만들기 위해

온 몸을 허공에 불사르는 별똥별이 보였다

 

나는 한 때, 별똥별 같은 시인이 되리라 마음 먹었지만

그동안 내 몸을 산화한 불같은 시를 한 편도 쓰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참 다행이다

쉰이 넘은 어둑한 나이까지

별똥별처럼 제 몸을 불사르며 나를 따라와

내 앞 길을 환하게 비춰주는 꼬리표 하나 있으니.

 

                                               -[시와 표현], 2011 여름호, 박남희(nhpk528@hanmail.net)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만드는 문화예술관련 잡지 [Art WIDE]를 보다가 그곳에 실린 짤막한 시 한편이 눈에 와 닿습니다. 시인과 같은 이런 경험은 누구나 했을 법한, 생활 속의 경험인데 시인은 그 경험을 시재로 하여 별똥별 유성의 이미지로까지 확장하여 그것을 자신의 매일의 일상과 버물려 놓아, 맛있는 비빔밥 같은 시 밥상을 차렸습니다.

 

쉰이 넘은 어둑한 나이여서 그런지 이런 시를 읽으면 공감이 갑니다. 맞습니다. 내 앞 길을 환히 비춰주지는 않지만, 내 곁에 꼬리표 하나 있는 것만으로도 저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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