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나도 그랬듯이 - 조병화

석전碩田,제임스 2012. 5. 1. 09:41

머지 않아 그날이 오려니

먼저 한 마디 하는 말이

세상만사 그저 가는 바람이려니,

그렇게 생각해 다오

내가 그랬듯이

 

실로 머지 않아 너와 내가 그렇게

작별을 할 것이려니

너도 나도 그저 한세상 바람에 불려가는

뜬구름이려니, 그렇게 생각을 해다오

내가 그랬듯이

 

순간만이라도 얼마나 고마웠던가

그 많은 아름답고, 슬펐던 말들을 어찌 잊으리

그 많은 뜨겁고도, 쓸쓸하던 가슴들을 어찌 잊으리

, 그 많은 행복하면서도 외로웠던 날들을 어찌 잊으리

 

허나, 머지 않아 이별을 할 그날이 오려니

그저 세상만사 들꽃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생각을 해 다오

 

행복하고도 쓸쓸하던 이 세상을

내가 그렇게 했듯이

 

 



5,6년전 쯤이라고 기억됩니다. 작은 며느리로서, 시집오며서부터 시부모를 모셨던 아내가 두 분을 다 떠나보내고 어느 날 제게 했던 말입니다.

"아빠, 인생이 도대체 뭐지? 아버님은 먼저 인생을 살았던 사람으로서 왜 한마디도 안하고 가셨지? 또 어머니는 치매로 마지막을 어렵게 보낸 건 이해가 되지만, 왜 아무 말도 안하고 가시지? 인생이 이런거야?"

"무슨 말이야?"

"난, 아버님이 먼저 인생을 살아보신 분으로서 돌아가시기 전 적어도 '인생은 내가 먼저 살아보니 이러 이러한 것 같다'는 말 정도는 하고 가실 줄 알았어. 아니면 그런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작은 며느리야, 그동안 네가 참 고생이 많았다'이런 말이라도 하고 가실 줄 알았다는 거야"

 

저는 아내의 이 말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시부모를 모시면서 남편과 자녀를 위해서 헌신해 온 아내가 심각한 우울증상을 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우울증이라기 보다는 삶 자체에 대한 회의를 느끼면서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맞아, 인생을 먼저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뭔가 이야기해 줄 것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습니다.

 

조병화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삶이란 어떤 것임을 미리 사랑하는 사람에게 알린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혹시 예기치 않게 떠나든지 마음은 있지만 그런 말조차도 하지 못하고 떠나는 일이 벌어지기 전, 순간만이라도 고마웠던 일 그 많은 행복하고도 외로웠던 일들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말을 미리 미리 알려주는 시인의 마음이 보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말, 언젠가 우리도 이 모든 순간을 남겨놓고 먼저 떠나는 때가 있을텐데, 그 때라도 그저 인생은 한 가닥 바람이려니 생각하면서 훌훌 마음을 다잡을 수 있길 바라는 시인의 마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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