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의 일입니다. 퇴근 후에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면서 하루 종일 즐거워하는 젊은 조교들이 오후 쯤되어서는 그 계획을 변경했답니다. 영화 보는 요금이 만만치 않아 다운로드 받은 영화를 사무실에서 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맛있는 저녁과 간식도 시켜 놓았으니 은근히 일찍 자리를 비워달라는 압력(?)을 가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들을 배려한다는 핑계를 내세워 이 날은 다른 날 보다 일찍 퇴근하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영화를 함께 봤느냐고. 그랬더니 바로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너무 좋은 영화라며 청소년이 있는 가족이 함께 보면 좋은 영화이기도 하고, 또 뭔가 재미있는 그렇지만 생각할 만한 영화를 원하면 꼭 봐야할 영화라고 추천한 것이 바로 이 영화입니다. 그들의 추천하는 말을 들으면서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하는 호기심이 생긴 영화였습니다.
2010년 부천 영화제에서 처음 우리에게 소개된 인도 영화로, running time이 무려 2시간 40분이 넘어가는 긴 영화입니다. 그렇지만 영화에 몰입되다 보면 언제 영화가 끝났는지 아쉬울 정도로 그 재미에 푹 빠질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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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두번 째 가라면 서러운 명문 대학, 임페리얼 공대. 이 대학에 당당히 합격한 신입생들이 처음 학교에 도착하는 날을 첫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이 됩니다. 등장하는 순간부터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이는 주인공 <란초>는 자신과 함께 기숙사 방을 사용하는 <파르한>과 <하리>에게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합니다. 그러나 졸업 후 5년이 지난 이후, 연락도 없이 사라졌던 란초가 학창 시절 5년 후에 다시 만나기로 했던 그 약속 지점에 나타날 것이라는 빅 뉴스를 듣고 친구들이 다시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영화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이야기하면서 전개되기 시작합니다.
영화 <세 얼간이>는 부천 영화제에서 소개될 당시 <못 말리는 세 친구>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코믹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마냥 코믹하지만은 않고 진지하고 슬퍼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세 명의 명문 공과대학 재학생들이 좌충우돌하면서 살아가는 학창 시절의 이야기들이, 어찌보면 암기식 교육, 경쟁에서 이겨야만 살아 남는 우리 교육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도 영화의 특징답게 이 영화도 중간 중간 뮤지컬 같은 노래와 춤을 곁들인 음악이 꽤 길게 여러번 등장합니다. 그러나 이 음악은 지금까지 감상했던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역할을 하는 음악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듯 합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 <맘마미아>를 연상했습니다.
영화의 제목에서 '얼간이(Idiot)'라는 표현을 했지만, 란초를 비롯해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파르한과 하리가 진짜 얼간이기 때문에 붙여지진 않았다는 것 쯤은 눈치를 챘을 것입니다. 이들 세 친구들이 얼간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세상 사람들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넓은 길, 다른 사람을 따돌리고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인생을 성공이라고 말하는 넓은 길을 포기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자기는 무슨 학위를 위해서 공부하러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대학에 온 란초, 자신이 원하는 길이 분명히 있는데도 부모님의 바램을 거절할 수 없어 자신의 길은 포기한 파르한, 가족 부양과 성공, 그리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뭐든지 겁부터 내는 하리. 그렇지만 이들은 란초의 보이지 않는 카리스마와 끌림에 의해 그들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로 작정하고 스스로 얼간이가 되기로 선택하게 됩니다.
"알 이즈 웰(All is well)". 영화 <세 얼간이>에 나오는 명 대사중의 하나이면서, 이 영화를 이끌고 가는 기본 정신이기도 합니다. 주인공 란초가 어려운 국면을 만날 때, 그리고 막막하여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을 때 스스로 주문처럼 외우는 것이 바로 "알 이즈 웰"입니다. 어릴 적 란초가 사는 동네에 경비를 맡고 있는 사람이 매일 밤 순찰하면서 "알 이즈 웰"을 외쳤다고 합니다. 모든 게 이상없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모든 마을 사람들은 편안하게 잠 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얼마후 도둑이 들었습니다. 경비가 "알 이즈 웰"이라고 외친 그 날 밤에 말입니다. 알고보니 그 경비는 야맹증 환자였습니다. 힘들고 막막한 경비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겁 먹은 자신의 마음을 속이는 길 밖에 없었지요. "알 이즈 웰"이라는 말로. 힘들고 막막할 때 자신의 마음을 속여 줄 무언가가 있다면 당장의 막막함과 답답함을 헤쳐나갈 방법을 찾지 못해도, 헤쳐나갈 용기는 잃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방법이 아닌 용기일테니까 말입니다. 방법은 있는데 용기가 없다면, 반대로 용기는 있는데 방법이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명의 얼간이 주인공과 영화를 살려 가는 에너지가 바로 "알 이즈 웰"일 뿐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난 후 "아! 이 영화 참 멋지다"라고 말하는 감동하는 마음에 남아 있게 되는 정신이 바로 "알 이즈 웰"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쯤되면 이 영화 맘먹고 한번 보고 싶어지지 않으세요? 강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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