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먹어도 개와는 안 먹는다

말을 할 줄 알아야

석전碩田,제임스 2008. 8. 7. 17:16

동물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의사소통을 한다. 하지만 사람의 말처럼 복잡한 구조를 가진 말을 사용하는 것 같지는 않다. 간단한 생각에서부터 복잡 미묘한 감정까지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사람의 말뿐이다. 사람만이 깊이 있는 사고를 하고 또 그것을 말로 표현한다. 말은 곧 그 사람의 생각이다. 생각을 제대로 해야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말을 제대로 해야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도 말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우선 단어를 잘못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령 직장에서 아랫사람이 잘못한 것을 지적하는 경우 윗사람은 불평말고 일이나 하라.” 고 한다. 이런 경우 불평이 아니고 건전한 비판일수도 있는 것을 모르고 하는소리다. 어떤 여자교수는 말하다가 상대에게 그건 오해예요.”라고 하곤 하다. 오해는 말뜻을 잘못 해석했다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풀어 말하면 너는 무식해서 내 말뜻을 잘못 알아 들었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어떻게 그런 표현을 쓸 수 있겠는가. “제가 잘못 말씀드렸습니다.” , 영어로 “I made it misunderstood." 라고 표현해서 자신의 잘못임을 표현해야 옳다. 어떤 교수들은 수업(授業)과 강의(講義)를 혼동해 쓰는 이들이 있다. 수업할 일을 주는 행위이고 강의는 의를 논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번 학기에 강의가 너무 많다.“는 자신을 높이는 표현이고 이번 학기 선생님 강의를 신청했습니다.“는 적절한 표현이다. 엄격히 구별한다면 자신이 하는 것을 강의라고 하는 것은 웃기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의 수업은 일반적으로 강의라고 하긴 한다.  

 

호칭을 잘못 쓰는 경우도 많다. 대학에서 학생들은 곧잘 교수를 교수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초중고교에서는 교사님해야 할 것이다. 교수는 직책명이니 삼인칭으로 사용하는 것은 무방하나 호칭은 선생님이 옳다.

 

겨울 어느 날 맨발로 나선 나를 본 한 젊은 국어과 교수과 이 양반이 맨발이네. 안 추우세요?” 했다. 양반이란 단어는 젊은 사람이 나이든 이에게 적용해서 하는 표현으로는 적절치 못한 표현인데 국어 가르친다는 자가 쓰고 있었다. 교회에서 기도하는 장로가 하나님을 당신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인칭으로서의 당신은 존칭이 아닌데. 내 대학 시절의 한 교수님은 잘못되지 않은 표현이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으면 안 쓰는 것이 옳다고 하시면서 노친(老親),’ ‘그녀는따위의 표현은 못쓰게 하였다.

 

영문을 우리말로 옮길때 ‘you’는 그것이 아버지든 선생이든 주인이든 어린아이든 모두 당신으로 번역하는 학생들이 있어 꾸짖곤 한다. 우리말 표현에서 직위는 이름 앞에서 써야 옳다. ‘교수 아무개,’ ‘의원 아무개,’ 등이 옳다. 그런데도 아무개 교수입니다.” “아무개 의원입니다.” 등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자들을 보면 한삼하기 그지없다. 그저 아무개입니다.”가 좋다. 어떤 이들은 편지쓸 때에도 겉 봉이나 편지 내용에 자신의 이름에 교수나 박사를 붙여쓰기도 한다. 아무리 교수나 박사가 자랑스러운 직위요 학위라도 잘못 쓰면 웃음거리 밖에 안 된다  

 

요즈음 우리 사회의 언어생활 중 큰 문제가 은어, 속어, 외래어의 남용이다, 무슨 뜻인지도 모를 거리의 간판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컴퓨터, 이메일, 홈페이지, 콘텐츠 등 외래어 투성이다. 밖에 비가 쏟아져도 비가 오는 것 같아요.” 하고 방송에서 조차 좋은 밤 되세요.” 하는 외국어를 직역한 듯한 표현들이 난무한다. 한글만 쓰기 운동을 펴는 단체에서 내건 현수막에 한글 전용 캠페인이라고 했다니 더 할말이 없다.

 

오래 전 외국에서만 살다시피 한 안익태 선생의 일화가 새삼스럽다. 그는 도중에 허리띠 (혁대)가 생각 안 나서 ‘band’라고 하고선 얼굴을 붉히며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했다는 일화다. 또 영어 잘 하시기로 유명한 한경직 목사 생전의 일화다. 설교 중에 꼭 ‘vision’ 이란 표현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단어를 우리 단어를 옮겨서는 적절치 못한 경우였는데, 목사님은 이를 위해 여러 번 양해를 구하고서야 비전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우리들의 생각이 풍선처럼 부풀어서 망가뜨리는 말 또한 많다. 식당 간판에 원조는 부족해서 진짜 원조를 쓴지는 오래다. 어느 샌가 모두가 사장님이 되었고 사모님이 되었다. 정말 회사 운영하는 사장을 부를 말이 없어졌고 정작 사모님을 사모님이라고 부르기가 송구스러워졌다. 친구는 친구분이 되었고 주부는 주부님이 된 지도 오래다. 남을 높여 부르는 것도 좋지만 그것도 바르게 쓰는 말 범위 내에서라야 옳다.  

 

실 생활에서 간단한 표현을 제대로 못하는 이들 또한 허다하다. “갑자기 늙어 보인다.” “얼굴이 아주 병색이네.” 등 마구 지껄인다. 어떤 이가 요즈음 머리가 계속 아프다.”고 하자 상대방이 얼른 병원에 가 봐. 우리 동네에 그런 사람이 있었는데 갑자기 죽었대.” 하였다. 남이 잘 안되길 바라면서 악담하듯 하면 그건 말이 아니다. 한 번은 동료들 여럿이 가다가 졸업생인 여성과 조교를 만났다. “너 요즈음 얼굴이 왜 그래 ?”하고 내가 말했다. 나는 요즈음 왜 그리 예뻐지나, 섹시하기도 하고.”라고 하였다. 그 조교는 무척이나 기쁜 표정이었다. 그리고 더욱 예뻐져 갔다  

 

같은 과의 교수가 사무 차 한 여직원을 내게 보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여직원 듣는데서 내게 전화를 해서 미스코리아를 보낸다.”고 하였다. 예쁜 여직원 보낸다는 뜻이었다. 그 여직원이 왔다. 나도 그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보낸 사람 왔습니다. 그래 이 여자가 미스 코리아란 말이요?” 했다. 순간 여직원은 얼굴이 몹시 어두워 졌다. 나는 계속해서 미스코리아는 무슨 미스코리아.”하자 그 여직원은 거의 분노까지 보였다. 나는 계속해서 미스월드감이구만.” 했다. 그 여직원은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다. 그 여직원은 그 후 더욱 예뻐졌다.

 

칭찬이나 문안 인사 등은 간략히 하면서도 상대방의 마음에 기쁨을 주어야 한다. 주위에는 지나치게 친절해서(?) 안부를 잘못하는 이들이 있다. 전화로나 마주해서나 건강하냐, 하는 일은 잘되냐 시시콜콜하게 묻고 가족들 안부도 다 묻는다. 그러고서도 모자라서 이번엔 어머니 사셔야 얼마나 더 사시겠냐. 잘 해드려.” 하며 충고까지 한다. 때로는 지나치게 솔직한 것도 예의가 아닐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모교인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 학교에서는 술이나 담배는 엄격히 금하고 있었다. 어기면 사직해야 하는 규정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담배도 늘 숨어서 피워댔다. 어느 방학인가 교장 선생님이 모든 교사 하나 하나를 면담하시겠다고 했다. “아이쿠 때가 왔구나직감하며 기다려 차례가 됐다. 마주 앉아 교장선생님은 우리학교에 술마시는 선생들이 있다는데 아는 바 있나?하시었다. 나는 아니, 우리 학교에서 술을 금하는데 마시다니요. 어떻게 그런 선생들이 있을 수 있습니까?고 펄쩍 뛰었다. 그러자 교장 선생님은 빙긋이 웃으면서 담배 피우는 선생님들도 있대.”하였다. 나는 더 펄쩍 뛰면서 글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만일 있다면 그거 참 큰 문제인데요.” 했다. 다 알고 물으시는 교장선생님 앞에서 털어놓고 고백하고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면 어찌 됐을까? 그 교장선생님은 얼마나 난처하셨을까. 지금도 나는 내가 교장선생님의 입장을 봐 드렸다고(?) 자부하고 있다 

 

말은 상대방을 편하게 하고 용기를 주며 즐겁게 해야 한다. 어느 교회에서 한 부서의 책임을 맡아 열심히 일하던 한 청년이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래 목사님을 찾아가 사정을 아뢰고 부득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목사는 걱정 말라.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고 하였다이쯤 되면 그 목사의 말은 이 아니고 이다그 목사는 지금도 큰 교회의 목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훌륭해서가 아니라 교인들이 어리석어서 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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