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경기·놀이 등에서 둘이 짝이 되는 경우의 상대. 짝패. 동반자. 상거래·사업 따위를 같이 하는 사람. 배우자.' 파트너의 사전적인 의미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나와 짝이 된다고 하여, 혹은 도움을 준다고 하여 '파트너'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인생의 파트너라고 하면 어떨까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있게 '나의 파트너'라고 말하려면 적어도 어떤 요건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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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곧 여든 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센티미터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킬로그램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빈자리입니다.'
남편 고르는 여든 네 살이이었고, 아내 도린은 여든 세 살이었습니다. 그들은 2007년 9월 24일 프랑스의 자택에서 한 날 한 시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남편은 아내 곁에 나란히 누워있었습니다. 그들은 60년 동안 서로 사랑했고, 58년간 부부였습니다. 고르가 영국인 아가씨 도린을 처음 만난 것은 1947년 10월이었습니다. 눈 내리는 밤이었고, 남자는 춤추러 가자는 말로 여자에게 호감을 고백했습니다. 그 뒤로 둘은 공기를 호흡하듯 서로를 호흡했습니다.
앙드레 고르는 사르트르가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 평할 정도로 뛰어난 철학자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를 공동 창간한 언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저널리즘도 철학도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오로지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아내, 도린었습니다. 1983년 전후 유럽 지성계의 한복판을 통과해 온 그는 아내가 불치병에 걸리자 모든 활동을 접고 공기 좋은 시골로 내려갔습니다. 아내와 조용히 살아오던 남편은 한 날 한 시에 삶을 마감하기 1년 전 아내와의 첫 만남으로부터 최근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한 통의 긴 편지를 썼고, 이를 본 지인들의 권유로 그 글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책 제목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는 내 앞에 있는 당신에게 온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걸 당신이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내게 당신의 삶 전부와 당신의 전부를 주었습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 동안 나도 당신에게 내 전부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출간 1년 후 부부가 동시에 삶을 마감하면서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에서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아내를 향한 사랑과 헌신의 마음, 오랜 세월 이어 온 부부의 정과 사랑이 독자들의 가슴을 울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사랑이란 젊은 시절의 불꽃처럼 타오르는 열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들어 늙어가면 사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섣불리 판단합니다. 그러나 고르와 도린의 사랑 이야기는 한 나절의 값싼 사랑으로 변해버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누구나 고르와 도린처럼 진정한 삶의 동반자, 삶의 파트너를 꿈꿉니다. 비단 부부 사이가 아니더라도 그들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믿고 의지하고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관계를 맺고 꾸준히 유지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순간 순간 자신의 위치와 필요에 따라 맺는 일회성의 관계가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삶의 파트너의 요건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헌신과 사랑, 내가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늘 내 편일 것이라는 안정감, 비전과 꿈에 대한 공유, 현실적인 조언과 도움, 항상 곁에 있다는 든든함. 여러 가지 요건이 있을테지만 그 가운데서도 ' 언제나 곁에 있다는 든든함'이 동반자, 파트너의 첫번째 덕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심리학자 다니엘 고틀립은 " 내가 하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일은 아니더라도 내가 누군가와 친밀한 시간을 보내며 그 사람의 이야기에 누구보다 더 귀 기울여 들어 주었을 때, 그로 인해 그 사람이 이전과 다르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 하루는 의미있는 하루"라고 말했습니다.
인생의 파트너와 따뜻한 동행을 하는 것은 삶을 풍요롭고 근사하게 만듭니다. 그 동행은 진한 사랑을 나누는 연인이나 부부일수도, 오랜 우정을 함께 하는 친밀한 친구일수도,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 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형제 자매일수도 있습니다.
천천히 걷는 긴 인생길, 멋진 파트너와 함께 간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여행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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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드레 & 도린 고르 부부
앙드레 고르는 철학자이자 최저임금제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생태주의 이론을 정립한 날카로운 필력을 자랑하는 언론인이기도 했습니다. 도린은 결혼 전 사르트르의 비서로 지낼 만큼 영민한 여자였습니다. 스물네 살의 남자와 스물 세살의 여자는 제 2차 세계대전 직후의 파리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도린이 불치의 병에 걸린 후, 앙드레는 도린을 간호하기 위해 생업을 손에서 놓고 시골로 내려가 스무 해 동안이나 거기서 보냈습니다. 앙드레는 시골마을 보농에서 도린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유기 농산물을 사러 다니고 대체요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자연에 온전히 순응하는 삶, 씨뿌리고 나무를 가꾸는 생활, 진솔한 대화와 글쓰기로 채워진 느림과 비움의 삶을 실천하면서 살았습니다. 사랑과 감사와 헌신으로 일생을 장식한 두 사람은 한 날 한 시에 생일 마감했습니다.
헬렌 & 스코트 니어링(Helen & Scott Nearing)
'삶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은 소유의 축적이 아니라 희망과 노력'이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준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 부부. 그들도 앙드레와 고린부부처럼 인생의 파트너로서 자연 속에서 살다 간 아름다운 파트너들입니다.
1932년, 뉴욕을 떠나 버몬트 산골짝으로 들어 간 부부는 땀 흘려 집을 짓고 땅을 일구어 양식을 장만하며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을 절반 이상 자급 자족했습니다. 또한 한 해를 살기에 충분할 만큼 양식을 모은 뒤에는 일체 돈 버는 일을 하지 않고, 그럼으로써 얻어진 여가는 연구와 여행, 글 쓰기와 대화로 채워나갔습니다. 니어링 부부는 자연 속에서 '단순한 생활, 긴장과 불안에서 벗어남, 무엇이든지 쓸모있는 일을 할 기회, 그리고 조화롭게 살아갈 기회'를 온전히 구가하면서 살았습니다. 현재 시중에 베스트 셀러가 된 그가 쓴 책중에서 <조화로운 삶>을 추천합니다.
찰스 & 레이 임스(Charles & Ray Eames)
그저 편안하게 앉을 수만 있다면 족하다고 생각했던 '의자'를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부부입니다. 20세기 미국의 가장 위대한 디자이너였던 찰스 & 레이 부부는 지난 1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의자를 개발해 낸 디자이너 팀으로, 눈부신 아이디어와 훌륭한 작품으로 인류에게 의자에 대한 한 차원 높은 자치관과 문화를 심어준 사람들입니다.
1940년 찰스 임스는 가구 디자이너인 에로 살리넨과 협력하여 뉴욕 현대예술미술관이 주최한 '오거닉 디자인 공모전'에 출품해 입상했습니다. 당시 학생이었던 레이 카이저가 작업에 함께 참여했고 둘은 사랑에 빠져 이듬해에 결혼했습니다. 그 이후 다양한 작업에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부부의 디자인 철학은 예술과 과학의 조화였는데, 이는 건축가인 찰스와 예술가인 레이의 이상이 서로 알맞게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작품은 현대까지도 유효하여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부의 의자를 실제로 사용하고 있으며 각종 전시회에서 빠지지 않고 진열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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