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독후감·책·영화·논평

[문화산책]고도를 기다리며

석전碩田,제임스 2007. 6. 22. 16:57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

에스트라공 (다시 포기하면서)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군. 블라디미르 (어색한 안짱걸음으로 다가오면서) 아니, 그럴지도 몰라. (가만히 멈춰 선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안 되겠다 싶어서, 나는 오랜 동안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왔어. 블라디미르, 생각해봐, 넌 아직 아무것도 해보지 않았어.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가 누구이며, 어디에 살고, 무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두 사나이는 ‘고도’를 계속 기다린다. ‘심심풀이’, ‘시간 때우기’, ‘인생 메우기’를 하면서 ‘고도’를 기다린다. 1막이 끝날 즈음, 한 소년이 등장해서 이렇게 말한다. “고도님께서 오늘밤에는 못 오지만, 내일은 꼭 오겠다고 전하래요.” 소년은 ‘고도’님의 일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도와 만난 적 있느냐?’ 물음에는 “저는 몰라요” 대답한다. 소년은 돌아가고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그럼, 갈까?” “그래, 가자.” 그러나 대본의 지문은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이다. 그렇게 막이 내린다. 2막의 무대는 다음날 같은 장소, 같은 시각. 두 사람은 고도를 기다린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마냥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변하지 않는다. 그 소년이 또 등장한다. “고도님은 뭘 하고 계시지?” 묻자, 소년은 대답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고도님께서 못 오신다고 전한다. 두 사람은 말한다. “그럼, 갈까?” “그래, 가자.” 지문은 ‘두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이다. 그대로 막이 내리면서 극은 끝난다.

 

1953년에 파리에서 초연되었을 때, 관객 90% 무시, 10% 열광으로 화제를 모았다. 미국 첫 공연 중 관객들이 돌아가는 바람에 공연이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 연극 세계의 판도가 달라져 있었다. 한쪽 정점에 셰익스피어가, 다른 한쪽 정점에 베케트가 존재했다. 베케트는 셰익스피어와 다른 형식으로 인간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다. ‘그저 기다리는 행위’가 드라마가 되었다는 충격, 그리고 “인간은 오로지 많은 것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놀라운 발견, 그리고 “그래, 난 도대체 무얼 기다리고 있는 걸까? 결국 안 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혹시 오지는 않을까 기도하면서.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이 물음과 함께, 인간이란 무엇인지 깨달음을 주고 있다.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군.’ 첫 대사의 지문이다. 또다시 포기하면서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말하는 것이 이 연극 첫머리이다. 이 지문도 인간 생활의 부조리함을 나타내고 있다. 지금 처음으로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몇 번이나 포기하면서도 깨끗이 포기하지 못한 채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군” 말하는 모습. 그에 대해 블라디미르는 답했다. “넌 아직 아무것도 해보지 않았어.”

 

‘부조리’ 란 단어는 요즘 낡은 말로 취급되고 있다. 부조리란 무얼까. 살인사건에는 동기가 있지만 동기가 없는 살인사건도 있다. 인간은 동기가 없는 살인도 쉽게 저지른다. 결국 세상은 이론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이런 감각이 ‘부조리’의 정체가 아닐까. 인간은 똑똑해졌다. 그래서 인간의 부조리를 발견해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은 어중간하게 똑똑해져버렸다. 따라서 뭐든 다 안다는 착각에 빠진다. 대중매체의 영향 때문이다. 부조리를 낡은 개념으로 치부하며 부조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다. 게다가 온갖 인생을 보는 바람에 점점 ‘자의식 과잉’이 되어버린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이런 부조리와 자의식의 시대에 탄생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연극 첫머리의 대사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다.

 

고도님이 오지 않을 거라고 전하러 온 소년에게, 블라디미르는 “너는 불행하지 않지?” 질문한다. 소년은 망설인다. 블라디미르는 다시 한번 “어때?” 묻는다. 소년은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모르겠어요.” 자신이 불행한지 아닌지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 대답을 들은 블라디미르는, 소년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

(세계일보 2007.6.22일자 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