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 그림자가 없다 - 김수영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커크 더글러스나 리처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자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회사원이라고도 하고 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요리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웃고 잡담하고 동정하고 진격한 얼굴을 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 영화관에도 가고 애교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 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전선은 된켄르크*도 노르망디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