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누가 울고 간다 - 문태준

석전碩田,제임스 2005. 12. 14. 14:00

누가 울고 간다

    

                              - 문태준

 

밤새 잘그랑거리다

눈이 그쳤다  

 

나는 외따롭고

생각은 머츰하다  

 

넝쿨에

작은 새

가슴이 붉은 새

와서 운다

와서 울고 간다  

 

이름도 못 불러본 사이

울고

갈 것은 무엇인가  

 

울음은

빛처럼

 

문풍지로 들어온

겨울빛처럼

여리고 여려  

 

누가

내 귀에서

그 소릴 꺼내 펴나  

 

저렇게

울고

떠난 사람이 있었다  

 

가슴속으로

붉게

번지고 스며  

 

이제는

누구도 끄집어낼 수 없는  

 

2005년 미당문학상을 수상한 문태준 시인의 대표작입니다. 지난 9, 35세의 젊은 시인이 미당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을 때, 언론에서 대서특필한 기사가 있어 아래에 소개합니다.

 

일진광풍과도 같은 비바람이 불면서 얼마 남지 않은 낙엽들이 나뒹구는 입동즈음에 시 한편을 함께 읽고 싶네요. ^&^(200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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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에서 십 리쯤 떨어진 산골 마을. 무던히도 하늘을 좋아하던 소년이 있었다. 학교 파하고 심심한 오후면 집 마루에 걸터앉아 추풍령 넘어오는 소나기를 쳐다봤고, 저녁마다 평상에 누워 먼길 가는 별을 바라보다 잠이 들었다. 하늘에 목련화 만발하면 목련화 하늘궁전에서 이레쯤 살아보는 꿈도 꾸었다. 소년네 집 뒤란은 바람 울고 장닭 홰치는 소리로 늘 수런거렸고, 마당엔 사철 감꽃 져내리는 감나무 한 그루 서 있었다. 논일 끝내고 돌아오는 길의 아버지는 동네 어귀부터 소리를 질렀다. "태준아, 소 받아라". 위로 누나가 둘이고 아래로 누이가 둘이어도 소 받는 일은 소년의 몫이었다.

 

전교생이 50명을 겨우 넘는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동네 어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을 벌였다. 물꼬라는 것이 다 큰 어른이 드잡이를 해서라도 빼앗겨선 안되는 존재라는 걸 소년은 까까머리 중학생이 돼서야 알았다. 소백산맥 자락 황학산(1111m) 기슭에 40여 가구 옹망졸망 모인 동네, 경북 김천 읍내에서 30리 더 들어가는 봉산면  태화리라는 마을. 소년이 나고 자란 곳이다.

 

1970년생 시인 문태준이 제5회 미당문학상을 받았다. 한 평론가는 "일대 파란"이라 불렀고, 한 원로 시인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선언했다. 미당문학상을 35세의 시인이 받았다는 소식에 문단은 술렁댔다. '드디어'라는 부사 보다 '벌써'라는 부사가 자주 들렸다. 시인의 경륜을 중히 여기는 문단 정서를 고려했을 때 예기치 못한 반응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한해 그는 너무 도드라졌다.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그가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 수는 41. 웬만한 시집 한 권 분량이다. 그는 시인 소설가 통틀어 대학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고 2위원도 만장일치로 그를 3심에 올렸고 최종심에선 투표를 거치지 않고 수상자를 선정했다. 올해 본심위원인 첫회 수상자 정현종 시인은 "오랜만에 천생 시인을 만났다"고 말했다.

 

기사 벽두 산골 소년 이야기는 시인의 어릴 적 일화와 작품들에서 골라 엮은 것이다. 그 정서가 시인의 오늘을 오롯이 이루기 때문이다. 산골 소년이 자라고 늙으면서 보고 듣고 느꼈던 바, 하늘과 바람과 나무와 꽃, 춘화 걸려있던 역전 이발소와 밤마다 등멱하러 엎드리던 담장 너머 봉산댁, 오로지 농사만 아시는 아버지, 그러한 당신께서 멀찍이서 외치던 소리 "소 받아라", 그리고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서 가재미처럼 엎드린 채 앓다 가신 큰 어머니. 시편마다 산골 소년의 시선이 들어있다.


그가 들려준 아버지의 일화를 전한다.

 

"서울의 대학으로 유학가는 날 아버지가 터미날에 나오셨다. 당신의 한 손에 조선낫이 들려 있었다. 새끼로 돌돌 말아 날을 숨긴 낫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아들을 태운 버스가 떠나면 곧장 논으로 가실 요량이었다. 당신이 돌아갈 곳은 거기 뿐이었으리라.

 

"그 모습이 싫다는 거냐, 좋다는 거냐"고 묻자 시인은 "잊혀지지 않을 뿐"이라고 답했다. 그는 시인 백석, 소월과 종종 비교되곤 한다. 서정적이고 향토적인 시를 생산하기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말을 삼키고 몸을 낮춘다. 덤덤하게 아버지를 기억하는 것처럼 아련하고 애잔한 무엇을 조심스레 읊을 뿐이다

  

시인 문태준을 설명하는 두 가지. 그는 불교방송 PD. PD라면 어색한 듯 싶다가도 불교방송이라면 수긍되는 면이 있다. 다른 하나는 휴대전화를 걸면 알 수 있다. '풀 잎새 따다가 엮었어요그대 노을빛에 머리 곱게 물들면 예쁜 꽃 모자 씌워주고파'. 시인이 된 산골 소년의 통화연결음 가락은 '어느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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