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문 강에 삽을 씻고
- 정희성
흐르는 것이 물뿐이랴.
우리가 저와 같아서
강변에 나가 삽을 씻으며
거기 슬픔도 퍼다 버린다.
일이 끝나 저물어
스스로 깊어 가는 강을 보며
쭈그려 앉아 담배나 피우고
나는 돌아갈 뿐이다.
삽 자루에 맡긴 한 생애가
이렇게 저물고, 저물어서
샛강 바닥 썩은 물에
달이 뜨는구나.
우리가 저와 같아서
흐르는 물에 삽을 씻고
먹을 것 없는 사람들의 마을로
다시 어두워 돌아가야 한다.
-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창비, 1978)
친구들은 저마다 대학원 공부를 더 해서 대학의 교수직으로 옮겨 갔지만, 끝까지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길 고집했던 희성 시인의 대표작, '저문 강에 삽을 씻고'를 읽습니다.
가끔씩 구내 서점이나 교보 문고를 들러 책을 고르는 것이 오래 전부터 내 생활에서 하나의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발걸음이 시 집들이 꽂혀 있는 서가를 서성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기획된 책, 자기를 내세우는 책보다 그저 자신의 내면을 진솔하게 표현한 글들에 눈이 가는 것도 늙어가는 하나의 표식일까요?
한 주간이 쏜 살같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가을의 문턱에 어떤 책을 손에 잡고 계신지요?(2005.10.6) - 석전(碩田)
'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 울고 간다 - 문태준 (0) | 2005.12.14 |
---|---|
사랑한다 - 정호승 (0) | 2005.12.14 |
행복은 - 조병화 (0) | 2005.12.14 |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 처럼 - 알프레드 디 수지 (0) | 2005.12.14 |
비 그치고 - 류시화 (0) | 2005.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