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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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의 경지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가는 삶이 행복한 삶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무위의 길이 있는지 조차도 모르고 살거든요. 요즘 전, 그 무위의 경지가 다름 아닌 지금-여기서의 충실한 삶 속에서 구현되는 것이며, 그 비결을 깨달은 자들이 도를 발견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삶 속에서, 아주 평범한 가운데, 매일 매일의 충실한 삶 속에서 깨달아 가는 진리야 말로 우리가 도달해야할 도의 경지, 무위의 경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는 것입니다. 매일 먹고 잠자고 분노하고 기뻐하고, 또 두려워하고 느끼고 섹스하고 웃고 슬퍼하고, 때론 우울해 하기도 하고... 그저 삶 속에서 발견하는 진리....
예수가 그랬었고 바울이 그랬으며 또 요한이 그랬고 노자가 그랬고 오늘 아침에 묵상했던 야고보서를 읽으면서, 아! 야고보도 그랬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야고보는 철저하게 현실의 삶 속에서 구현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극단적으로 설파하더군요.
맞습니다. 삶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진리는, 아무리 그것이 미사여구로 치장을 하고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야고보는 마지막 장에서, 그런 믿음의 삶을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멋진 표현이어서 한번 제가 써 볼께요. 묵상해 보세요.
5장 12절,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찌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는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죄 정함을 면하라."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외적인 조건이나 드러난 모습을 자랑합니다. 과거에 내가 그랬다든지 아니면 내가 이런 이런 지식을 가지고 학벌을 가졌다든지, 아니면 내가 이러한 부자라든지.... 야고보는 그런 인간의 모습을 땅으로 맹세하는 자세로 표현한 것 같아요. "땅으로 맹세한다"는 말, 즉 나의 과거의 무엇으로 자랑하고 내세운다는 뜻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하늘로 맹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 앞으로 무엇을 하겠다든지, 되겠다든지, 아니면 앞으로 무엇 무엇을 해 보겠다는 원망(願望)을 의미한다고 봐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앞으로의 계획과 소원에 얽매여 있는지 몰라요. 그래서 결국 현재를 소홀하게 하면서 말입니다.
야고보는 그런 것은 믿음이 아니라는 표현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살라고 촉구하느냐 하면, 지금 여기서 아닌 건 아니고 기면 기다는 명확한 현재 의식으로 사는 것이 결국 믿음의 모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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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이 바로 이런 진리의 참 모습을 깨닫고 실천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들이었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에게 그런 삶의 모습을 촉구하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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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 최 선생님의 수고에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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