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산행후기

[스크랩] 터키 여행기(3)

석전碩田,제임스 2005. 11. 22. 23:30
회복해야 할 땅 터키

① 고난의 현장-갑바도기아
② 심판의 진행-소아시아 7교회
③ 실력-로마제국 기독교의 성쇠

# 이슬람 핵심부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바울기념교회

지난 번에 올린 터키 여행기에서 언급한 갑바도기아 일대, 그리고 터키의 수도 앙카라의 박물관 등을 돌아보며 하루를 보낸 우리 팀이 끝도 없을 것 같은 드넓은 푸른 초원을 가로질러 6시간을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곳은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쫓기던 이고니온(콘야)이었다.
바울이 1차 전도여행 시부터 연속해서 방문한 이 곳에서는 탐사팀 일행이 며칠 동안 볼 수 없었던 십자가가 내 걸린 ‘바울기념교회’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특히 몇 번째 이곳을 방문했지만 교회에 문이 잠겨 들어갈 수 없어서 아쉬워했다는 조효근 목사(본지 발행인)는 “이번 탐사팀은 큰 행복”이라고 말했다. 한 주일에 2회 밖에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본인은 몇 번 찾아와서도 예배당 내부는 커녕 수녀도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금번 순례단은 바울교회를 제대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99%가 이슬람 신자인 이곳에서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는 가는 곳곳마다 세워져 있었고, 특히 이곳 이고니온은 소아시아 남부의 중앙에 위치, 터키 도청 소재지가 있고, 이슬람 평화주의 영성가로 아직까지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메블라나 루우미’ 세계 본부가 있을 정도로 핵심이라 할 수 있는데 교회가 이곳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격으로 다가왔다.
현재 이 교회에는 가톨릭 교회에서 파송된 3 명의 수녀가 사역하고 있다는데, 수녀들은 수녀복도 입지 못하고(얼마나 조심스러운지 가늠할 수 있다) 갸날픈 몸으로 방문객을 화사하게 맞았다. 의사소통은 잘 되지 못하지만 일행들은 그 수녀님과 눈인사를 하며, ‘힘내세요, 그리고 우리가 함께 기도할께요’라는 응원을 보냈다.

# 비시디아 안디옥을 가다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새벽 5시 기상과 계속되는 여행의 피곤함을 차안에서 달래고 (5시간 정도) 있는 사이 어느새 눈 앞에는 터키서 가장 장대한 협곡으로 알려져 있는 토로스산맥의 아슬아슬한 길을 달리고 있었다. 한국의 한계령을 연상케 했지만 그것보다 5~6배는 위험하고 또 그 골짜기의 깊이, 산맥의 형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떤 여행자는 어지러워서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보통 성지여행에서는 이 코스를 거의 넣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아찔한 순간을 뒤로한 채 도착한 곳은 이방 선교의 중심지로 알려진 비시디아 안디옥(얄바츠)이었다. 저녁 7시 30분, 해가 아직 지지 않았음(한국 날씨와 비슷)을 다행으로 여겨 급하게 다가갔지만 철문은 닫혀져 있었다.
‘아, 이곳을 보기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 위험한 순간들을 거쳐 왔는데…’ 하며 아쉬워 하고 있었는데, 관리인의 허락을 받아 철문을 넘어 들어가는 것을 겨우 허락받았다. 연세가 많은 분들도 꽤 여럿이었는데, 주저하지 않고 모두들 담을 잘도 넘었다. 한 분의 목사님은 엎어져 얼굴에 조그만 ‘상처’를 남기기도 했으나 해가 서둘러 지기 전에 둘러보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기저기 신전 및 원형경기장, 여러 시설들이 자리하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유적들이 꽤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비잔틴교회터 바로 옆에는 세례터가 어느 정도 복원돼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행은 회당자리가 있던 터를 향해 숨가쁘게 뛰고 달렸다.
 사도바울이 세웠던 교회 중 이번 탐사에서 제일 먼저 만난 바울교회터에서 우리를 반긴 것은 건물의 자취를 알려주는 나뒹구는 돌덩이들과 기둥들이었다. ‘아, 이렇게 처참하게 모두 무너져버렸구나.’ 이런 상태인 줄은 알았지만 막상 만나보니 마음은 한없이 처참하고, 착잡한 모습들이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행은 잠시 바울교회터에서 한자리에 모여 사도 바울이 이곳 비시디아 안디옥의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헬라어를 사용하는 이방인들에게 선교했던(행 13:14~16) 것을 기억하며 46절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는 말씀을 함께 읽었다. 말씀 앞에 선 조효근 목사는 “바로 여기 이곳에서 이방기독교시대를 선언한 바울의 결단은 또 한 번의 메시아 선언이요 혁명보다 더 큰 혁명”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탐사를 처음부터 야심차게 준비해 온 조효근 목사는 성지문화원 원장 박용우 박사의 소개로 비시디아 안디옥 박물관장을 만나서 더 깊은 공부를 탐사팀과 함께 하려고 계획했는데 시간이 늦어서 이루어지지 못해 안타까워 했다.
저녁 8시 30분. 해는 거의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다음날 일정을 위해 우리는 히에라볼리(파묵깔레)로 이동, 밤 늦게서야 저녁을 먹고 잠을 청할 수 있었다.

# 이틀에 걸쳐 돌아본 소아시아 7교회


  어느새 일행은 터기 중남부에서 서부쪽으로 이동해가며 순례하고 있었다. 히에라볼리에는 빌립 순교기념교회의 유적이 있다. 15분 정도 올라가니 우뚝 보인다. 사도 빌립의 무덤으로 주장하기도 하나 전도자 빌립 집사의 무덤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이 많다. 전도자 빌립은 히에라볼리에서 그 말년을 보냈으며, 처녀 예언자인 그의 딸과 함께(행 21:8~9) 이곳에 묻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빌립의 무덤은 약 54<&28094>의 넓이로, 사면이 작은 방으로 둘러져 있다. 직경 18m 이상인 8각형 방의 중앙에 있으며, 8 개의 예배실과 회당이 방사형으로 통해 있다.
  올라간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왼쪽으로 들어서니 야외원형극장이 있는데, 2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곳이지만 마이크 없이도 서로 의사 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공법으로 시공되어 있다고 한다. 그 부근에 흰눈 같은 절경이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히에라볼리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파묵깔레다. 뜨거운 물이 끊임없이 솟아오는 온천지대로, 여기에는 많은 양의 석회질이 오랜 시간 물 속에 침전돼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하얀색으로 뒤덮여 있다. 높이가 약 100m에 이르는 백색 석회석으로 만들어진 이 경관은 멀리서 보면 마치 만발한 목화 송이로 뒤덮인 것 같이 보여 ‘목화성’이라는 뜻의 ‘파묵깔레’로 이름붙여졌다고 한다.


히에라볼리(파묵칼레) 지역의 목화성, 빌립 기념교회 터, 그리고 현재의 온천 모습


  파묵깔레에서 시간에 쫓겨 그 좋은 온천수에 몸을 담가보지 못하고 발만 담궈보는 것으로 온천을 대신해야 했다. 그렇게 잠시의 여유를 부리고 그곳에서 8km 인근에 있는 사도바울에게 책망만 받은 라오디게아교회, 바울이 옥중에서 편지를 보낸 골로새, 로마제국시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디옥과 더불어 사대 도시 중 하나이며 수도였던 에베소, 폴리갑이 순교한 서머나(이즈밀),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2)라며 책망을 받은 ‘사데교회’, 책망받은 일은 하나도 없고 칭찬만 받은 모범적 교회로 알려진 신앙의 도시 빌라델비아, 바울이 자주 장사를 하며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는 여자를 만났던 두아디라, ‘온 아시아에서 가장 우상숭배가 성한 곳’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버가모를 차례로 순례를 했다.


돌 무더기로 변한 라오디게아 교회지역, 밀밭으로 변한 골로새 지역, 그리고 빌라델비아 교회 터


  똑같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세워졌으나 칭찬을 받은 교회가 있는가 하면, 책망을 받은 교회를 돌아보면서,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이 바로 칭찬만 받지는 못할 것이라는 푸념이 일행들 속에서 고백되고 있었다.

출처 : 忍松齋
글쓴이 : 제임스본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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