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봉우리 / 아름다운 사람 - 김민기

석전碩田,제임스 2024. 7. 31. 06:00

봉우리

 

- 김민기 작사/작곡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족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저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같은 것이 저며 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https://www.youtube.com/watch?v=3DMQc76GfzQ

 

* 감상 :

지난 주말에 화려하게 개막한 파리 올림픽이 한창 진행되고 있습니다. 모두가 금메달에 열광하고 있는 지금, 지난주에 우리 곁을 떠난 김민기가 작사 작곡한 ‘봉우리’라는 노래가 상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하고 먼저 선수촌을 떠나 집으로 돌아간 선수들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송지나 작가에 의해 제작이 되었는데, 그때 이 곡은 주제곡(OST)으로 삽입되었습니다. 그 후 양희은에 의해 1985년 ‘우리가 오를 봉우리’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던 노래입니다. 앞부분과 중간 부분에 시 낭송하듯이 읊조리는 부분과 낮은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어울려 가슴에 와닿습니다.

 

난주 수요일, 가수, 싱어송라이터, 극단 학전(學田)의 대표이자 연출가, 포크계의 대부 등 수많은 수식어가 그를 따랐던 가수 김민기가 향년 73세(1951년 3월 31일 출생, 2024년 7월 21일 사망)의 일기로 별세, 많은 사람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습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그가 작사 작곡한 노래의 가삿말로, 마치 자신의 삶을 그대로 반영해 놓은 듯한 내용 같습니다. 모두 정상을 향해서 달음질치는 세상에서, 항상 뒤에서 다른 사람이 잘되기를 밀어주고 응원해 주는 ‘뒷 것’으로 살기를 원했던 그는, 떠날 때도 자신의 ‘그 삶의 원칙’을 지켰습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조문객들에게 일체 조의금과 조화를 받지 않았는데, 前 SM 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였던 절친 이수만이 조문객들을 위한 식사비에 보탰으면 좋겠다고 들고 온 5천만 원도 고인의 유지(遺志)에 따라 그 자리에서 돌려주었다는 후문입니다. 또한 주위에서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서 ‘추모 공연’이나 ‘추모 사업’을 하려는 움직임도 고인의 뜻에 따라 유가족은 정중하게 사양했다고 합니다.

 

가 노래했듯이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결국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고 발버둥 치면서, 다른 사람을 짓밟고, 다른 사람보다 한발 먼저 ‘봉우리’에 오르려고 하다가 허망하게 이 세상을 떠나는 건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 그는 노래 가사를 통해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 우리 땀 흘리며 가는 /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어쩌면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 말하면서, 그보다는 오히려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를 생각하라고 낮은 목소리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삶의 길 위에서 가끔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 올 때는 /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하라 고 권하는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은은히 들려오는 듯합니다.

 

민기, 그는 평생을, 다른 사람에게 바다가 되어 준 삶을 몸소 살아냈던 사람이었습니다. 1994년에 그가 대학로에 창단했던 극단 학전(學田)의 이름도 못자리, 즉 인재를 키워내는 사람 농사꾼이라는 뜻이었듯이, 그는 그 역할을 자임했던 것입니다.

 

가 작곡한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노래 가사 말을 한번 감상해 보겠습니다. 김민기 1집에 수록되었던 곡인데 1971년에 작곡되어 같은 해 서울대 회화과 신입생 환영회 때 여성 포크 그룹인 현경과 영애가 세상에 처음 선보였던 노래입니다. 김민기는 그가 생각하는 인간 군상을 시적 은유로 ‘한 아이’를 등장시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비록 ‘어두운 비 내리고’ ‘세찬 바람 불어오’지만,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바로 ‘새하얀 눈 내리는 벌판에’ 홀로 우뚝 서서 ‘아름다운 사람’으로서 ‘그 한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따뜻하고 희망적인 리듬에 올려 노래한 것입니다.

 

아름다운 사람

 

- 김민기 작사/작곡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세찬 바람 불어 오면

들판에 한 아이 달려 오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새 하얀 눈 내려 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음~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그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어라

 

https://youtu.be/ySGEO3SH-Sc?si=H1UytoY0mMayX4YY

 

가 작곡했던 노래들, ‘아침 이슬’, ‘상록수’, ‘친구’, ‘늙은 군인의 노래’, ‘이등병의 편지’, ‘가을 편지’, ‘내 나라 내 겨레’ 등 많은 곡이 생각납니다. 7, 80년대 청년 문화를 이끈 영웅이었지만, 그는 그저 ‘밥은 먹었냐?’며 소탈하게 삶의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던, ‘사람 맛이 났던 분’이었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입니다. 그가 걸었던 삶을 이렇게나마 한번 되짚어 볼 수 있어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