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장마 - 목필균 / 최하림

석전碩田,제임스 2024. 7. 24. 06:00

장마

 

- 목필균

 

굵은 비가 내린다.

언제 그칠 줄 무르는 장맛비가

지하방(地下房) 창가에 흐른다.

 

그렇지 않아도 눅눅한 방에

칠순으로 향하는 마른 육신이

고단한 몸을 담고 있는데

비는 칭얼칭얼 치마꼬리를 잡는다.

 

온종일 고층아파트 계단 쓸어내리던

무릎관절 오지게 부어오르는 밤을

살만한 자식들 손길 마다하고

홀로 지켜내는 유씨 할머니.

 

낮에도 어두운 그곳을

햇볕 속에서도 축축한 그곳을

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비가 내린다.

 

- 시집 <꽃의 결별>(오감도, 2003년),

 

* 감상 : 목필균 시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춘천 교육대학과 성신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습니다. 1995년 <문학 21>의 신인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집으로 <거울 보기>(우이동 사람들, 1998년), <꽃의 결별>(오감도, 2003년), <내가 꽃이라 하네>(오감도, 2012), <엄마와 어머니 사이>(오감도, 2015), <사찰 순례시 - 근심 한 자락 두고 가라 하네>(오감도, 2020), <내게 말 걸어 주는 사람들>(시선사, 2021)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는 <말더듬이의 겨울 수첩>, <짧은 노래에 실린 행복>(오감도, 2008년) 등이 있습니다.

 

난달 22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6월 29일에는 한반도 전역이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장마가 언제 종료될는지는 아직도 유동적이라고 합니다. 해마다 장마의 시작과 끝이 기상청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발표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기상청이 장마의 시작과 종료를 발표하는 가장 큰 목적은, 사람들에게 비에 대한 대비뿐 아니라, 큰비에 조심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리나라의 장마 기간은 대체로 6월 중순에서 7월 중순으로 알고 있지만, 최근에는 이상 기후 영향으로 장마 기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또 이전에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집중 호우가 빈번해졌고 그 수량도 매번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가히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마철에 감상하려고 고이 보관해 두었던 시를 이제야 꺼냈습니다. 그리고 이 시를 감상할 때는 시 자체보다는, 날씨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매일 시청하는 일기예보 관련 유튜브 채널 한 곳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장마’라는 제목의 시는 시인이라면 적어도 한 편의 시를 썼을 정도로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여러 날을 시도 때도 없이 내리는 비에 대한 시들이 대부분 우울한 ‘시적 은유’로 노래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감상하는 시도 시인은 지하방에 홀로 지내면서 아파트 계단 청소로 생계를 꾸려가는, 자녀들과는 연락도 끊고 지내는 ‘유씨 할머니’의 처지를 ‘시적 은유’로 삼아 눅눅하게 내리는 장맛비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긴 장맛비가, 어김없이 눅눅한 그 지하방에도 그칠 줄 모르고 내리치고 있다고 노래하는 시입니다. ‘낮에도 어두운 그곳을 / 햇볕 속에서도 축축한 그곳을 / 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비가 내린다’로 끝을 맺고 있는 이 시도 우울하기는 매 마찬가지입니다.

 

제 본격적으로 유튜브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이 유튜브를 운영하는 분의 이름은 소원주 박사. 그래서 유튜브 채널의 제목이 '소박사 TV'(https://www.youtube.com/@drsohtv)입니다. 지구 과학을 전공한 그는 중고등학교 교직에서 가르치는 동안 특히 화산 활동에 관심이 많아, 일본에 유학, 지진 분야의 박사 학위도 취득한 학구파였습니다. 중등학교에서 40년을 가르치다가 지난 2019년 정년퇴임 후, 자신의 전공을 살려 유튜브를 통해서 기상 현상 뿐 아니라 지진, 화산 등의 뉴스를 일반 사람들에게 알아듣기 쉽게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 ‘내일 날씨는 어떻게 될 것’이라고 예보하는 방송국의 ‘일기예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이분은 기상 관련 현상을 자세하게 설명하면서 그 개념과 원리까지 완벽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스스로 소개했듯이, ‘기상 컨설턴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유튜브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고정 구독자가 53만명이 훌쩍 넘어갔을 정도이니, 그의 탁월성이 객관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셈입니다. 아마도 교단에서 학생들을 여러 해 가르치면서 어떻게 설명해야 상대방이 잘 이해할 수 있는지를 익히 알고 있는 ‘노련함’이 한몫을 하는 듯합니다.

 

는 처음 그의 유튜브 방송을 접했을 때, ‘고기압은 중심을 향해 시계 방향으로 바람이 불기 때문에 상승 기류가 생기지 않는 반면, 저기압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불면서 상승 기류가 생겨 구름이 발생한다’는 그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면서, 지금까지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고 살았던 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 후 그의 유튜브 방송을 마치 신앙하듯이 매일 시청하면서 이젠 저도 꽤 유식한(?) 수준이 된 듯합니다.

 

글을 쓰면서 앞에서 장마 시작과 종료를 기상청이 선언한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를 잘 아는 것처럼 쓴 것도 사실은 이 유튜브를 시청하면서 알게 된 사소한 상식 때문입니다. 장마가 발생하는 원리, 태풍은 무엇이며 태풍이 생기는 원리 등을 정확한 데이터와 수치를 제시하면서 지도상에 좌표를 찍어가며 설명하는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오늘부터 며칠 간의 일기예보는 저절로 예상될 정도입니다.

 

마 전선이 만들어져서 동서로 길게 형성되어 있다가 북태평양 고기압이 점점 확장 북상하면서, 일본 오키나와에서부터 차례대로 장마가 선언되어 약 한 달가량 오르락내리락 비 오는 날이 많아집니다. 말하자면 본격적인 ‘장마의 계절’에 접어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이 더 커지면 북쪽으로 올라온 전선이 마지막 몸부림을 하듯, 집중 호우가 내리게 되고 장마는 남쪽 지방부터 차례대로 종료 선언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난 며칠간 서울 경기, 충청을 오르내리면서 엄청난 큰비가 쏟아진 것은 이제 장마도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장마 기간이 지나고 나면, 고온 다습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영향으로 곧바로 폭염(暴炎)이 쏟아지는 성하(盛夏)의 계절이 되니 그 또한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칠 전, 이번 주에 소개하려는 시가 ‘장마’라는 나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친구가 최하림의 ‘장마’라는 같은 제목의 시를 보내왔습니다.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 의지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따뜻한 서정성으로 녹여 낸 시인으로 평가받는 시인의 시라면서 보내 준 것이었습니다.

 

장마

 

- 최하림

 

밤새 앞 강물이 크게 불었다

서시천의 다리가 물에 잠기고

물과 마을의 구별이 없어지니

물소리 들리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다

 

이따금씩 바람이 떼 지어 지나가고

구름이 모여들어 꺼머진 하늘이 개울에 비쳤다

뿌리뽑힌 잡초들도 떠밀려 갔다

어머니는 그런 풍경이 두려운 듯

부엌에서

마루로 곳간으로 종종걸음치고

그때면 수양버들도 가지를 솟구치며

하늘에 길을 내어 새들을 날게 하였다

 

- 시집 <최하림 시 전집>(문학과지성, 2020)

 

‘소박사 TV’의 전망에 의하면, 제주도는 이미 장마가 종료 선언 되어도 아무 이상이 없는 상황이고, 서울 중부 지방도 이번 주에 예보되어 있는 비가 지나고 나면 장마 종료 선언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의 마지막 멘트, ‘폭염(暴炎)의 더위는 이제부터입니다.’라는 말이 적이 걱정스럽게 들립니다. - 석전(碩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