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는 한 편의 詩

일흔의 꿈 여든의 꿈 / 아버지의 시 - 이형복

석전碩田,제임스 2024. 7. 17. 06:00

일흔의 꿈 여든의 꿈
 
- 이형복
 
새벽 2시 16분
어제보다 10여 분 더 빨리 깨어났다.
이렇게 빨리 깨어났다는 것은
이미 꿈을 다 꾸어버렸거나
아예 꿈을 포기해버렸다는 이야기이다.
일흔이 되고 여든이 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꿈을 꾸어야 하는데
벌써 깨어나면 어쩌자는 것인가?
우우우 소리라도 지르며
거리로 나서고 싶지만
아직은 모두들 꿈을 꾸고 있는 시간.
나 홀로 꾸지 못하는 꿈이
그들에게 무슨 염려가 되랴
새벽이면 혼자라는 생각에
내 삶이 더 측은해진다.
 
*
벌써 지쳐버린 것일까?
아니면 지금 이대로이어도 행복한 때문일까?
 
아직도 친구들은 세상살이의 한 부분에서 열심이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요지부동이다. 인생 100세 시대라고 더 열심히 모아두어야 한다고 열심인 친구들을 보고 그저 함께 놀기나 하자고 말리려 들기만 하고 있으니 어떤 친구들은 아직도 철들지 않은 게 분명하다고 측은해하기도 한다. 이럴 땐 외톨이가 되고만 느낌이다.
 
한데 말이다. 사는 것을 그렇게 꼭 염려하며 대비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게 준비만 하다가 살아보지도 못하고 떠나면 억울하지는 않을까?
 
하루의 허기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노래를 부르는 새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는 아직 아이에 머물러 있는 것일까?
 
-  시집 <성산리에는 시와 행복이 있다 – 그 다섯 번째 이야기 ‘순이’>(행복나무, 2019)
 
* 감상 : 이형복 시인.

‘1954년 전북 고창에서 생겨나서 한때는 대한뉴스를 찍느라 카메라를 메고 다니기도 했고, 또 남들처럼 돈 좀 벌어볼 거라고 장사도 해보다가 아직도 사는 방법을 알지 못해 바람에게 물으며 전북 고창군 아산면 성산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의 책에 실린 저자를 소개하는 간략한 글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사실, 제가 이형복 시인을 알게 된 사연은 이러합니다.
 
아시다시피, 2022년 8월 말 정년퇴직을 한 후 저는 ‘경주배씨대종회’ 편집국장으로 약 1년간 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대종회 사무실 옆자리에서 저와 마찬가지로 공직에서 일하다가 퇴직한 후 사무국장으로 일했던 분이 계셨는데, 어느 날 제가 보내드리는 ‘아침에 읽는 한 편의 시’에 대한 답신으로 글 하나를 보내주셨습니다. 본인이 쓴 글이 아니라 ‘이형복’이라는 이름의 글이었습니다. 몇 차례를 반복해서 보내주시는 그 글을 읽다가 어느 날 제가 물었습니다. ‘이형복이라는 분은 누구신가요?’ 사무국장의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시골 중학교 동창 친구에요. 매일 저에게 보내주는 글입니다.’ 그리고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또 왜 그 글을 자신에게 보내는지 일체 다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고향의 친구로서, 지금은 시골에서 살고 있으며 그곳에서 매일 글을 쓰면서 텃밭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 글을 주변의 지인들에게 매일 보내주고 있다’는 것이 그가 알려 준 시인에 대한 정보의 전부였습니다.
 
해 초였습니다. 제가 대종회 편집국장 일을 일찌감치 그만둔 지도 벌써 6개월이 훨씬 지난 어느 날, 사무국장과 연락할 일이 생겼고 그 일로 오랜만에 그가 다시 이형복 시인의 글을 보내주기 시작했는데, 그 글이 그날따라 격하게 공감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한번 소개해 줄 수 없느냐는 어려운 부탁을 드렸더니, 시인의 개인 전화번호를 달랑 주시더군요.
 
난달, 알려 준 전화번호로 문자를 먼저 드린 후, ‘혹시 시집을 구입할 수 있는지’ 부탁을 하자 이형복 시인은 대종회 사무국장과 마찬가지로 별다른 구구절절 말없이 세 권의 시집을 곱게 포장해서 즉시 보내주셨습니다.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요!
 
인은, 치열한 도회지에서의 직장 생활을 10여 년 전에 마감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텃밭을 가꾸며, 글을 써서 주변의 지인들과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2016년 그동안 써 온 시와 글들을 묶은 시집 <성산리에는 시와 행복이 있다 – 그 첫 번째 이야기>(행복나무, 2016)를 낸 후, 2020년 <성산리에는 시와 행복이 있다 – 그 여섯 번째 이야기 ‘지금 어디’>(행복나무, 2020) 등 지금까지 총 여섯 권의 시집을 냈습니다. 현재는 카카오스토리(https://story.kakao.com/bok1954)에 시와 글을 올리며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의 시의 특징은 시를 쓰는데 적용된 ‘시적 은유’를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글이 반드시 함께 뒤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시를 접하는 사람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고 마치 한 편의 에세이를 읽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부담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늘 감상하는 시는 밤에 꾸는 ‘꿈’과 우리가 삶 속에서 갖는 ‘꿈’이 같은 단어라는데 착안하여, 나이 일흔을 바라보는 시점에 선 시인으로서, 어떤 꿈을 꾸며 살아야 하는지 자신을 돌아보는 시이기도 하고, 또 물리적인 나이 앞에서 꿈을 포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죽비 같은 시이기도 합니다. ‘일흔이 되고 여든이 되기 위해서는 / 또 다른 꿈을 꾸어야 하는데 / 벌써 깨어나면 어쩌자는 것인가?’ 시인의 당찬 다짐과 결의가 담긴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 시인이 써 놓은 짧은 메모 글이 어쩌면 시보다 더 시처럼 다가오는 것도 묘합니다.
 
인이 비록 늦은 나이지만 시를 쓰려고 했던 ‘초심’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왜 시골 초야에 묻혀 자연을 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살짝 엿보이는 시를 같은 시집에서 골라보았습니다.
 
아버지의 시
 
- 이형복
 
시렁 위에 모셔두었던 죽음이란 놈이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고 내려와
눈 내린 길을 따라 모시고 가기 전까지
지게를 지고 걸어가시는 길마다
당신만 아시는 언어로 시를 써오셨단다.
내 어머니 또한
그 긴 밭이랑에 팥을 심듯
낡은 삼베옷을 적시며 시를 써오셨단다.
 
시인은 가난해야 한다고
시인은 이별을 해야만 한다고
가난을 찾아 나서고
이별을 찾아 나서며 내가 써온 시들은
길가에서도 밭이랑 사이에서도 자리지 못하고
그저 허공에서 맴맴 거리고만 있으니
시를 쓴다는 일이
내 아버지의 시를 두고 부끄럽기만 하고나.
 
*
시란 것이 무엇일까?
시란 무엇이어야 할까?
철없이 얄팍한 속내를 드러내 놓고 시라고 우기지나 않는지 가끔은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는다. 아지고 산다는 것이 힘들기만 하다고 한참을 이야기를 하다가 그래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가 있어 고맙다는 이야기를 한다.
 
어쩌면 시라는 것이 그런 아픈 마음을 보듬어주기도 해야 되리란 생각을 해 본다.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픈 가슴까지도 안을 수 있는 시가 되어주기도 해야 하리란 생각을 해 본다.
 
어쩌면 시라는 단어를 들어보지도 못하고 사셨던 우리들의 아버지가 우리들의 어머니가 더 시처럼 사셨던 것은 아닌지 새삼 시를 쓰는 것보다 시처럼 살아보기를 희망하던 중년의 어느 날의 독백이 다시 나를 찾아든다.
 
- 시집 <성산리에는 시와 행복이 있다 – 그 다섯 번째 이야기 ‘순이’>(행복나무, 2019)
 
치 일기 쓰듯, 매일 매일 떠오르는 ‘시적 은유’의 끄트머리를 잡고 시를 쓰는, 그리고 그 글을 주변의 사람들과 나누며 고향을 지키고 있는 이형복 시인.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픈 가슴까지도 안을 수 있는,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리는 시를 쓰는 시인’의 꿈, 그가 중년이었을 때 꾸었던 그 꿈을 계속 꿀 수 있길. 그리고 지금과 같이 삶으로 시를 써 내려가면서 그 시를 읽는 사람들의 아픈 가슴을 쓰다듬는 것이, 지금 여기(Here & Now)에서 꼭 필요한 것임을 알고 계속해서 그 방향으로 정진해 나가길 같은 글쟁이로서 맘껏 응원합니다. - 석전(碩田)